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

한겨레 2024. 3. 2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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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말만 앞세워 사는 사람은 말재주 좋은 사람을 만나면 질투심이 생긴다.

'말발'에 쓰인 '-발'은 '빗발, 우산발, 핏발, 햇발'에서 보듯이 쭉쭉 내뻗은 줄기를 뜻한다.

'말발'은 '말발이 좋다, 말발이 세다'처럼 힘과 기세를 뜻하기도, '말발이 서다, 말발이 먹히다'처럼 말의 효과를 뜻하기도 한다.

당장 부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건 말발 좋고 말발 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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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클립아트코리아

나처럼 말만 앞세워 사는 사람은 말재주 좋은 사람을 만나면 질투심이 생긴다. 얘기를 저렇게 요령 있게 하다니.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정하고 핵심이 분명하다. 젠장, 웃기기까지 하네.

나는 왜 이다지도 말을 잘 못 하는가. 그 자리에 맞춤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고 ‘떠오르지 않는다’는 생각만 떠오르니 애초에 하려던 말을 놓쳐 횡설과 수설을 넘나들며 끝을 맺을 줄 모르고 늘어지고 이어진다(지금 이 말처럼). 자기 발언에 각주와 반론을 다는 버릇도 있어 한 입에서 두세 사람의 인격이 튀어나오기 일쑤. 그러니 언감생심 말발이 먹힐 리가 없지.

‘말발’에 쓰인 ‘-발’은 ‘빗발, 우산발, 핏발, 햇발’에서 보듯이 쭉쭉 내뻗은 줄기를 뜻한다. 뻗은 모양에서 풍기는 힘과 기세에 빗대어 ‘끗발이 좋다, 안주발을 세우다’로 쓰기도 한다. 그러한 힘과 기세가 불러오는 효과를 강조하여 ‘약발, 화장발, 운발, 기도발이 좋다’고 하기도 한다.

‘말발’은 ‘말발이 좋다, 말발이 세다’처럼 힘과 기세를 뜻하기도, ‘말발이 서다, 말발이 먹히다’처럼 말의 효과를 뜻하기도 한다. 당장 부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건 말발 좋고 말발 센 사람이다. 타고난 재주이지만 연습으로 좋아질 수 있다. 정작 우리는 자신의 말발이 먹히는지는 잘 보지 않는다. 말발이 먹히는 건 전적으로 타인의 동의와 수용에 달려 있다. 말발은 말의 뒤편에 있는 것의 효과일 뿐이다. 지금의 권력집단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의 뒤편에 ‘누르고 윽박지르는 힘’만 있다면 그 힘이 빠지는 순간 말발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말발이 먹히도록, 다시 말해 내 말이 상대방에게 가닿아 그를 흔드는 것이다. 그것은 말이 멈춘 곳에서 길러진다. 행동과 진실, 즉 침묵의 영역이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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