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초심 유지 중···“미용실 X, 집에서 커트” (유퀴즈)[종합]

장정윤 기자 2024. 3. 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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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가 자신의 인생 철학을 전했다.

20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기안84가 출연했다.

이날 기안84는 “올해 41살 된 방송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있는 과천 살고 있는 기안84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유재석은 ‘2023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차지한 그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기안84는 “대상 이후의 변화를 기대했는데 달라진 게 없더라. 그리고 변화하면 안 되겠더라. 친구들이랑 파티하면 사람들이 미워하겠더라. 아저씨들끼리 놀았는데 재미없었다. 수원 가서 고등학생 동창들과 술 한 잔 하는데 재미없더라.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그는 “여주도 다녀왔다. 정치를 하면 이렇게 되나 싶더라. 너무 환대해 주시니까 무서웠다. 망망대해로 나간 새끼 거북이가 짬 좀 차고 거대해져서 알을 까러 온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 준 선물? 콘솔 게임기를 샀는데 설치를 안 했다. 나이 먹으니까 재미가 없더라. 낭만이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초심을 지키는 그만의 루틴은 여전했다. 기안84는 “메이크업을 받고 온다면 너무 연예인 같다. AOMG 가니까 옷 협찬이 많이 들어오더라. 입는 옷만 입고 있다. 몇 번 안 입고 옷을 버리면 환경오염이니까. 뽕 뽑을 때까지 입고 빨아야 만족감이 온다. 머리도 집에서 자른다. 미용실 가는 시간이 아까우니까”라고 밝혔다.

기안84가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달랐다. 그는 “외동인데 공부를 못했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그림을 잘 그리니까 어머니가 ‘네가 먹고 살 길은 이거다’ 하셨다. 그때 비교를 친구들이랑 한 게 아니라 월드스타 비랑 비교를 했다. 어떡하라는 거냐 나보고”라고 하소연해 웃음을 자아냈다.

군대에 간 기안84는 웹툰이라는 새 길을 찾았다. 그는 “내가 어떻게 열심히 살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웹툰을 해야겠더라. 웹툰 소재를 고민하다가 군대 만화는 몇 개 있었다. 의경 만화가 없길래 ‘노병가’를 시작했다. 야후 코리아에서 연재했는데 월 4회에 60만 원을 준다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기안84는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진 뻔했지만 이말년이 더 해보자고 해서 네이버 카툰 데뷔를 하게 됐다. 그는 “4번 도전해서 갔다. 웹툰 그리는 것도 운동선수처럼 생각했다. 1등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재하면 어떤 요일에 가도 1등 할 자신이 있었는데 데뷔가 안 되니까. 출발선에서 출발을 못하는 기분이었다. ‘패션왕’ 넣었는데 됐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마감에 쫓기는 기분은 심각했다. 기안84는 “마감 못 지키는 걸로 유명했다. ‘패션왕’이 조회수 1등을 했는데 마감을 계속 못 지켰다. 잘라버린대서 도망가고 연락을 끊었다. 김준구 대표 없었으면 연재도 못했을 거다. 회사 4층에 숙직실이 있어서 씻고 잤다. 눌러 살았다 2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삶은 ‘나 혼자 산다’로 재조명됐다. 기안84는 “먹고 자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내가 빨래를 대충 하고 청소를 대충 하는 걸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게 뭔가 싶더라. 돈 버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망망대해를 보고 가는데 양말 구멍은 중요하지 않다. 사사로운 것에 사람들이 관심 많은 줄 몰랐다. 그런 에너지보다 그림 그리는 게 좋다”고 남다른 철학을 자랑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현재 그는 웹툰이 아닌 팝아트 작가로 활동 중이다. 기안84는 “웹툰은 힘들어서 못하겠더라. 하고 싶은 미술을 했다. 재밌더라. 붓질이 힐링도 되고. ‘기안도’는 기묘한 생각이라는 뜻이 있더라. 돈도 좋아하고 명예도 좋아하고 탐욕적인 게 많다. 모든 걸 내려놓는 무소유도 갖고 싶더라. 그래서 첫 전시회 이름이 ‘풀소유’였다”며 현재는 네잎클로버를 주로 그린다고 했다.

기안84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갠지스강에 꼭 가고 싶었다. 살아생전에.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해서 갔는데 허무해졌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태워서 보내니까 묘하더라”고 속마음을 내비쳤고 ‘무한도전’ 촬영 때 인도에 갔던 유재석도 크게 공감했다.

기안84는 “여행을 하면서 바뀐 것? 우리나라에서는 루틴대로 움직이지 않나. 촬영과 그림. 양식당하는 느낌이었는데 외국에서 호흡하게 되면 자연산 광어처럼 도파민이 나오는 느낌이더라. 거기 사는 사람들은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게 에너지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게 진짜 여행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혼산’에서 제 에피소드가 나가면 시청률 확인을 하게 된다. ‘태계일주’도 매일 확인하게 되고. 뭘 좋게 좋게 생각하냐고. 2049는 얼마 나왔는지도 묻는다. 웹툰은 실시간 조회수가 주식 창처럼 바뀌니까 노이로제가 걸렸다. 방송도 보는 사람이 재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기안84는 인생을 여행으로 정의했다. “한 번 살다 가는 것, 즐긴다는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맞이하는 자세가 행복 지수를 결정한다더라. 위기가 와도 하나의 재밌는 이벤트라 생각하면. 인생은 외줄 타기 같다.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끝으로 그는 “마라톤 풀코스? 대단한 기록은 아니지만 됐다. 인생이 이대로 가는 게 어디냐. 제가 공사장 막노동, 학원 강사, 아이들 픽업 등 많은 일을 했는데 웹툰이 제일 힘들었다. 다시는 안 할 것 같다. 연재 하면 어그로 끌다가 떨어질 것 같다. 별거 없다고”라고 솔직하게 말해 웃음을 안겼다.

장정윤 온라인기자 yunsu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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