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 "3년 유학길이 30년 돼…음악에 전념할 수 있어 행운"
이달 별세한 '합창계 대부' 나영수가 부친…"최고의 스승·아티스트이자 팬"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앞으로 뭘 하며 먹고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유학을 떠나 3년 만에 돌아올 줄 알았는데, 어느새 30년이 됐어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21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정규 12집 '엘르'(Elles) 발매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내가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무얼 할 때 대중에게 행복을 드릴 수 있는지 깨달았다"며 음악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여주인공으로 첫 무대에 오른 나윤선은 올해로 뜻깊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나윤선은 "음악에만 전념해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다시 한번 알게 됐다"며 "운이 좋게도 전 세계를 다니며 공연도 한다"고 말하며 뿌듯해했다.
그는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재즈 보컬로 무대에 올라 이름을 알렸고, 2019년에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장을 받았다. 지난 2022년에는 유네스코 지정 국제 재즈의 날 행사 무대에 오르고 최근까지 유럽 투어를 도는 등 유럽 무대에서 활약했다.
신보 제목 '엘르'는 프랑스어로 '그녀들'을 의미한다. 니나 시몬, 비요크 등 그의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여성 음악가의 노래를 재해석해 음반에 담았다.
음반에는 '필링 굿'(Feeling Good), '코쿤'(Cocoon),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스 송'(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등 음악 팬에게 익숙한 10곡이 담겼다.
그는 "이분들은 한 분 한 분이 전설"이라며 "나도 누군가 내 이름을 떠올리면 목소리와 음악이 귀에 맴도는 아티스트가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나윤선은 아프리카의 민속 악기 칼림바(필링 굿)와 직접 만든 수제 오르골(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스 송)을 직접 연주해 음반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음반은 특히 레드 제플린, 퀸, 지미 헨드릭스 등 전설적인 뮤지션과 작업한 음악 엔지니어 밥 루드비히가 마스터링을 맡아 정갈한 사운드를 뽑아냈다. 루드비히는 지난해 7월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그해 8∼9월 나윤선을 위해 특별히 마스터링 작업을 수락했다.
루드비히는 그 과정에서 나윤선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들어보고 큰 팬(Big Fan)이 됐다"며 "이 앨범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다. 가창으로 이렇게 감동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극찬했단다.
나윤선은 "(메일을 받고) 너무 기분이 좋아 부모님께 전화해 '이런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자랑했다"며 "개인적으로 정말 영광이었다"고 떠올렸다.
그의 아버지는 이달 2일 별세한 '한국 합창계의 대부' 고(故) 나영수 한양대 성악과 명예교수다. 국립합창단 초대 단장을 맡고 한국어 합창곡 600여곡을 개발했다.
나윤선은 부친 이야기가 나오자 "아버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승이자, 부러워하는 아티스트,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제 열렬한 팬"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까지도 연주하셨다"며 "의식은 없으셨지만, 제 최근 공연이 끝나고 저와 3일 함께 있었다. 절 끝까지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린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우리말로 된 합창곡 개발에 평생을 바치셨는데, 저는 다른 나라 말로만 노래하는 상황이더라"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언젠가는 (우리말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윤선은 "(음악을) 30년쯤 하게 되니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며 "바로 계속 음악을 하는 것이다. 나는 진짜 노래, 새로운 음악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은 나의 일상"이라며 "새로운 공연을 하기 위해 음반을 낸다. 숙제처럼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관객에게 새로운 것을 들려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나윤선은 지난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기에 최근 문을 닫은 공연장 학전은 그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그는 "학전은 제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된 곳"이라며 "김민기 선생님은 제 평생의 은인이다. '지하철 1호선'을 하면서 노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돌아봤다.
나윤선은 다음 달 1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엘르'를 연다.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 출신 피아니스트 보얀 지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30년간 음악을 하면서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앞으로도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은 게 너무나 많거든요. 하하."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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