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비숙련 노동 '악순환'···70세 이상 실업급여 수급자도 두배 급증

천안=양종곤 기자 2024. 3. 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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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사회가 온다]
<상> 고용절벽 앞에 선 고령층
청소·경비·돌봄 일자리 등 종사
계약기간내 해고 부당 대우에도
대안 없고 재취업조차 쉽지 않아
불안정한 고용형태·낮은 임금 등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서둘러야
21일 충남 천안 천안고용플러스복지센터에 방문한 어르신들이 실업급여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양종곤 기자
[서울경제]

20일 충남 천안 천안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구직급여) 신청을 마치고 나온 최 모(65) 씨는 3년 만에 어렵게 구한 일자리인 환경미화원을 8개월밖에 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사 측이 2년으로 예정됐던 고용계약을 연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사실상 정규직이 아니라 일용직 아닌가. 나를 마음대로 자른 것”이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가 신청한 실업급여도 아무 조건 없이 주는 정부 지원금이 아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기적으로 재취업 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청소밖에 할 게 없는데 일이 안 구해진다”고 답답해 했다.

이날 실업급여 신청자 기초교육장에 모인 20여 명 중 절반 이상은 60세 이상 어르신이었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누릴 정당한 혜택이다. 하지만 1시간 20분가량 진행된 교육이 끝나도 질문은커녕 침묵이 흘렀고 모두 황급히 교육장을 떠났다. 센터 관계자는 “힘들어서 온 분들이라 인터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들의 속마음을 대신 전했다. 이 센터 관계자는 “실업급여 신청자 중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50~60대 이상이 많다”며 “취업이 어려워 직원들이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자주 찾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고령층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는 저임금·비숙련 고령층이 얼마나 고용 시장에서 버티기 힘든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돌봄 노동, 학교 청소 등 이미 고령층이 대부분인 일자리에서 울리던 ‘경고음’을 외면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2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60세 이상 실업급여 수급자는 2019년 30만 명에서 지난해 44만 5000명으로 48%나 급증했다. 전체 수급자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처음으로 25%를 넘어섰다. 70세 이상은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 2019년 7594명에서 지난해 1만 3987명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우려되는 점은 고령층이 잦은 이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 씨와 김 씨처럼 전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되더라도 다시 직장을 찾을 만큼 일자리도 마땅치 않다. 고용 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층위가 명확하다. 두 층의 임금 격차가 너무 커 이동이 쉽지 않다. ‘한 번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영원히 비정규직’이라는 자조섞인 말이 나돈 지 오래다.

이는 예견된 결과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고령화가 대두 되기 전부터 저임금·단순노동 일자리를 고령층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 일자리의 열악한 환경을 제 때 고치지 못하고 오랜 기간 방치했다. 대표적인 것이 돌봄 노동이다. 최근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과 민주일반연맹이 돌봄 노동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돌봄 노동자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연령대는 50대가 58.4%로 가장 많고 60대 이상이 33.1%로 뒤를 이었다. 강은희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은 “응답자는 모두 전업으로 대부분 생계를 위해 돌봄 노동을 하고 있다”며 “고령층이 돌봄 노동을 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어려움은 불안정한 고용 형태와 낮은 임금이다. 임금 수준은 지난해 12월 세전 기준 171만 9000원으로 조사됐다. 각종 수당을 포함하더라도 시급은 1만 3278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9860원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돌봄 노동은 근속에 따라 수당이나 임금이 오르는 경우가 드물다. 돌봄 노동을 가사처럼 단순노동으로 여겨 전문성과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된 보상 체계가 갖춰지지도 않았다. 정해진 업무 외 일을 한 응답자는 46.4%였다. 하지만 이들 중 보상을 받았다는 비율은 2.9%에 그쳤다.

고령층이 맡고 있는 학교 청소 노동의 열악한 고용 환경 개선도 해묵은 과제다.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에서는 매년 청소 노동자가 몇 백 원 단위 시급 인상을 위해 시위를 벌인다. 2021년 6월에는 서울대 청소 노동자 휴게실에서 업무 과중을 호소하던 청소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령자가 현 일자리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제도와 체계가 없어 회사는 고령자를 내보내려 하고 이들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간다”며 “생산성과 연계된 보상 체계를 고령자 고용 제도에 접목한 제도 마련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천안=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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