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산 넘어 산]① "교수는 하늘에서 떨어지나"…대학가 발등의 불

황지향 2024. 3. 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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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시설, 교수 모두 부족" 현장 우려
대학들 분주…"양질의 교육 위해 준비"

21일 대학가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은 일제히 증원에 따른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했다. 앞서 교육부는 2025학년도 의대 학생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당장 내년도부터 전국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중 1639명(82%)을 비수도권에, 나머지 361명(18%)은 경인에 배정한다. /더팩트 DB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정부가 당장 내년도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하면서 교육현장은 고심에 빠졌다. 학교별로 2배에서 4배까지 정원이 급증하면서 부족한 교육 인프라로 교육의 질 저하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구체적 계획 없이 증원만 발표해 혼란만 부추긴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 지역 기초의학 교수 '하늘의 별 따기'…"10년 후 의료 망가져"

21일 <더팩트>가 만난 의대 교수들은 일제히 증원에 따른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했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 공간과 시설, 비용 등 기본적인 교육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걱정이다.

경기 지역 의대 A 교수는 "정원이 늘어나면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하고 교수들도 더 필요하며 실습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을 것"이라며 "이대로 진행되면 교육에 질적으로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B 교수는 "학생 수가 4배가 되면 해부학 실습용으로 기증된 시신도 4배가 돼야 한다"며 "안 그러면 시신 한 구에 4배의 사람이 붙어서 실습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기초의학 분야 교육 부실에 따른 의료의 질 저하가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상우 일산동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부 해외에서도 기본적 교육이 안 된 상태에서 의사 면허를 남발했을 때 안 좋은 결과를 많이 봤다"며 "우리나라는 그동안 의학에 엄청난 투자를 했고 1명의 의사를 키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는데 갑자기 2~3배 늘어났을 때 교육할 시스템이 감당이 안 될 수 있다. 의사만 찍어낸다고 생각하면 외국과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고 10년 후 우리 의료가 망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번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 발표에서 국립의대 정원을 200명 수준으로 확보했다. 국립의대 교수는 1000명을 늘릴 방침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보통은 펠로(전임의) 과정이 끝나고 임상교수, 기금교수, 전임교수 단계로 밟아서 올라가게 되는데, 이번에 전임교수 정원이 확보되면 기존에 있는 기금교수들이 전임교수 요원이 될 것"이라며 "기금교수의 자리에는 임상교수들이 또 올라설 수 있게 되고, 임상교수 자리에는 다시 펠로들을 올릴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21일 대학가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은 일제히 증원에 따른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했다. 앞서 교육부는 2025학년도 의대 학생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당장 내년도부터 전국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중 1639명(82%)을 비수도권에, 나머지 361명(18%)은 경인에 배정한다. /이동률 기자

그러나 현장에선 교육·연구 경험이 충분한 신규 교수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지배적이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은 "의대 교수 특성상 학위만이 아닌 경험을 축적해야 하는데 1년 만에 조건을 갖춘 교수진을 당장 찾기 어렵다"며 "죽을 만큼 노력해서 45세 정도는 돼야 실력 있는 교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1000명이 어떻게 떨어지겠냐"고 말했다.

오상우 교수는 "지방 의대에선 기초의학 교수를 구하기 쉽지 않다. 임상을 포기하고 기초의학 교수로 남으면 월급이 훨씬 적기 때문에 잘 선택하지 않는다"며 "그럼 기초의학 교수 월급을 올려주면 되는데 그러려면 결국 정부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구체적인 계획 없이 (증원만) 발표했다"며 "학생들이 기초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의사가 됐을 때 아무래도 환자 보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당장 내년부터 신입생…"재정적, 시간적 여유 없어"

대학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내년도 신입생부터 정원이 급증하면서 시설 확충 및 교수 확보 등 교육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제없이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교육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재정적,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충남대는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증원에 필요한 교수 확보, 실험·실습 등 교육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행정·재정적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도 충남대 의대 정원은 200명으로, 기존 110명에서 90명 늘었다.

비수도권 사립의대 중 가장 많은 80명 증가로 정원 120명이 된 단국대도 "이번 증원을 계기로 충남 권역 유일의 상급종합병원으로서 전문 역량을 갖춘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글로벌 의과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정원 57명이 늘어난 순천향대는 "학생 및 교원들의 단체행동 등이 정리된 교육의 정상화가 중요하다"며 "늘어난 증원에 대해 수업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갖춰진 인프라를 활용해 계획을 세울 예정"이라고 했다.

앞으로 정부는 복지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가 협력해 의대 정원 증원에 필요한 교육 여건 개선을 최우선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대학의 교원 확보와 시설 확충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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