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영풍, 법원서 ‘경영권 분쟁’ 2라운드…소송전으로 갈등 최고조
장형진 고문, 유증 이사회 당시 불참 통해 우회적 반대
법원 판단에 따라 지분 경쟁 요동칠 듯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영풍이 계열사 고려아연을 상대로 법적인 제동을 걸고 나섰다. 배당과 정관 변경을 두고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펼친 지 하루만이다. 영풍은 지난해 9월 고려아연과 현대자동차 해외 합작법인 'HMG글로벌' 간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의한 신주발행이 무효라는 입장이다. 이에 고려아연은 유상증자 당시엔 반대가 없다가 이제 와서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 "자기모순"이라며 법적인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은 고려아연은 영풍이 서울중앙지법에 신주 발행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고 공시했다. 영풍은 보도자료를 통해 "고려아연이 현대차그룹의 해외 계열사 HMG글로벌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신주 104만5430주를 발행한 것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영풍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지난해 9월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공동투자해 설립한 해외법인 HMG글로벌이 약 5000억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 5%를 인수한 내용이다.
영풍은 "기존 주주를 배제하고 제3자에게 신주 발행을 할 경영상 목적이 인정되지 않아 해당 신주의 발행은 무효"라며 "경영상 목적이 아닌 현 경영진의 경영권 유지 및 확대라는 사적 편익을 도모한 위법 행위"라고 덧붙였다.
고려아연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며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박 보도자료를 낸 고려아연은 "HMG글로벌에 대한 제3자배정은 회사의 합리적인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상법 등 관련 법규와 회사의 정관을 토대로 경영상 목적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영풍이 당시에는 아무런 반대도 않다가 지금에서야 소송을 제기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지난 19일 주총에서도 HMG글로벌의 임원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에도 찬성했는데, 자기모순이자 자가당착"이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영풍의 소송 제기는 주총 표 대결의 연장선상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기존 정관에서 '경영상 필요시 외국의 합작법인'에만 가능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국내 법인에도 허용하도록 정관 변경을 추진했다. 영풍은 무분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인한 기존 주주들의 주식 가치 희석을 우려해 정관 변경에 반대해 왔다.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정관 변경 안건은 찬성률이 53%에 그쳐 부결됐다. 영풍의 반대 주장에 주주들이 호응한 셈이다.
'지분 희석' 장씨 일가, 주총에 소송까지 장기 포석
영풍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저지하기 위해 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소송을 지난 6일 제기한 탓이다. 주총을 앞두고 소송을 제기한 것을 보면 이후 포석까지 준비해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18일 소장을 수령했다.
영풍 측이 지난 수년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유상증자 행보를 탐탁지 않아 한 것은 사실이다. 고려아연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는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은 지난 2022년 고려아연이 '한화H2에너지USA'를 대상으로 유증하는 안건을 결의했을 때 불참했다. 당시 한화H2에너지USA는 4717억5050만원을 투자해 고려아연 지분 5%를 취득했다. 재계에선 최 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긴밀한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장 고문은 이번 소를 제기한 현대차 대상 제3자 배정 유증 관련 이사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불참을 통해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셈이다.
장 고문 등 장씨 일가 입장에서는 제3자 배정 유증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장씨 일가의 지분 희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화와 현대차를 대상으로 진행한 유증으로 최 회장과 최 회장 우호지분은 장씨 일가 측 지분을 넘어섰다. 현재 고려아연 측은 우호 지분을 포함해 33%, 영풍 측은 32%가량 지분을 가지고 있다.
재계에선 이번 소송이 경영권 분쟁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이 HMG글로벌에 대한 신주발행을 무효라고 판단할 경우 장씨 일가 입장에선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는 셈이다.
반면 법원이 신주발행이 문제없다고 판단하면 최 회장의 행보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다. 향후 계열분리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최 회장이 우호 지분 확대에 더욱 속도를 올릴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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