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귀국’ 이종섭, 총선까지 머문다…“체류 동안 호주대사로 일정” 사퇴 선그어

2024. 3. 2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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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공관장 회의’ 명분 조기 21일 인천공항 통해 귀국
이종섭 “제기된 의혹 사실이 아니라는 점 분명히 말씀”
“체류하는 기간 공수처와 조율돼 조사받을 기회 있으면”
민주당, 공항에서 항의 “임명 철회하고 대국민 사과하라”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영종도=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귀국해 제기된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한국에서의 체류 일정이 “전부 호주대사로 해야 할 중요한 의무”라고 말했다. 자진사퇴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이 대사는 싱가포르를 경유해 SQ612 항공편으로 이날 인천공항에 도착, 오전 9시36분 인천공항 출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사는 ‘사의표명할 생각이 있나’, ‘공수처 조사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등 취재진의 질문을 모두 듣고는 준비한 말을 꺼냈다.

이 대사는 “저와 관련해 제기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려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임시 귀국한 것은 방산협력 관련 주요국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며 “체류하는 기간 동안 공수처 일정 조율이 잘 돼 조사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대사는 한국에서의 일정과 관련해 “방산협력 관련 업무로 상당히 일이 많을 것”이라며 “그다음주는 한-호주 간 2+2회담 준비 관련한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말씀드린 두 가지 업무가 전부 호주대사로 해야 할 중요한 의무”라며 “그 의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영종도=이상섭 기자

이 대사의 귀국은 대사로 임명돼 출국한 지 11일 만이다. 명분은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 참석이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자발적으로 받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이 이례적인데다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로 출국금지 상태였던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대사 임명 직후인 지난 7일 공수처의 조사를 받았고 8일 출국금지 조치가 해제돼 10일 호주로 출국해 ‘도피성 출국’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치권은 ‘도주대사’(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런종섭’(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이라고 지적했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과 함께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대형 악재로 떠올랐다.

이 대사는 17일 현지에서 “공수처와 4월 말 공관장 회의 기간에 일정을 잡아서 가는 것으로 조율이 됐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지난 18일 “공수처가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선거를 치르는 수도권 후보자들을 중심으로 이 대사의 귀국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갈등으로 확전되는 기류가 흐르자 전날 이 대사의 조기 귀국 사실이 공식화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사의 귀국 사유에 대해 “방산협력 주요국 공관장 회의 및 5월 초 한-호주 국방·외교 2+2 장관회의 사전조율”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전날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 주관으로 25일부터 주요 방산 협력 대상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카타르, 폴란드, 호주 등 6개국 주재 대사들이 참석하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수처가 소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귀국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다. 외교부에 따르면 회의는 부처별 협의, 유관 부처 및 해당 공관장 합동회의, 정책 과제 관련 유관기관 토의, 방산 기업 시찰 및 토의 등으로 구성된다. 수일 동안 회의가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오는 5월 한-호주 2+2 장관회의 사전조율을 언급한 것을 종합할 때 이 대사는 총선 전까지 한국에 머무를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대사의 귀국 명분이 공수처 수사가 아닌 공관장 회의인 것은 대통령실의 원칙이 바뀌었다는 지적을 피하면서 외교적 결례 논란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가에서는 주재국인 호주가 이 대사의 아그레망(주재국 부임 동의)을 부여한 상황에서 대사가 부임 11일 만에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기 위해 다시 귀국한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를 대표해 외교교섭을 하는 대사로 적합한지에 대해 우려도 나온다. 현지 공관의 대사 공백은 길어지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벽부터 인천공항에서 ‘피의자 이종섭 즉각 해임! 즉각 수사!’ 팻말을 들고 이 대사를 기다렸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애초부터 호주 대사 임명 자체가 잘못”이라며 “호주로 도피시킨 것 자체가 대통령실로 연결되는 수사 진행을 고의로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렇게 들어오는 것 자체가 국제적 망신이고 호주에 대해서는 외교적 결례”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 대사 임명을 철회하고 대국민 사과하라”고 말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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