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프로와 가자, 서울의 의사들 [코즈모폴리턴]

김미나 기자 2024. 3. 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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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가 공포영화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 같다. 그건 우리의 삶이 됐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봐야만 한다."

지난 19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을 공격했을 때, 순식간에 폐허가 된 건물 내부에 환자 수백명과 의사 20명, 간호사 60여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비비시를 통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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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진료 현장을 떠난 지 나흘째이던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복도에 환자 이송용 침대가 놓여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미나 | 국제뉴스팀장

“마치 우리가 공포영화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 같다. 그건 우리의 삶이 됐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봐야만 한다.”

우크라이나 중남부 드니프로에 있는 메치니코프 병원에서 일하는 마취과 의사 발렌티나 리스니차는 감염병을 치료하는 이 병원 외상 분야 책임자다. 그의환자 다수는 총알과 포탄, 떨어지는 온갖 잔해들 때문에 다친 사람들이다. 러시아의 잦은 미사일 공격으로 군인 부상자가 다수지만 민간인 부상자도 적지 않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이 병원을 다녀간 환자는 2만4천명을 훌쩍 넘었다. 이들이 이곳을 ‘생존 공장’이라 하는 이유다. 리스니차는 독일 방송 도이체벨레에 “우리는 모두 지쳤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전쟁이 시작된 뒤 이곳을 떠난 의사는 거의 없다고 도이체벨레는 지난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난달 19일 영국 비비시(BBC)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아우다 병원에서 만난 무함마드 살하 원장대행도 같은 처지였다. 가족을 가자지구 남쪽으로 먼저 피란 보낸 그는 “가족과 3개월째 멀리 떨어져 지낸다. 가족을 안아주고 싶다”면서도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 여성들, 노인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들의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을 공격했을 때, 순식간에 폐허가 된 건물 내부에 환자 수백명과 의사 20명, 간호사 60여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비비시를 통해 알려졌다. ‘하마스 무장대원 20명 사살’이란 제목을 단 이 기사의 한귀퉁이엔 외과 레지던트인 31살 아미르 지드바의 목소리가 들어 있었다. “1층에 있는 건물에 포탄이 떨어져 여러 사람이 다쳤다. 우리는 응급처치만 하고 있고 전기나 물이 없어 치료하기 어렵다. 수술이 필요한 부상자가 많지만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호소였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병원은 보호돼야 한다. 휴전”이라고 적었다.

폭격 속 드니프로와 가자의 병원을 지키는 이들, 그리고 의과대학의 정원 확대를 이유로 진료 현장을 비운 서울 의사들의 모습은 다른 차원에서 비현실적이다. 내년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천명 증원으로 확정하면서 증원 계획을 고수한 정부와 이에 맞서는 의사 단체의 반발 강도는 증폭되는 양상이다. 현장을 떠난 전공의(인턴·레지던트)와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들,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를 제출하고 진료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현장 의사들마저 집단 휴진이나 야간·주말 진료 축소 같은 집단행동에 나서면, 중환자가 제때 처치를 받지 못해 위험에 빠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일부 단체는 기존 의대생들의 미국·일본 등 해외 의사면허 취득을 돕겠다며 정부와 환자를 겁박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생명을 볼모로 삼아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하며 의료 공백이 가시화한 지 벌써 한달을 넘어섰다. 그들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리스니차와 살하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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