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가 찾은 보물선’에서 나온 청자···서해바다 보물, 첫 서울 전시

도재기 기자 2024. 3. 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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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한성백제박물관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 기획전 23일 개막
태안 마도 해역 등 고선박서 나온 청자 등 80여점
“수중고고고학·해양문화유산 이해 높이는 자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한성백제박물관이 서해 태안 일대에서 수중 발굴된 고선박 유물들을 선보이는 기획전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을 23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개막한다. 사진은 보물로 지정된 주요 고려청자 전시품들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 땅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닷속 해저, 갯벌, 강과 호수 속에도 있다. 인류가 이미 선사시대부터 배를 이용했으니 당연하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는 특히 해저 유물이 많을 수있다. 신석기~청동기시대에 걸쳐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국보)에는 배를 탄 사람들이 고래잡이를 하고 있다.

실제 선박 유물도 있다. 경남 창녕 비봉리 조개무지(패총) 저습지에서 발굴된 소나무의 통나무 배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배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에서 8000년 전후로 나타난 신석기시대 배다. 김해 황성동 유적에서는 가야시대의 선박 부재들이, 경주 월지(옛 안압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안압지선’이 나왔다.

태안 마도 해역에 침몰한 고려시대 선박(‘마도 2호선’)의 수중 발굴조사 중 배에 실려있던 도자기들을 살펴보는 자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고려시대에는 서해와 남해를 중심으로 바닷길이 더욱 활짝 열렸다. 강진·부안에서 만든 청자를 비롯해 지방 특산물들을 가득 실은 배들이 개경으로 향했고, 중국 신안선 등 무역선들도 오고갔다. 국내외 해상활동이 더 활발해진 조선시대에도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세곡)과 궁중에 상납하게 한 특산물(공물)을 운송하는 조운선 등이 바닷길을 누볐다.

태안을 비롯한 서해는 중국·일본을 잇는 바닷길이자 국제 문화교류의 현장이다. 그동안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의 고선박과 유물들이 많이 발굴됐다.

침몰한 선박이나 수몰된 고대 도시·건물 유적 등 수중 유적·유물을 조사·연구하는 게 수중고고학이다. 육지 발굴과 달리 특별한 장비, 기술도 필수적이다. 최근 수중 탐사기술이 발전하면서 수중고고학, 해양 문화유산의 중요성과 가치는 크게 높아지고 있다.

수중 발굴 등 수중고고학과 해양 문화유산 전반을 살펴보고 이해를 높일 수있는 흥미로운 기획전이 마련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전남 목포시)가 한성백제박물관(서울 송파구)과 공동 개최하는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 전이다.

기획전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의 포스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23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개막하는 기획전은 주요 수중발굴 유물들을 통해 한국 수중고고학의 역사와 발전 현황, 수중발굴 과정, 세계 각국의 사례, 나아가 해양 문화유산과 수중고고학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자리다. 기획전에는 ‘바다의 경주’라 불릴 정도로 고선박, 유물들이 발굴된 충남 태안군의 마도해역과 대섬에서 나온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유물, 백제시대 토기·기와 등 80여 점이 선보인다.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중심 항로인 서해와 태안 지역의 역사적 의미, 백제의 해상활동도 살펴본다. 김지연 한성백제박물관장은 “태안 지역에서 수중 발굴한 ‘태안선’과 ‘마도 1·2·4호선’에서 나온 특별한 유물들, 또 마도 해역에서 확인한 백제시기 토기·기와도 처음 공개된다”며 “서울에서 최초로 수중고고학을 소개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한국 최초의 바닷속 수중 발굴조사는 전남 신안에서 벌어진 중국 원나라 무역선 ‘신안선’이다. 1323년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던 신안선에서는 1976~1984년까지 이뤄진 조사에서 청자와 동전 등 14세기 한국·중국·일본의 국제 교역상황을 보여주는 유물 2만7000여점이 나왔다. 이후 수중 유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수중고고학의 기반이 마련됐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수중 발굴조사된 고선박은 모두 15척, 유물은 10만 점이 넘는다. 고려시대 배가 11척으로 가장 많고,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선박이 각 1척이다. 나머지 2척은 중국 배인 ‘신안선’과 ‘진도선’이다.

수중발굴로 확인되는 고선박은 흔히 ‘보물선’ ‘바닷속 타임캡슐’이라 불린다. 급작스레 침몰한 난파선이라 안타깝기는 하지만 당시 배에 실린 유물들은 마치 타임캡슐처럼 당대의 역사와 생활문화상 연구에 소중한 자료들이어서다.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어부의 손에 주꾸미가 청자를 안고 건져 올려지면서 발굴조사가 벌어진 고려시대 고선박 ‘태안선’에서 나온 ‘청자 퇴화문 두꺼비모양 벼루’(보물). 울퉁불퉁한 두꺼비 피부를 흑백의 점으로 표현한 벼루로 국내 벼루 중 유일한 형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주꾸미가 찾은 보물선’으로 유명한 ‘태안선’은 2007년 태안군 대섬 앞바다에서 한 어민이 청자를 안고 있는 주꾸미를 건져 올리면서 알려졌다. 조사결과 2만5000여점의 청자를 실은 12세기 청자운반선으로 확인됐다. 태안선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청자 퇴화문 두꺼비모양 벼루’와 2점의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등 빼어난 조형미의 청자들이 나왔다.

고려시대 고선박 ‘태안선’에서 나온 ‘청자 사자형 뚜껑 향로’(보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두꺼비모양 벼루는 지금까지 확인된 유일한 형태의 벼루이며, 머리와 몸통·다리는 물론 울퉁불퉁한 피부를 검은색·흰색 안료의 점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자모양의 뚜껑을 한 청자 향로 2점은 서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큰 머리와 날카로운 이빨, 매서운 눈초리의 사자는 해학미까지 엿보인다. 발굴에 참여한 잠수사가 향로 뚜껑 1개를 도굴해 뒤늦게 원래 모습을 찾은 사연도 있다. 태안선에서는 발송처·수신처를 알려주는 목간(글씨를 적은 나무조각), 고려시대 많은 생활용품도 나와 주목을 받았다.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마도2호선’은 전라도에서 거둬들인 곡물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다 난파된 고려 배다. 국화와 모란·버드나무·갈대·대나무 무늬를 상감하고 나비와 물새까지 그려 서정적 물가 풍경을 담아낸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 연꽃줄기를 음각으로 표현한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은 배에서 발견돼 각각 보물로 지정됐다.

고려시대 선박 ‘마도 2호선’에 실려 있던 ‘청자 상감모란유로죽문 매병’. 물가 풍경을 상감한 매병은 매병의 제작시기와 용도를 알려주는 죽찰과 함께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매병들과 함께 나온 죽찰(글을 적은 대나무 조각)들은 매병의 제작 시기는 물론 매병이 고려시대에 술 만이 아니라 참기름이나 꿀 같은 고급 식자재도 보관했다는 사실을 알 수있게 한다.

‘마도1호선’은 곡물을 실어나르던 고려 배다. 1207~8년 사이 해남·장흥·나주 등에서 벼와 메밀·조·콩 다양한 곡식은 물론 각종 젓갈을 싣고 개경으로 가던 길에 좌초돼 지방 물품들이 중앙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설명해준다.

‘마도4호선’은 2015년 발굴된 현존 유일한 조선 선박이다. 15세기 초 나주에서 한양 광흥창까지 세곡·공물을 싣고 가다 침몰했다. 배에서 나온 많은 물품표는 조선 초기 조운제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김성배 소장은 “지금까지 수중 발굴조사에서 태안 앞바다에서만 ‘태안선’을 시작으로 고려·조선시대의 ‘마도 1~4호선’ 등 5척의 고선박과 약 3만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며 “이번 기획전을 통해 수중고고학과 해양 문화유산에도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백제시대의 기와 조각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전시회에는 또 최근 태안 마도 해역에서 수중 발굴된 기와 조각, 취사용 토기인 바리 조각 10여 점도 처음 선보인다. 이들 유물은 제작기법 등으로 볼 때 웅진(공주), 사비(부여) 시기보다 이른 한성시기(기원전 18~기원후 475년) 유물로 추정된다. 이들 유물이 마도 해역에 남겨진 경위 등은 더 조사가 필요하다. 전시는 5월 19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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