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여론조작의 희생양 손석구의 고군분투기, '댓글부대'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4. 3. 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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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기자 출신 작가가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 영화로 나왔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댓글부대'다.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서 기자가 주인공인 창작물은 제법 많았지만 타율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특히 영화에서는). 대국민 투표를 해본 건 아니지만 알 수 있다. '기레기'란 단어가 성행하는 것처럼, 기자는 그리 호감도가 높은 직업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세 배우' 손석구가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등장한 '댓글부대'는 어떤 반응을 얻을까. 

'댓글부대'는 '온라인 여론 조작'이라는 소재를 풀어내는 현실 밀착형 범죄 스릴러 영화다. 주인공은 실력은 있지만 허세가 가득한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 그는 수십억을 투자한 기술로 입찰에 응했으나 대기업 만전 계열사의 음모로 빼앗겼다는 중소기업 대표의 제보를 받는다.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고발하는 특종 기사를 쓴다는 쾌감도 잠시, 임상진의 기사는 오보로 판명되고 제보자인 중소기업 대표가 자살하면서 '기사 오보로 사람을 죽게 한 기레기'가 되어 정직당한다. 14개월이 흐르고 복직이 요원해 보이는 때, 임상진의 기사가 오보가 아니었다며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다는 익명의 제보자가 나타난다. 

영화는 임상진과 임상진에게 접근한 제보자 찻탓캇(김동휘)이 들려주는 '팀알렙', 두 축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초반, PC통신 세대와 촛불시위의 역사를 훑으며 흥미진진하게 내레이션을 읊는 임상진의 취재력이 마치 소설가의 구라(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처럼 관객을 홀린다면, 찻탓캇과 찡뻤킹(김성철), 팹택(홍경)으로 구성된 '팀알렙'의 온라인 여론 조작 활약은 각종 자료화면이 담긴 인터넷 화면 창과 그 속을 깨알같이 채우는 밈 등으로 스타일리시하게 연출되며 임상진과 관객을 홀린다. 

'100% 진실보다 진실이 섞인 거짓이 더 진짜 같다'는 찻탓캇의 말처럼, '어디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가늠할 수 없는 찻탓캇의 이야기들은 그럴 듯하다. 영화는 현실에서 흔히 목도할 수 있는 장면과 사건들을 녹여내며 풍자에 성공한다. '팀알렙'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평범한 대학생을 어떻게 자살로 몰고 갔는지를 보고 있으면, 일반인의 신상도 툭하면 탈탈 털려 멘탈이 가루가 되도록 조리돌림당하는 현 사회의 그것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나도 당할 수 있는 일이란 공감은 영화에 몰입하는 원동력이 된다. 여기에 복직은 물론 이직도 막혀 버린 고립무원 상태의 임상진이 과연 찻탓캇의 제보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영화의 흥미진진한 지점이다.

재미난 건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기자 임상진이란 캐릭터. '기레기'로 낙인 찍히기 전의 임상진이 어떤 기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자의 길은 어둡고 외롭다' '기사는 끝나지 않는 연재소설 같은 것' '전국이 우리 기사로 아침이면 도배가 될 것' 등등 그의 대사와 내레이션을 보면 기자라는 옷을 입은 자신에 어느 정도 도취돼 있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써 달라는 찻탓캇의 말에 임상진은 "내가 왜?"라며 의심을 세우지만, "저희 제보는 재밌을 거니까요"라는 그의 대답에 묵인하는 임상진의 모습도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와는 조금 동떨어진 모습이다. 새로운 편집국장 표하정(이선희)의 대사에서도 의심은 묻어난다. "스토리텔링은 좋아. 후킹도 있고. 근데 그거로만 기사 쓰면 그게 작가지, 기자야?" 기자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을 가득 담은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손석구는 언론시사 이후 "자기를 증명하는 데만 눈이 먼 이기적인 기자로만 안 보이길 바랐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명예회복에 진심이다가 내가 속은 건지 아닌지에 집착하는 기자로 변모하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보는 기자를 어느 정도 사실적으로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기자와 기자의 일을 중심으로 한 영화를 꼽아보면 '모비딕'(2011), '특종: 량첸살인기'(2015),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2015) 정도가 떠오른다. 각각 황정민, 조정석, 정재영과 박보영이 주연으로 나섰지만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한국 배우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일본영화 '신문기자'(2019)는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국내 성적은 신통치 못했다. 드라마로 넘어가도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스포트라이트' '히어로' '피노키오' '힐러' '조작' '아르곤' '날아라 개천용' 같은 드라마가 있었지만 소소한 중박은 있어도 대박은 없었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댓글부대'의 임상진은, 단독 입수한 제보로 특종을 터뜨렸다 그것이 초유의 실수임을 깨닫게 되는 '특종: 량첸살인기'의 허무혁(조정석) 기자와도 조금 닮아 있지만, '댓글부대'는 탄탄한 취재가 돋보이는 원작 소설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출한 안국진 감독의 추가 취재와 연출이 엮여 사뭇 다른 작품을 보여준다. 기자가 아무리 버라이어티한 사건에 휘말린다 해도, 흥행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직업군인 경찰(형사)이나 군인(장군), 왕족(왕) 등에 비해 소위 말하는 '그림', 볼거리가 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국진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은 큰 힘이다. 지금까지 가장 존재감과 성적이 좋았던 기자를 꼽으라면 아마 '내부자들'의 언론사 주필 이강희(백윤식)일 텐데, 손석구가 분한 임상진 기자가 얼마만큼 활약할지 기대해 본다. 

배우들의 연기는 만족스럽다. 심드렁한 듯 굉장히 사실적인 손석구의 연기는 임상진이 되어서도 여전한데, 의외로 놀라운 건 '팀알렙'으로 뭉친 김성철, 김동휘, 홍경의 앙상블 연기다. 여러 작품에서 이미 그 존재감을 발휘한 김성철은 물론 '거래'로 얼굴을 알린 김동휘의 의뭉스러운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D.P.' '약한 영웅 Class 1' '악귀' 등에서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홍경은 이 영화에서 분량은 적지만 세심한 표정으로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세 배우의 활약으로 손석구의 원맨쇼로 그치지 않아 영화가 심심하지 않은 느낌이다. 편집국장 표하정 역의 이선희와 만전 여론전담팀 팀장 남기홍(김준한)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러닝타임 109분, 15세 관람가. 3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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