이종섭, ‘귀국 쇼’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세상읽기]

한겨레 2024. 3. 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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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작년의 채아무개 상병 사망 사건에서 이종섭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는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의혹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마치 탄산수가 가득 찬 병의 병뚜껑 같은 존재다.

이 대사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출석하여 제대로 입을 열기만 하면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진실이 마구 분출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수처는 외압의 발원지이자 수사의 종점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해야만 한다. 과거 윤석열 검찰총장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듯이 말이다.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이 대사가 작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대통령실과 교감하며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에 개입한 정황 증거들은 차고도 넘친다. 올해 1월에 공수처가 국방부 장관 보좌관과 국방부 검찰단, 해병대 사령관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집한 각종 통화 기록과 공문서, 업무수첩에는 장관의 수사 개입에 대한 각종 정황이 두루두루 널려 있다. 2월에는 전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의 항명 혐의에 대한 군사재판에서 장관 보좌관과 해병대 사령관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공개되었다. 여기에서도 작년 8월에 국외 출장 중이던 이종섭 장관의 수사 개입 정황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이제 마지막 퍼즐이 남았다. 이 대사가 책임 있게 진실을 밝힐 일이다.

여기까지가 외압 의혹을 밝히는 수사의 완결이다. 작년 7월31일에 이 장관이 휴대폰으로 받은 대통령실의 통화 당사자는 누구였는지, 그 당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를 밝히면 국민이 그토록 갈망하던 진실의 문이 열린다. 문제의 통화가 있자 전날 해병대 수사 결과를 결재했던 이 장관의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당시 이 장관에게 전화를 한 대통령실의 인물이 누구인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 전화 한 통화로 장관의 결정을 하루 만에 뒤집히도록 할 수 있는 권력자는 이 나라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바로 ‘그분’이 ‘격노’해서 벌어진 일 아니겠느냐는 심증이다.

이 어마어마한 진실이 밝혀질 결정적 변수는 바로 이 대사의 입이다. 평소 진솔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알려진 이 대사가 각종 정황 증거를 내밀며 추궁하는 공수처의 조사에 마냥 거짓으로 버티기란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공관장 회의 참석차 21일 국내로 들어온 이 대사를 공수처가 소환하고 제대로 조사하면 될 일이다.

그 이전에 공수처는 장관의 명령을 받아 해병대에 외압을 행사한 국방부 직원들과 노기 서린 ‘그분’의 심기를 경호하기 위해 마냥 휴대전화를 눌러대던 대통령실 관계자들을 먼저 소환해서 조사해야 한다. 그 조사 대상자 중 두명이 현재 국민의힘 공천을 받은 총선 후보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 대사는 한발짝도 국내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어차피 의혹 대상자가 대사 노릇 제대로 하기란 글렀다면 차라리 의혹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국내에 머무르는 게 낫다. 비록 시간과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공수처라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가능한 일이다.

공수처 조사만으로 채 상병의 죽음의 배후를 밝히는 일은 다 끝나는 건가. 그렇지 않다. 이 사건의 본질은 외압이 어떤 이유로 행해졌는지, 그 동기를 밝히는 데 있다. 도대체 ‘그분’은 해병대 사단장 한명에 대한 보직 해임과 수사에 왜 그토록 격노한 것인가. 만일 그 사단장이 결백하다면 경찰 수사에서 직접 소명하면 될 일이다. 이 사건 이전에도 경계 실패나 부대 관리에서의 과실로 보직이 해임된 사단장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해서만 권력이 직접 나서서 보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기 전에는 이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국가의 공적 체계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힘이 권력자를 움직여 군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면 이는 국가 안보를 능멸하는 일이다. 손자는 병법에서 상벌체계가 문란한 군대는 적과 싸우기도 전에 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가르친다. 굳이 권력의 총애를 받는 장수라도 읍참마속하던 제갈량의 결단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사망한 채 상병과 같은 부대의 동료 병사가 전역하자마자 사단장을 공수처에 고발하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무적의 해병대가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현실을 보았다. 만일 대통령실과 이 대사가 계속 진실을 회피하면서 귀국 쇼로 총선 국면을 돌파하려는 얄팍한 계산이라면 국민은 총선에서 심판의 표를 던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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