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119 ‘이웃복지사’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3.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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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방문진료센터 최희선 간호사가 이웃복지사들에게 혈압과 혈당측정법에 대해 교육하는 모습. 필자 제공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이제는 화장실 갈 때 꼭 핸드폰 가져가.”

“왜요?”

“넘어지거나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하려고.”

할머니는 몇달 전 화장실에서 넘어져 손목이 골절된 적이 있다. “와~ 잘하시는 거예요. 누구한테 전화하시려고요? 119? 아드님?” “아니, 옆집 ○○네에게 전화해.” 119를 불러도 오는 데 족히 50분은 걸리는 산골. 이곳에서 홀몸 노인이란 가족이 없는 노인이 아니다. 가족이 올 수 없는 노인이다. 자식들은 너무 멀고 이웃들은 가깝다. 위급할 때 맨발로 달려와줄 사람은 서울 사는 큰아들이 아니라 옆집 사람이다. 그래서 아픈 시골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자식들이 아니다. 이웃이다.

시골 노인들은 대체로 사람들에게 잘한다. 도시인들과 다른 인성을 가져서가 아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골 노인의 삶은 이웃에 대한 선함이 필요하다. 자신이 돌봄받기 위해서도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이웃이 건강해야 내가 건강할 수 있다는 말은 시골에서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실제적인 삶의 지침이다.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연락이 와서 왕진을 가보면 진료의 훼방꾼(?)을 만나기도 한다. 방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사람들은 음식을 챙겨 오는 이웃들이다. 도시에서는, 돌봄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에는 돌봄이 없다. 집 문을 열고 한 발짝만 나가도 바깥세상은 타인들의 세계, 돌봄 제로 지대이다. 하지만 시골은 돌봄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에도 이미 돌봄이 있다. 다만 그것을 돌봄 서비스라 이름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돌봄 체계는 시골의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익명성의 사막인 도시의 돌봄과 아무런 차이 없이 설계되어 있다. 그 결과 시골은 도시에 사는 요양보호사에게 와달라 특별히 사정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요양등급을 받고도 요양 서비스를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웃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돌봄의 자격이 없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자격이 있다는 것일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새로운 시도가 여기 있다. 소양강댐 ○○노인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이웃복지사’ 제도이다. ‘마을은 1차 복지기관, 이웃은 1차 사회복지사’라는 기치 아래 1년 전 30여명의 이웃복지사가 첫 활동을 시작했다. 해당 마을에 사는 더 젊고 건강한 이들이 복지사가 되어 이웃 노인들을 돌본다. 돌봄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서로 알고 있는 이웃이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올해부터는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지난 연말, 1년간의 이웃복지사 활동을 정리하는 영상의 마무리는 이렇게 끝났다. “우리는 이웃입니다. 밤새 안녕한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마음을 씁니다. 말벗을 하고 함께 장 보고 같이 밥 먹고 건강 체조도 하고 방문 진료 신청으로 집에서 진료받을 수 있게 합니다. 식사 준비에 반찬 나눔에 집수리에 이불 빨래에 이동 지원에 미용에 새 친구 소개에, 때로는 죽음을 목격하고 수습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웃복지사, 마을 어르신의 일상을 바꾸는 일을 합니다.”

왕진 가면서 마주하게 된 ‘시골과 노인’은 이전의 내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세계였다. 그러면서도 결핍의 세계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왕진 가기 전 나는 시골을 도시의 부재라고 생각했다. 도시에 있는 것들, 밤늦게 하는 식당과 가게, 대형 마트, 극장, 병원… 그런 편리한 것들이 없는 곳이 시골이라고. 하지만 왕진을 가면서 알게 됐다. 시골은 도시의 부재가 아니라 거꾸로 도시가 시골의 부재라는 것을. 시골에 있는 것들, 이웃, 접촉, 흙… 그런 게 없는 곳이 도시라는 것을. 결핍의 세계는 오히려 내가 속해 있는 도시가 만들어놓은 세상이었다. 도시에 사는 나는 내게 무엇이 없는지를 결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부끄러움 없이 함부로 노인과 시골을 재단했다. 하지만 알아갈수록 텅 빈 세계는 시골이 아니라 내가 사는 이곳이었다. 이웃이 필요 없는 우리, 아플 때 119에 전화만 하면 되는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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