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헌신적 의사 개인과 이기적 의사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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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 고 박병출 원장은 30년간 필리핀 오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다 2018년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환자에게 헌신적인 의사 개인과 비즈니스적이고 이기적인 의사가 공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고 박병출 원장이나 주석중 교수처럼 숭고한 희생정신을 가진 의사들만 존재하면 더할 나위 없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정원 확대 철회만 외치는 일방통행은 의사 전체를 집단이기주의 패키지로 내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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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의료계 퇴로 열어주고
의사들은 본업 복귀로 화답해
지난한 싸움의 끝 고했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 고 박병출 원장은 30년간 필리핀 오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다 2018년 생을 마감했다. 외과 전문의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췌장암·위암을 견디며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지키다 떠났다.
인물면 담당 데스크로 기사들을 읽고 편집하다 느끼는 점 중 하나가 우리 사회에 아직 사랑받을 만한 의사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작년 교통사고로 숨진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밀린 수술과 연구로 식사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생라면을 부숴 먹으며 일했던 모습이 알려져 생면부지 시민들도 조문을 갔다.
소박하지만 헌신적인 의사도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 후배 기자가 인터뷰한 김성균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장을 만났다. 주로 지체·지적·뇌병변 장애인들이 찾는 병원이다. 환자를 치료하다 의사가 되레 다치는 일이 일쑤다. 장애인용 치료의자는 허리를 더 많이 숙여야 해 디스크가 병원 의사들 직업병이라고 했다. 개인의 정도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의술을 그저 괜찮은 '밥벌이' 직업으로 생각하면 이만큼 할 수 있을까. 타인의 생명이 절체절명에 선 순간 '메스'를 들었을 때의 책임감과 부담을 나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환자에게 헌신적인 의사 개인과 비즈니스적이고 이기적인 의사가 공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고 박병출 원장이나 주석중 교수처럼 숭고한 희생정신을 가진 의사들만 존재하면 더할 나위 없는 세상이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에 유용한 어떤 것도 그런 도덕적 선의만으로 지속하긴 힘들다. 내가 살고 있는 기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의대 정원 갈등을 둘러싼 기사마다 의사 직업 전체를 악마화하고 손가락질하는 댓글들이 갈수록 늘어 안타깝다. 의사 개인과 이익집단으로서의 의사를 뭉뚱그린 비판이 화풀이는 될 수 있지만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직서를 낸 젊은 전공의·전문의들이 왜 대화에조차 나서지 않는가는 이해하기 힘들다. 보도가 쏟아지면서 몸을 갈아넣는 그들의 근무 환경을 이제 국민들도 다 안다. 그럼에도 오로지 정원 확대 철회만 외치는 일방통행은 의사 전체를 집단이기주의 패키지로 내몰고 있다. 명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저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자신이 신학자였지만 "도적적 개인이 비도덕적 집단으로 변질되는 모순의 해결법으로 개인에게 도덕성을 가질 것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니부어는 지금처럼 집단 이익과 공리적 이익이 충돌할 때는 정치적 해법이 유일하다고 했다.
지난 20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확정 소식에 의사들은 정권 퇴진 운동도 불사할 방침이다.
정부의 정치적 해법은 의사들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정부는 그간 막혀 있던 정원 제한 벽을 허물어준 것만으로도 제 몫을 했다. 정해진 쿼터 안에서 각 대학이 적게 뽑든 말든 수용 능력에 맞게 자율 선택하는 데에는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는 '고위험·저보상' 체제의 필수의료 분야 수가 조정 등 보다 근본적 의료 개혁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
의사들도 더 많은 이들이 의학에 투신할 수 있는 길을 이토록 끝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더이상 병상과 환자를 외면하게 되면 헌신적 의사 개인도 사라지고 '흔싸귀비(흔하면 싸고 귀하면 비싸다)'에 집착하는 이기적 비즈니스 집단으로 고립된다.
이 지난한 대치 사태로 환자 한 명이 목숨을 잃게 된다면 비난은 의사들에게 쏠릴 것이다. 그러나 두 명, 세 명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국민이 의사들 탓만 할까. 이런 비극적 파국을 피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지용 오피니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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