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전담 조사관’이 현장서 혼선 빚는 이유 [왜냐면]

한겨레 2024. 3. 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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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성동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역량강화 연수 개회식에서 한 조사관이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우 | 중학교 교사

2024학년도부터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가 의무화되었습니다. 학교폭력이 접수되면 의무적으로 교육지원청의 조사관을 거쳐야 하는데, 조사관 대부분이 위촉직이라 학교 현장에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학교폭력 책임교사로서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제도의 취지는 알겠으나 학교 현장에서 자리 잡기까지 혼란을 야기하기 쉬운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는 학교폭력 전 과정 중에서 조사관이 사안 조사보고서 작성을 포함해 사안 조사만 하도록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화해 중재만 노력하라는 것이지요. 제도 기획 단계에서는 전담 조사관이 ‘조사’라는 악역을 맡고, 학교는 화해 중재 노력을 하도록 계획했을 것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찰 신분이 아닌 전담 조사관은 법적인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네가 이거 잘못한 거 아니냐”와 같이 물었다가 문제가 생기면 보호 받기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전담 조사관이 조사한 내용을 학교에 전달해 주고 난 뒤에 발생합니다. 학교는 그 조사 내용으로 화해를 중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민원의 소지가 가장 큽니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는 각자의 입장이 모두 다르기에 정말 세심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상황을 잘 알아야 화해 중재도 잘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 상황에서 왜 그런 표정과 몸짓을 보였는지, 조사 과정에서의 태도까지 모두 고려해 세세하게 알고 있어야 대화 모임을 통해 제대로 된 화해 중재를 할 수 있습니다. 조사와 화해를 분리하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실행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전담 조사관 제도라는 단계가 하나 더 생기면서 여러 번거로움이 늘어난 것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절차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가 조사했을 때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사관이 조사하면 나아질까요? 가장 밀접하게 학생들을 지켜보는 교사가 아니라 낯선 조사관이 조사하게 되면서 계속 생기는 쟁점 사안들에 대해 학부모들의 민원이 힘들어졌습니다. 학부모가 원하는 자료를 통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교육지원청은 학교와 전담 조사관에 대한 민원을 동시에 받아야 하고, 조사관이 그만두는 일이 생기거나 고소당했을 때 책임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런 제도를 시행한 근본 취지는 무엇일까요?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가 생긴 이유는 수많은 학교폭력 가운데 1건의 사고라도 더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그 1건이 생명에 관한 문제일 수 있기에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교원의 권리 보장이 미비한 상황을 놓고 사회적 문제가 대두함에 따라 여러 절차를 안전장치로 추가한 것입니다. 극소수의 교사는 학부모의 민원에 대해 무관심할 수도 있고,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드문 상황에서 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생긴 제도이기도 합니다.

군대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할 때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 둡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수류탄을 던지기 전에 빈손으로 “안전클립 제거”, “투척” 등을 외치며 모의 훈련을 하고, 돌발 상황 대처 요령도 숙지한 뒤에야 교관 통제 아래 수류탄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안전장치가 있었음에도 사고가 계속 발생했기에 전담 조사관 제도라는 안전장치를 추가했을 것입니다. 기존에 1시간 동안 했던 수류탄 훈련을 며칠로 늘렸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수류탄을 던지는 사람도, 훈련을 시키는 사람도, 안전을 통제하는 사람도 엄청난 피로감이 생깁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더 내실 있게 훈련할 방법을 마련해야 하는데, 절차만 더 많이 만들면서 힘들어진 것입니다. 그럼 이제 수류탄 투척 사고는 덜 발생하게 될까요?

학교폭력이 될 수 있는 모든 일을 법률에 따라 신고 접수하고, 전담 조사관의 조사에 맡기고, 그 절차에 따르도록 하면 실제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제도의 보호는 받을 수 있습니다. 조사관이 잘못 조사하더라도 교사는 “조사관이 조사하도록 정해져 있다”라거나 “교육지원청에서 학폭위 판단을 잘못한 것”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교사로서 그렇게 하기 어렵기에 현장에선 고민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경미한 사안이라면 교사가 전담 조사관 요청을 선택할 수 있게 바꾸면 어떨까요? 전담 조사관도 조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 중재를 위해 노력하고, 학교 입장에서도 전담 조사관이 조사하는 상황에서 방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도우며 보완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제도의 미흡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 지금 상황은 아쉽지만, 학생들을 위한 일이기에 이미 방향이 정해졌다면 거기에 맞는 현명한 방법을 모두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학교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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