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즐기는 먹선수들의 진검승부, '먹찌빠'
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평생 날씬하게 살아본 기억이 없다. 그나마 결혼식 때가 가장 날씬했던 것 같다. 결혼 후에도 한참 동안 예복으로 산 원피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입어보니 등 쪽의 지퍼가 올라가지 않았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 벌어져 결코 만날 수 없던 지퍼. 거울 속에 비친 뒷모습을 보며 내 입도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참 지긋지긋하게도 다이어트를 했다. 한창 젊었던 대학 시절에는 사흘 동안 사과만 먹다가 어지러워 그만두기도 했고, 다이어트 쉐이크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보겠다고 서울 종로 5가 약국 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덴마크식 다이어트니 황제 다이어트니 유행하는 다이어트는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평생 살쪄 보는 게 소원이라는 마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아이 셋을 낳고 키우며 나이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다이어트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방심해서 찌면 조금 정신 차려 빼고, 그러다 또 느슨해져서 찌면 또 빼고. 봄,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겨울 뒤 또 봄이 오는 것처럼. 나에겐 찌는 계절이 있으면 빼는 계절이 있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일상적인 일이라고나 할까. 내가 만든 순환의 고리를 끊어 보자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결국 나는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먹는 것으로, 특히 술과 안주로 위안받는 사람이기에 음식 앞에 늘 굴복하고 만다.
최근 그런 내가 즐겨보게 된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덩치 서바이벌-먹찌빠(이하 먹찌빠)'다. '먹찌빠'는 '먹자 찌지도 말고 빠지지도 말고'라는 뜻이란다(처음 들었을 때 묵찌빠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생각한 건 나뿐일까). 다이어트라는 강박 없이, 먹는 걸 즐기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온전히, 박장대소할 만큼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다.
'먹찌빠'는 출연진이 일단 빵빵하다. 박나래, 서장훈을 필두로 신동, 이국주, 풍자, 나선욱, 신기루…. 서장훈은 모르겠지만 일단 먹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 모두 모였다. 실제로 체구도 빵빵해서 출연진의 몸무게를 합하면 1.2톤이 넘는다고 한다. 물론 출연진이 빵빵하다고 해서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펼치는 게임이 신선하다. 제작진의 고민과 실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제작진이 깐 판에 출연자들은 몸을 사리지 않아 '먹찌빠'의 재미는 배가된다. 더욱이 음식에 있어 누구보다 진심이고 전문가들인지라, 기획에 한계가 없을 듯싶다. 라면을 섞어 끓여 종류를 맞추라거나 치킨 왼쪽 다리 찾기 미션, 짜장면에 들어간 채소 찾기 등을 보면 출연진들이 단순한 미식가가 아닌, '먹능력치' 만땅의 진정한 쩝쩝박사라는 사실에 무한 감탄하게 된다. 30미터 높이에 떠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단번에 맞힐 수 있는 능력자들이라니.
어떤 분야든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물론 타고난 미각도 기여했을 테지만 무심코 넘길 수 있는 미세한 특성을 발굴‧주목하고, 기억‧저장해 내는 것은 확실한 능력이다. 아마도 '먹찌빠'가 아니었으면, 출연자들의 그런 탁월한 능력이 미처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는 애통한 일이 일어났을 수도. '먹능력치'를 발휘하는 미션 외에도 '먹찌빠'는 몸개그의 진수를 보여주는 다채롭고 기발한 게임들이 펼쳐진다. 엉덩이로 소스통을 짜서 목표물을 날리는 게임 같은 것을 그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겠는가. 고정 출연자 외에 가끔 게스트가 등장하는 것 또한 '먹찌빠'의 또 다른 볼거리다. 한때 '게임마왕'으로 불리던 김수로가 나와 출연진에게 감탄하는 모습은 쏠쏠한 재미를 줬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정규 편성되기까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수 있는 '먹찌빠'가 계속 시청자를 만나고 있는 건 몸을 아끼지 않는 출연진과 평범함은 취급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한 제작진이 함께 선보이는 참신함 덕분일 것이다. 맛있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 그러나 늘 실컷 먹을 수는 없기에 우리는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하곤 한다. 그러나 '먹찌빠'는 먹방 그 이상의 재미를 준다.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즐기는 흥겨운 운동회 같달까.
매주 목요일 밤, 먹는 데 선수들이 입장한다. 미안하지만 싸움은 그들 몫, 즐기는 건 내 몫이다. 다이어트 따윈 일단 집어치우고, 실컷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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