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 못 산다”…‘팝업’에 밀려 짐 싸는 성수동 터줏대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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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성수동 갈비골목에서 만난 박춘연(76)씨는 23년째 이곳에서 갈빗집을 운영해 왔다.
갈빗집을 개업하기 전, 같은 자리에서 남편과 25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한 세월까지 더하면 48년째 성수동을 지킨 셈이다.
박씨는 "18년 동안 장사하면서 근처 상인들과 동고동락해왔는데 임대료가 급상승하면서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며 "철물점, 자동차 정비 공장, 수제화 공장이 모여있던 약 1㎞ 가 전부 팝업 스토어와 대기업으로 잠식됐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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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연무장길 임대료 3년 만에 두 배로 ‘껑충’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저쪽 골목에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갈빗집이었어. 지금은 네 곳밖에 안 남았지만…"
21일 서울 성수동 갈비골목에서 만난 박춘연(76)씨는 23년째 이곳에서 갈빗집을 운영해 왔다. 갈빗집을 개업하기 전, 같은 자리에서 남편과 25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한 세월까지 더하면 48년째 성수동을 지킨 셈이다. 박씨는 내달 이곳을 떠난다고 했다. 바뀐 집주인이 건물을 증축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1970년대 뚝섬 경마장 시절부터 인기를 끌던 성수동 갈비골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수십 곳에 달하던 갈비골목 내 갈빗집은 줄폐업 등으로 현재 단 4곳밖에 남지 않았다. 박씨네 가게마저 이전하면 갈빗집은 3곳이 전부다.
1974년 개업한 고모의 갈빗집을 물려받았다는 한아무개(46)씨는 성수동 상권이 발달하면서 임대료가 다락같이 올랐다고 했다. 한씨는 "10년 전에 비해 월세가 5배 정도 올랐다"며 "예전부터 같이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다 떠났다"고 털어놨다.
"평범한 사람 살 수 없어"…카페로 개조된 주택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원주민이 밀려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성수동 주민이 신음하고 있다. 갈비골목 인근 연무장길 일대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직격타를 맞았다. 최근 들어 '팝업 스토어'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임대료가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팝업 스토어란 특정 장소를 임대해 단기간 동안 매장을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오후 1시께 찾은 연무장길도 팝업 스토어가 즐비해있었다. MZ세대의 놀이터답게 팝업 스토어 앞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 찍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새롭게 단장한 팝업 스토어 수만큼 텅 빈 매장도 있었다. 단기간에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빠져나가면 새로운 팝업 스토어가 입점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건물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울시 상권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연무장길 일대 평당 임대료는 2023년 4분기 기준 20만762원이다. 2020년에 10만5389원인 점을 고려하면 3년 만에 두 배가 뛴 셈이다.
대기업과 팝업 스토어의 등장으로 인근 임대료가 폭증해 쫓겨났다는 주민도 있었다. 철물점 사장 박지아(가명·46)씨는 3년 전 해외 명품 브랜드인 '디올'이 입점한 뒤 건물주로부터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박씨는 "18년 동안 장사하면서 근처 상인들과 동고동락해왔는데 임대료가 급상승하면서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며 "철물점, 자동차 정비 공장, 수제화 공장이 모여있던 약 1㎞ 가 전부 팝업 스토어와 대기업으로 잠식됐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팝업 스토어가 많을 때는 하루에 70개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공실인 곳도 꽤 많다"며 "주변 임대료만 부풀려 놓고 빠지는 게 성수동 발전에 도움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20년째 화물 운송업을 해왔다는 김아무개(52)씨는 자신의 회사 앞에서 직원들과 이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김씨는 "지금 이 동네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살 수 없다"며 "가정집은 전부 개조해 카페로 바꿔놨고 동네 한 바퀴 돌아봐도 슈퍼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소규모 공업소도, 월세방 사는 주민도 전부 쫓겨난 것"이라며 "나 또한 내후년에 떠날 계획"이라고 전했다.
공인중개업자 A씨는 "건물이 노후화되면서 곳곳에 문제가 발생하다 보니 집주인 입장에서는 신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면서 "인근 상권이 발달하는데 당연히 임대료를 올리고 싶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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