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에 인생을 건 ‘전사’ 김대환 대표 “NBA처럼 UFC도 한국과 격차 커질 듯”
격투기 해설위원. 종합격투기(MMA) 체육관 관장. 또 격투기 단체 워독 미들급 챔피언이자 아마추어 단체인 KMMA 대표.
김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취미로 유도를 배우며 투기의 매력을 느꼈고, 진로를 격투기로 정하며 이 분야에 인생을 걸었다. 김 대표는 해설은 물론 직접 경기에 나설 정도로 열정적이다. 격투기 분야에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김 대표는 2017년 국내 단체인 로드FC 대표를 지냈다. 하지만 로드FC 대표자리를 박차고 나와 다시 마이크를 잡았고, 또 아마추어 단체 KMMA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이런 김 대표를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로드FC 대표로 일하던 때를 먼저 회상했다.
“로드FC에서 더 잘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아요. 또 직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커요. 더 잘해주고 잘 챙겨줬어야 하는데. 대표로 가긴 했지만 크지 않은 회사에서 직원들이 정말 많이 고생했죠. 정말 특수부대 용사들처럼요. 선수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에는 직원들 피땀이 녹아 있더라고요. 로드FC를 떠난 뒤 하루하루 보람차게 보내고 있어요. 해설로 복귀하니 시청자들도 반겨줘서 좋고요. 일주일 동안 한 대회 중계를 위해 공부하고, 다시 중계를 준비하는 일이 참 재미있어요.”
누구보다 많은 MMA 경기를 봤던 김 대표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매치는 예밀리아넨코 표도르와 미르코 ‘크로캅’ 필리포비치전이다. 이 경기는 2005년 8월, 지금은 UFC에 흡수된 프라이드FC에서 개최됐다.
“명경기는 정말 수없이 많죠. 하나를 고르긴 정말 어렵네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표도르와 크로캅 경기에요. 특히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아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때 정말 온 국민적인 관심사였어요. 경기 당시 해설할 때 갑자기 응원현장을 연결한다면서 극장을 비추더라고요. 상영관을 가득 채운 사람들끼리 반으로 나뉘어서 각기 다른 색 풍선을 들고 크로캅과 표도르를 응원했어요. 호프집에서도 사람들의 대화 주제에 표도르와 크로캅은 빠지지 않았죠.”
김 대표는 정신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에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효자종목으로 불렸던 투기 등이 약한 이유는 ‘정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결국 선수들은 ‘해병대 캠프’에 참여한 바 있다.
“저는 수학에 젬병인데 건설회사에 다니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과를 선택했어요.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나오지 않았죠. 정신력으로만 되는 게 아닙니다. 이제 고 3이 된 아들을 보면서 정말 뼈저리게 느껴요. 요즘 아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치열하고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한다는 걸요.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하는데 솔직히 지금 세대보다 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투기의 미래는 없는 걸까. 김 대표는 믿고 따라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같은 경우는 ‘먹고 사는 문제를 책임질 테니 메달을 따서 조국의 명예를 높여라’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어요. 정말 투기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다면 새로운 방식을 찾아봐야죠. 격투기에 빠진 사람 머리에서는 ‘관련 데이터가 풍부한 UFC 같은 단체와 협력해서 연구소를 세우고 강한 선수들을 모집하고 육성하는 방법’ 같은 것 말고 떠오르지 않네요. 전문적으로 투기를 가르치고 향후 파이터로 진로까지 열어주는 방법은 어떨까요.”
김 대표는 UFC 파이터들의 복싱 도전에 대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복싱과 MMA이라는 두 종목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생겼으니까요. 사실 둘 다 윈윈인 것 같은데 복싱에서 더 반기지 않을까요? UFC는 어둠의 시대를 지나 성장하고 있지만 사실 복싱은 죽어가고 있잖아요.”
복서들은 여전히 천문학적인 대전료를 받지만 UFC 파이터들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복싱의 인기가 하락 중이라는 의견에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이에 김 대표는 선수들이 쥐는 돈이 보이는 것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레녹스 루이스 같은 영국 선수를 미국으로 불러서 경기를 치렀죠. 그런데 이제 오일머니를 따라 중동에서 경기가 열리는 시대가 됐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복서들은 대전료를 챙겨가죠. 이 말은 ‘단체보다 선수의 힘이 강하다’는 뜻이에요. 선수들은 충분한 돈이 있으니 자주 대회에 나설 필요가 없고, 또 선수 입맛에 맞는 경기를 고를 수 있게 되죠. 마이크 타이슨과 루이스 경기는 협상부터 성사까지 7~8년이 걸린 것 같아요. 선수의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봅니다.”
MMA의 세계적인 인기가 높아지고, 선수들의 기량도 성장하면서 김 대표는 한국 선수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UFC도 언젠가 미국 프로농구(NBA)처럼 한국 선수들에게 높은 벽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벌어져요. 지금 UFC를 보면 무서울 정도예요. 인간의 종이 다른 선수들이 뛰는 무대가 됐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에 없던 다게스탄 선수들이 UFC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이름이 있는 체육관엔 주짓수 블랙 벨트도 100명씩은 있어요. 여기에 유럽에서 센 선수들은 물론 중국과 카자흐스탄 등에서도 시스템을 갖춰서 선수를 육성하고 있고요. 캐릭터가 강했던 선수들, 그러니까 카운터 타이밍을 잘 잡거나, 복싱, 레슬링, 주짓수 등 한 분야에 특출난 점이 있는 선수도 UFC에서 돋보일 수 있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 그러기 어려워졌다는 뜻이에요. 프라이드FC나 K-1 시절과는 비교하기 어렵죠.”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김 대표는 아마추어 단체인 KMMA를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KMMA에 대해 “누구나 뛸 수 있는 무대”라고 소개했다.
“거창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저 전국에서 격투기를 수련하거나 좋아하는 동호인들이 경험해볼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프로를 준비하는 미래의 선수들에겐 실전 경험을 쌓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고요. 대회를 더 크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그저 탄탄한 아마추어 단체가 돼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접근하고 싶어 만들고 싶어요. 아, 사실 참가비를 받는데 턱없이 부족해 스폰서 지원을 일부 받아요. 순수 아마추어라고 말씀드리긴 좀 어렵네요.”
KMMA는 실력에 따라 입문자를 위한 △노비스, MMA 수련 경험이 있는 △아마추어, 또 프로전향을 준비하는 △세미프로로 나눠 경기를 치른다.
“노비스용으로 정말 좋은 헤드기어를 준비했어요. 펀치를 안면에 허용하면 충격이 아니라 분노만 쌓일 정도로요. 또 바디 니킥 등 위험한 기술도 금지되고 관절기도 들어가기 직전에 중단될 정도로 철저한 심판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토요일에 경기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에게 최대한 부담을 덜 주기 위한 조치죠.”
해설에 체육관까지 운영하면서 단체까지 이끌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KMMA 덕분에 뿌듯한 순간은 수없이 많다.
“격투기 무대에 올라서면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여기에 남의철, 이둘희 같은 선수나 차도르 같은 인플루언서가 해설을 도와주기도해요. KMMA 무대에 선 이들이 ‘스타가 해설해 준 경기를 뛰었다’는 식의 자랑스러운 추억을 만들어줬다는 생각에 뿌듯하죠. 어느 날은 한 분이 저희에게 100만원이 든 봉투를 주시면서 한국 격투기 유망주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경기 하루 전에 갑자기 ‘저 경기 못 나와요’하는 선수들도 있어 곤란한 적도 있습니다.”
KMMA는 3월30일 서울에서 대회를 치른다.
“이번 대회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고 또 MMA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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