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당 돌풍’에 실린 ‘메타 공정’이란 질문 [아침햇발]
박용현 | 논설위원
검찰 정권이 들어선 뒤 법과 상식을 뒤집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주권자의 시선은 무시한 채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둘렀다. 그들이 검사일 때도 이런 식으로 검찰권을 휘둘렀던 것인가, 많은 시민들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문제의 핵심을 또렷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대사로 임명해 국외로 빼돌렸다. 공수처가 걸어놓은 출국금지를 해제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였어도 그랬겠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하지만, 그랬을 것 같다. 수사 대상자 출금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검찰이지만, 제 식구에 대해선 180도 다른 태도를 보였다. 김학의 출금 사건이 그랬다. 야반도주하려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긴급 출금으로 막아낸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 등을 ‘윤석열 검찰’은 되레 직권남용으로 수사·기소했다. 1심 무죄 판결로 이 적반하장식 기소는 실패했다. 그러나 ‘출국금지 농단’은 이종섭 출금 해제로 재연됐다. 차 본부장은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0번 후보가 됐다.
차 본부장을 수사·기소했던 ‘윤석열 사단’ 이정섭 검사는 리조트 향응 의혹 등에 휩싸였다. 국회가 탄핵소추까지 했으나, 검찰이 공언한 엄정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있다. 검사 자신의 손이 더러운데 누구를 수사하느냐는 시민들의 분노를 검찰은 귀담지 않는다. 두려움 속에 의혹을 폭로했던 이 검사의 처남댁 강미정씨는 조국혁신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예비후보가 됐다.
고발사주 사건으로 기소된 손준성 검사는 자체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그를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으로 승진까지 시켜줬다. 그러나 재판에서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의 징계도 ‘내 편 네 편’이 좌우했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감찰했던 박은정 검사는 최근 해임이라는 최고 수위 징계를 당했다. 검찰 수사도 받고 있다. 국기문란급 범죄를 저지른 검사는 징계를 면하고, 소임에 충실했던 검사는 윗선의 심기를 거스른 죄로 해임당했다. 박 검사는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후보가 됐다.
박은정, 차규근, 강미정. 이들은 공직자로서, 시민으로서 할 일을 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옳고 의미 있는 일이었으되 일거에 정치적 인물로 떠오를 만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정권과 검찰의 행태가 이들을 상징적 인물로 밀어올렸다. 제 식구 비리·범죄는 무한정 감싸는 반면, 상대편은 사냥하듯 족치는 권력의 불공정한 전횡에 상처받은 피해자이자 그에 맞선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상징적인 인물은 조국이다. 그는 자녀 입시 비리로 공정성 논란을 일으키며 깊은 낙인이 찍혔다. 검찰의 가혹한 수사로 멸문지화 상황까지 몰렸다. 그에게 적용됐던 엄정한 공정의 잣대가 이후로도 건재하게 작동했다면 정치를 시작한다는 것조차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검찰 정권이 들어선 뒤 요지경이 펼쳐졌다. 한동훈 장관 인사검증 과정에서 딸의 ‘허위 스펙’ ‘논문 대필’ 의혹이 제기됐다. 한 장관은 낙마하지 않았고, 장관으로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다. 경찰은 조국 사태 때와 대비되는 허술한 수사 끝에 불송치 결정했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은 정권이 바뀐 뒤 검찰이 손도 대지 않았고, 윤 대통령은 최고의 공적 권한인 거부권을 휘둘러 특검을 막았다. 명품백 수수가 드러나도 ‘없는 일’ 취급했다. 칼을 휘둘렀던 이들은 그 칼로 자신의 치부를 가렸다.
이런 시대상은 오래된, 그러나 어느 때보다 선명해진 질문을 던진다. 누가 더 불공정하냐는 질문은 부차적이다. 개별 인물·사안의 공정성 문제를 넘어 여러 인물·사안에 동등한 저울과 칼을 들이대느냐는, 공정성 문제를 다루는 방식의 공정성에 대한 질문이 더 크게 부상하고 있다. 이를테면 공정 너머의 공정, ‘메타 공정’이다. 메타 공정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개별 사안의 공정 문제는 회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공화제를 지탱하는 핵심 기둥인 ‘법 앞의 평등’이 부정된다면 법의 작동 자체가 정당성을 잃고 말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비단 형사사법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정 전반에 걸친 ‘검찰식 독단’과 이에 대한 비판에 코웃음치는 정권의 비민주적 행태로까지 물음표는 확장되고 있다.
국민의힘 위성정당과 ‘비례 양강’ 형세까지 이룬 조국혁신당 돌풍을 보면, 조국 대표는 역설적으로 이 같은 질문을 던질 적임자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 질문을 가슴에 담아뒀던 시민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으며 그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어 답하기 시작했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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