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20년간 가죽 점퍼 입는 젠슨 황...유명인들 같은 옷만 고집하는 이유
잡스·저커버그도 같은 옷 착용
“AI 시대의 잡스 떠올리게 해”
“패션 조언자는 아내와 딸”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터틀넥, 마크 저커버그는 회색 티셔츠, 젠슨 황은 검은색 가죽 점퍼.
인공지능(AI)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공식 행사에서 늘 검은색 가죽 점퍼를 입는다. 젠슨 황의 대변인은 지난해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최소 20년 동안 가죽 점퍼를 입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젠슨 황은 2021년 ‘올해의 남성’ 중 한 명으로 타임지 표지에 등장했을 때도 검은색 가죽 점퍼 패션을 선보였다.
“여기는 콘서트장이 아니라 개발자들을 위한 행사입니다.” 18일(현지 시각) 엔비디아의 연례 행사인 GTC2024 무대에 오른 젠슨 황은 이날도 검은색 가죽 점퍼를 입고 농담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젠슨 황이 GTC2024 기조 연설에서 입은 가죽 점퍼는 톰 포드의 2023년 봄 컬렉션으로 추정된다. 소매가는 8990달러(약 1194만원)다. 젠슨 황은 해당 가죽 점퍼를 지난 1월 대만에서도 착용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젠슨 황은 2017년 이후 최소 6벌의 가죽 점퍼를 입었다. 다만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엔비디아 대변인이 젠슨 황이 얼마나 많은 가죽 점퍼를 소유하고 있는지 언급하길 거부했기에 실제보다 적게 집계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젠슨 황은 2016년, 미국 소셜미디어(SNS) 업체 레딧이 주최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AMA)’ 행사에서 자신을 “가죽 점퍼를 입은 남자(the guy in the leather jacket)”라고 소개했다. 젠슨 황의 가죽 점퍼는 칼라가 있을 때도 있고, 오토바이 점퍼처럼 보일 때도 있다. 때로는 많은 지퍼가 달려있을 때도 있다. 다만 색상은 항상 검은색이다. NYT는 지난해 6월 젠슨 황의 패션을 분석한 기사에서 “요점은 젠슨 황이 항상 똑같아 보인다는 것”이라며 “세상을 바꾸는 성공 기업의 간판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젠슨 황이 매번 가죽 점퍼를 입어서 생긴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열린 대만 최대 정보통신(IT) 전시회인 컴퓨텍스(Computex)에서도 가죽 점퍼를 입고 등장했다. 컴퓨텍스 기조연설 당시 기온은 26~32도. 이에 ‘가죽 점퍼를 입고 어떻게 더위를 견딜 수 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젠슨 황은 “나는 항상 쿨해요(I’m always cool)”라고 답한 일화도 있다.
◇ 잡스·저커버그·젠슨 황이 유니폼 고집하는 이유 “옷 입는 시간 줄이기”
젠슨 황은 검은색 가죽 점퍼를 포함한 그의 올블랙 패션이 옷을 고르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여준다고 말한 바 있다. 젠슨 황의 대변인은 NYT에 “매일 내려야 할 결정 중 하나를 줄이기 위해 같은 스타일의 검은색 바지와 셔츠도 입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왜 매일 같은 옷을 입냐’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매번 회색 티셔츠를 입었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황갈색 양복을 입을 때를 제외하곤 회색이나 진한 파란색 양복만을 입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비슷한 답변을 했었다. 저커버그가 “입을 옷을 고르는 것은 집중력을 흐트러트릴 뿐”이라며 “그 에너지를 좀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쏟고 싶다”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잡스는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조끼까지 갖춰 입었던 인물. 하지만 월터 아이작슨이 집필한 전기 ‘스티브 잡스’를 보면 잡스는 1980년대 초 일본 소니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검은색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를 ‘유니폼’으로 삼았다. 잡스가 소니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은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아키오 모리타 당시 소니 사장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전쟁 후 입을 것이 없었기에 유니폼을 제공했는데, 나중에 소니의 특징으로 발전했고 서로 단결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 돌아온 것이 이유였다. 이후 잡스는 소니 유니폼을 만든 유명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에게 애플 직원을 위한 디자인을 부탁하기도 했다. 다만, 애플 직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드레스 코드: 패션의 법칙이 역사를 만든 방법’의 저자이자 스탠퍼드 로스쿨 교수인 리처드 톰슨 포드는 “젠슨 황이 양복을 입거나 폴로 셔츠와 카키색 바지를 입은 모습을 상상한다면 지루하고 전통적인 중간 관리자처럼 보일 것”이라며 “가죽 점퍼는 창의적이고,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입을 수 있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어 “일부 사람들에게 ‘영적 지도자’였던 스티브 잡스와도 연결된다”며 “AI가 잠재적인 위협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고 ‘기술이 세상에 선한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종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말했다.
다만, 젠슨 황은 올해 초 춘제 기간 중국 방문 당시 검은색 가죽 점퍼 대신 빨간색 꽃무늬 조끼를 입었다. 당시 젠슨 황은 꽃무늬 조끼를 입고 양손에 든 손수건을 빙글빙글 돌리는 전통춤을 췄다.
젠슨 황의 검은색 가죽 점퍼 패션은 인기가 많다. 아마존 등에 최소 7개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는 젠슨 황의 이름을 달거나, 젠슨 황이 검은색 가죽 점퍼를 입은 사진을 활용한 모조품이 판매 중이다. 전자상거래 사이트 ‘자켓팝(Jacketpop)’은 ‘젠슨 황 가죽 점퍼’라는 이름을 단 가죽 점퍼를 109~149.99달러에 판매한다.
◇ ‘검은색 가죽 점퍼’ 룩은 아내와 딸의 아이디어
젠슨 황의 ‘검은색 가죽 점퍼’ 패션은 아내와 딸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젠슨 황은 지난해 11월 HP가 유튜브에서 운영 중인 ‘더 모먼트’(The Moment)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패션 아이콘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질문을 받자 “아내와 딸이 옷을 입혀줘서 기쁘다”고 말했다.
젠슨 황은 1963년 대만에서 태어난 이민자 출신 미국인이다. 젠슨 황의 부모는 사회적 불안을 피해 1973년 젠슨 황을 미국에 있는 친척에게 보냈다. 젠슨 황이 2022년 와이어드와 인터뷰에서 말한 것을 보면, 당시 워싱턴주에서 살고 있던 젠슨 황의 이모와 삼촌은 실수로 젠슨 황과 그의 형을 켄터키에 있는 오네이다 침례 학교에 보냈다. 해당 학교에선 학생들도 일을 해야 했고, 젠슨 황은 화장실 청소 담당이었다. 젠슨 황은 2012년 NPR과의 인터뷰에서 “어찌 됐든 나는 그곳에서의 시간을 사랑했다”며 “열심히 일했고,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지만 힘들긴 했다”고 웃었다. 젠슨 황은 2019년, 해당 학교가 기숙사와 교실을 짓도록 200만달러(약 26억원)를 기부한 바 있다.
젠슨 황은 오네이다 침례 학교에 다니다 오리곤으로 이주해 가족과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젠슨 황은 고등학생 시절 전국 주니어 탁구 선수였고, 1984년에 오린건 주립대 전기공학 학사, 1992년에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젠슨 황은 오리건 주립대에서 만난 로리 황을 만나 결혼했고 슬하에 두 자녀를 뒀다.
◇ 주가 200% 상승 불구…”장기 계획 없어, 시계 차지 않는 이유”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젠슨 황의 순자산은 20일 기준 361억달러약 47조 9011억원)에 달한다. 엔비디아가 AI에 특화된 반도체를 제작하면서 ‘AI 최대 수혜주’로 꼽힌 덕분이다. 엔비디아 주가는 지난해에만 200% 이상 상승했다.
젠슨 황은 대학 졸업 뒤 LSI 로지틱스와 AMD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1993년 지인 2명과 함께 실리콘밸리에 있는 식당체인 ‘데니스’에서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이에 대해 젠슨 황은 지난 2010년 스탠퍼드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친구들과 그래픽회사를 시작하는 것이 좋은 생각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어떤 종류의 회사가 될지,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세상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한 뒤 환상을 품었다”고 회고했다.
데니스는 젠슨 황이 대학생이었을 때 아르바이트했던 곳이다. 그는 데니스에서 좀 더 외향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 바 있다. 젠슨 황은 미국 타임지에 “나는 집중력과 추진력은 있었지만, 매우 내성적이어서 수줍음을 많이 탔다”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내가 껍데기를 깨고 나왔던 유일한 경험은 데이스에서의 아르바이트였다”고 말했다.
젠슨 황은 엔비디아 초기 4년 동안 수익을 내지 못하다 벤처투자사의 지원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긴 바 있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던 젠슨 황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내놓았고 성능을 인정받았으나, 고가에 호환성도 떨어져 다시 자금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1997년 3D 처리가 가능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내놓으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때 다시 파산 직전까지 갔었고, 당시 젠슨 황은 연봉을 1달러로 줄이면서 위기를 돌파했다.
젠슨 황은 지난해 주가가 200% 이상 상승한 것에 대해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는 “사람들은 놀랐지만, 나는 장기적인 계획이 없다”며 “내 계획은 여기에 있고, 엄청나게 좋은 일을 하고, 기여하고,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시계를 차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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