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에 전성기 맞은 조각가…살아 숨쉬는 나무에 새긴 삶의 흔적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3. 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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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첫 초청
김유신 국제갤러리 개인전
40년 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남미 중심으로 조각·회화 활동
나무껍질과 이국적 색채 특징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 작가(88)가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십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한국에서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처음이에요. 얼떨떨하면서도 제 마지막 인생을 걸고 한국에서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무의 껍질을 살린 조각과 나무 조각에 회화를 입힌 작품으로 유명한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작가(88)의 개인전 ‘Kim Yun Shin’이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K2 전시장에서 4월 2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지난 40년 간 남미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김 작가가 국제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여는 첫 개인전이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최근까지 작업을 이어온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 ‘기원 쌓기’ 등 연작과 최근 제작된 회화 작품까지 총 51점을 선보인다. 김 작가는 다음달 열리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에도 처음으로 초청받아 참가할 예정이다.

김윤신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전시장 전경. 오른쪽으로 보이는 오브제들은 작가가 나무 조각에 회화를 입혀 만든 ‘회화 조각’ 작품들이다. 국제갤러리
김 작가의 조각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은 작가가 끊임없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고찰해온 결과다. 아름드리 통나무의 겉 표면을 이루는 껍질을 깎아내지 않고 그대로 살리면서 전기톱과 끌, 정으로 일부만 파내듯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나무의 단단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강한 질감을 표현하기도 하고 문양을 넣거나 그 위에 색을 칠하기도 한다. 조각 작품이지만 한옥의 맞춤과 이음, 목조건축의 공간적 특징도 나타난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회화적 기법으로 나무에 마치 회화를 입히듯 작업한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9-19’ 등 작품을 작가는 ‘회화 조각’이라 칭했다.

김 작가는 “주어진 재료와 내가 하나가 되는 그 순간, 내가 또 하나의 생명으로 잉태되는 것이 ‘합(合)’과 ‘분(分)’이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한다”며 “재료가 주어지면 이 나무의 상태가 어떤지, 단단한지 연한지, 어떤 향이 나오는지 며칠을 두고 본다. 그렇게 재료에 대해 완전히 파악했을 때 비로소 잘라내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나무에게 다가가 작업에 이르기까지가 ‘합’이고, 조각 작품이 그 결과물로서 탄생하면서 다시 작가와 오브제가 남게 되는 것이 ‘분’이라는 의미다. ‘두 개체가 하나로 만나며 다시 둘로 나뉜다’는 뜻에서 작품에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란 제목을 붙였다는 설명이다.

김윤신 작가가 아르헨티나의 작업장에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조각하고 있는 모습. 국제갤러리
나무라는 재료가 그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나무가 가진 생명력 덕분이다. “나무는 그냥 말 없이 서 있으니까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런데 나무는 살아 있다. 저마다 풍기는 향이 있고 근육의 질이 있고 그러면서 숨을 쉬고 있다. 우리와 똑같은 자연이다.” 우연히 조카를 만나러 갔던 아르헨티나로 아예 이주하게 된 것도 알가로보, 라파초 등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굵고 단단한 나무들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김 작가는 “나무에 벌레가 많아지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나는 나무들을 사용해 작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김 작가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국제갤러리와 연이 닿은 것도 지난해 전시가 계기가 됐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1세대 여성 작가인데도 이제껏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직접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술관을 찾아가 작가님과도 만나고 전시와 향후 활동에 대해서도 논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윤신 작가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1978’. 작가는 나무의 겉 껍질을 살린 채 조각을 완성했다. 송경은 기자
이번 개인전에서는 남미의 이국적 색채를 지닌 김 작가의 회화 작품도 대거 만날 수 있다. ‘진동’ ‘내 영혼의 노래’ ‘원초적 생명력’ 등 회화 작품들은 나무 조각에 물감을 묻힌 뒤 캔버스에 찍어내는 기법을 활용해 제작했다. 화면에서는 기하학적 요소와 대비되는 강렬한 색상이 두드러진다. 멕시코 여행을 통해 영감을 받은 아스테카 문명이나 파타고니아 원주민 마푸체족의 예술문화 등에서 한국의 전통 오방색과 유사한 부분을 차용했다. 김 작가는 “내 삶의 흔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 뿐 다른 걸 더 가미해서 표현하는 게 아니다”라며 “내가 주어진 환경, 생활 모든 것이 작품에서 맴돌고 있다”고 밝혔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1959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수학했다. 1969년 귀국한 그는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 전까지 약 10년 간 여러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1974년에는 한국여류조각가회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이주 후에도 멕시코, 브라질 등에 머물며 작품 세계를 발전시켰고 2008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김윤신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김윤신 작가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9-19’. 나무 조각에 회화를 입히듯 작업한 것이 특징적인 작품으로 작가는 이를 ‘회화 조각’이라고 칭했다.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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