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님 서 계시던 자리”…이런 CEO 불안한 까닭

한겨레 2024. 3. 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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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리포트] 이창민의 한국 경제 속 재벌탐구
“카리스마 걸친 재벌 3·4세…경영실적 없이 혈통만”
사진은 지난해 말 밈이 된 이재용 삼성 회장의 표정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다. 그에게 열광하는 이들은, 그를 현실세계에의 토니 스타크(영화 ‘아이언맨’ 주인공)라고 칭송한다.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슈퍼히어로를 넘어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믿음도 드러낸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인데 퉁명스럽기까지 한 나르시스트라고 그를 혹평한다.

정치학이나 심리학에선 카리스마를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따르게 하는 능력이라고 표현한다. ‘카리스마 최고경영자’에 대한 분석·연구들 중 흥미로운 결론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사람들은 카리스마 최고경영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카리스마 최고경영자는 의외로 단점이 많다.’ 카리스마 넘치는 재벌 총수가 기업과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현실을 염두에 두면 ‘카리스마 최고경영자’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 그들에겐 남과 다른 아우라가 있다?

싫든 좋든 재벌그룹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고 그 재벌그룹을 좌지우지 하는 존재가 바로 총수다. 현재는 창업주 3~4세들이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그들은 회사를 세우지 않았으며, 창업가정신이 있는 것도 아니며, 경험이 풍부하지도 않다. 더구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최고경영자에 오르지 않았다. 이들이 최고 자리에 오르려면 엄격한 평가 등 절차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정당화 논리는 있어야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바로 카리스마다. 빈말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벌총수들과 부산에서 떡볶이를 먹은 에피소드를 보자. 윤 대통령은 바쁜 회장들을 정치적 행사에 동원했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삼성 이재용 회장은 “쉿”하는 익살표정 밈이 퍼지고 어묵집 앞에 “이재용 회장님 서 계시던 자리”라는 표시도 붙었다. 소소한 이 에피소드에서 이 회장에게 남과 다른 카리스마가 있다고 여기는 대중 심리가 엿보인다. 회사 내부자들이 ‘우리 회장’에 대한 평을 할 때 다른 건 몰라도 “아우라”는 확실히 있다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한다. 즉 재벌 3~4세의 정당화 기저에 카리스마가 있다는 게 내부자들의 전언이다.

카리스마 최고경영자가 기업 실적을 개선하는가? ‘당연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으나 다양한 연구의 결론은 ‘단정하기 어렵다’이다. 이런 결론을 놓고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건 카리스마의 유형에 따라 실적 개선 가능성이 영향을 받는다는 풀이다. 과거의 경영실적과 화려한 커리어 등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사실에 근거해 형성된 카리스마와 객관화되지 않고 막연한 심리나 기대를 배경으로 한 카리스마는 그 결과도 다를 가능성이 있다.

막연한 심리나 기대에 근거한 카리스마란 무엇일까. 대표적인 게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카리스마의 전형과 상대방이 비슷하면 그 상대에게 카리스마가 있다고 믿어버리는 경우다. 총수일가들이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하는 등 신비주의로 일관하면 왠지 귀족같이 보이고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3~4세 총수들의 카리스마에는 객관적 실체가 있을까? 과거의 경영실적은 없다. 있는 경우에도 실패가 많고,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의 고난·역경·실패와는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고속승진은 했으나 그걸 3~4세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결국 카리스마의 근원은 재벌가라는 혈통에 근거한 레거시 하나 남는다. 창업주의 카리스마와 3~4세의 카리스마는 그 종류가 다르다는 예기다. 후자의 카리스마가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창업기를 지나 성숙 단계에 접어든 재벌그룹 상당수는 창업주의 3~4세들이 이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외 행보 때 함께 하는 기업인들도 창업주의 손자·증손자들이 다수다. 사진은 지난해 말 윤 대통령이 부산 방문 때 재벌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는 모습이다. 마지막은 멸공 논란 당시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다

■ 창업주와 다른 3~4세 카리스마 리더십의 위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단 회사 경영이 위기에 빠지면 어김없이 카리스마 최고경영자에 대한 요구가 증폭된다. 재벌로 치면 카리스마 총수 3~4세가 회장으로 등극할 공간이 생긴다. 위기시 등극한 최고경영자는 조직을 흔들게 마련이다. 최근 회장에 취임한 신세계 정용진 회장을 보자. 본인이 부회장으로 있던 지난 5년, 10년간 이마트 주가는 각각 59%, 70% 하락했다. 회장 자격이 의심되는 사람이 유통산업 위기를 기회 삼아 회장으로 오른 모양새인데, 그의 첫 일성이 임원진 ‘신상필벌’이다.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한 태도이며,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이기도 하다.

두번째, 카리스마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보수를 실적과 상관없이 많이 챙겨간다. 얼마 전 주주와의 소송에서 패소하여 약 74조원 규모의 주식 보상을 뱉어낼 위기에 놓인 일론 머스크 사례가 흥미롭다. 주주가 그가 받는 보상이 너무 많다고 주장하자 머스크 쪽은 엄청난 규모의 보상을 논거 중 하나로 머스크가 슈퍼스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놓고 카리스마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재벌 3~4세들은 전형적으로 카리스마에 대한 보상받는 이들이다.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최고경영자를 해야 한다면서 초고속으로 회장까지 올라가면서 직급마다 보수를 밀어 올린다. 전지전능한 슈퍼맨인 듯 복수의 계열사에서 임원을 겸직하면서 보수를 중복 수령하는 이들도 있다.

세번째, 카리스마 최고경영자는 대중의 관심을 좇아 회사 밖으로 돌아다니는 경향이 있다. 그게 다른 조직의 일이 됐든, 어디 가서 강연을 하던 간에 말이다. 요즘 같은 환경에서 딴 짓을 하는 주요 공간은 단연 사회관계망 서비스다. 사회관계망을 통해 온갖 일에 다 끼어드는 게 일론 머스크다. 한국에선 정용진 회장이 이런 유형에 들어맞는다. 물론 개인·사회적 활동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 수준이 과도하고 본업이 부실해질 때 문제가 된다.

네번째, 카리스마 최고경영자에 대한 외부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데, 문제는 평가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애널리스트가 카리스마 최고경영자에 주목해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투자 권유를 했으나 회사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사례는 적지 않다.

카리스마에 대해 정보와 해석능력이 부족한 비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자본시장의 전문가들까지 카리스마를 과대평가하고 이런 평가에 기대 잘못된 예측을 내놓곤 한다는 뜻이다. 이런 카리스마 최고경영자에 대한 외부 평가와 여기에 바탕을 둔 섣부른 예측이 재벌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주요 채널 중 하나다. 전문가 집단이 일반 국민보다 오히려 더 총수의 카리스마를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그리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숨겨진 사업적 이해관계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연구 결과는 아니지만 내가 걱정하는 두가지를 언급하고 글을 맺으려 한다. 재벌 3~4세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롤 모델을 만들려 노력한다. 그게 스티브 잡스일수도 있고 일론 머스크일수도 있겠다. 둘 다 성격 독특하기로 유명하지만 어찌되었건 그들은 기술로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카리스마 실체가 나름 분명하다는 얘기다. 뭔가를 이뤄낸 게 있기 때문에 동료·임직원에게 가혹해도, 사회관계망에서 관종질을 해도, 싸움질을 하겠다고 설쳐도 봐줄만한 구석이 있다. 별로 이룬 게 없이 최고경영자에 오른 재벌 3~4세들이 임직원에게 가혹하고, 관종질 하고, 싸움질 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회사에 위험을 더할 뿐이다.

없는 카리스마를 무리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도 부작용이 생긴다. 그들이 카리스마를 만들어내려면 내부를 다잡는 수밖에 없다. 강력한 인사권과 보수통제권은 그들의 무기다. 이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그냥 철권통치일 뿐이다. 후진적 지배구조의 전형이기도 하다. 나는 이걸 깨는 총수 3~4세가 있으면 나는 그를 카리스마 최고경영자로 인정할 것이다. 그는 회사의 전략과 문화를 바꾼 리더이기 때문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 참고문헌

Tosi, Henry L., et al.“카리스마 시이오, 보상과 회사 실적’ The Leadership Quarterly 15.3 (2004).

Malmendier, Ulrike, and Geoffrey Tate. “수퍼스타 시이오"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24.4 (2009):

Khurana, Rakesh. “수퍼스타 시이오의 저주” Harvard business review 80.9 (2002): 60-6.

Jacquart, Philippe, and John Antonakis. “카리스마는 언제 중요한가?”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58.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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