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일 당직, 순직할 판이지만…" 사직 안 하겠단 의대 교수들 소신

정심교 기자 2024. 3. 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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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종합병원의 마지막 보루이던 의대 교수들마저 상당수가 단체 사직서를 낼 것으로 예고된 가운데, 사직서를 내지 않고 병원 현장을 끝까지 지키려는 교수들도 있다.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은 현재, 전공의가 해오던 '당직'을 교수들이 도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마저 대거 떠나면 남은 교수들의 업무량은 가히 폭증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대해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감염내과 A 교수는 "사직하지 않겠지만 이러다 '순직'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50대 중반인 A 교수는 전공의 이탈 전까지만 해도 주 1회 당직을 섰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 후엔 당직 횟수가 주 3회로 늘었다. 당직 한 번에 24시간씩이었지만, 전공의들이 모두 나가면서 지금은 교수 1인당 36시간씩 서고 있다. A 교수는 "오늘 아침 8시에 출근했으니, 내일 저녁 8시에 퇴근할 수 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당직을 이렇게 서는 게 벌써 한 달이 넘었다"며 "체력이 바닥나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이 전공의 사태 이후 2차 병원으로 몰려, 병실이 남아도는데도 전공의 업무를 몽땅 도맡다 보니 하루 한 끼도 챙겨 먹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얼마 전, 출근을 준비하던 A 교수에게 그의 아들은 "엄마, 이럴 거면 의사 왜 했어? 나 같으면 의대 안 갈래"라고 했다고. A 교수는 "정부도 못 알아주는 마음을 아들이 알아줘 위로받는다"며 "전공의들의 숙직실에서 잠을 청하려 했다가도 콜을 받고 이동하느라 쪽잠 자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는 "교수들의 외래 진료에 전공의들의 당직 업무까지 맡다 보니 콜이 계속 온다"며 "입원환자 상태가 변했다는 콜을 받으면 바로 뛰어가 처방을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25일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에서 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대학별 의대 정원 배분을 마무리한 가운데, 정부는 한 달 전 사직서를 제출하고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에게 "다음 주 부터 원칙대로 면허자격정지 처분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각지 의대 교수들은 오는 25일을 기점으로 사직서 제출을 예고했다. 2024.3.2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전국 의대 교수들이 오는 25일부터 단체 사직을 내기로 결의한 가운데, 서울 한 상급종합병원 B 교수는 사직서를 내지 않겠다는 소신을 밝힌 상태다. 그는 최근 정부가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 일부를 할 수 있게 한 데 대해 "정부가 한 일 중 바람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B 교수는 "대학병원이 중증·응급 질환 진료 위주로 바뀌기 위해선 전공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며 "그런데 의사의 모든 업무를 전문의에게 하게 하면 간단한 시술에 대한 의료비용이 엄청나게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공의의 업무 상당량을 간호사에게 넘겨줘야 한다. 그러면 병원에서도 전공의가 할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전공의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훈련받으면 전공의보다 일을 훨씬 더 잘할 것'이란 게 그의 견해다. B 교수는 "인턴은 의대를 갓 졸업한 의사이고, 특히 졸업 직후인 3월엔 아무것도 모르지만 간호사는 10년 이상 그 진료과에 몸담는 경우가 많다"며 "누가 더 잘할까? 인턴보다 간호사가 단순 시술을 훨씬 더 잘하고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런데도 이런 의료행위를 의사만 하게 분류돼 있다. 입원 병동과 중환자실 관리도 그간 전공의가 도맡아왔지만 이번에 전공의들이 나가면서 수술장 등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며 "단순 시술과 드레싱, 복수천자(복수 채취·제거) 같은 업무는 간호사가 할 수 있게 풀어주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달 27일 시행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 따르면 복수천자는 PA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로 허용됐다.

B 교수는 간호사·임상병리사의 단독 개원도 찬성한다고 했다. 그는 "간호사가 개원할 수 있게 한다면 (병원 밖) 지역 커뮤니티에서의 간호·간병을 간호사가 담당하게 하고, 대신 의사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하면 된다"며 "직역 간 업무 범위를 칼로 두부 자르듯 하는 건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병리사의 경우 검사센터를 개원하게 해 국민이 질병 단계로 가기 전,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하면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또 피부 레이저 시술 정도는 간호사가, 반영구화장·타투 시술은 비의료인이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B 교수는 "이런 걸 다 의사가 하려는 건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며 "꼭 의료인이 아니어도 반영구화장·타투 시술에 대해 교육받게 해 감염 문제에서 안전하도록 양성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병원의 '진료 외 수익'을 창출할 기회도 늘려줘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B 교수는 "현재는 주차장·장례식장 등에 한정해 병원이 진료 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해외의 경우 환자를 위한 호텔을 운영해 수익을 내고 있다"며 "병원이 호텔 같은 숙박업종, 건강 음식 레스토랑 체인점 등을 운영할 수 있게 법적 제한을 풀어주면 지방·해외 환자도 숙소를 잡기 편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서 병원도 수익을 내는 윈윈 구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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