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지' 분당에 뜬 '노무현의 남자' 이광재 "제가 진짜 일꾼"
"처음에는 '나와줘서 고맙다'던 주민들이 이제는 '꼭 이겨달라' 하시네요."
백화점을 찾은 방문객들로 붐빈 지난 16일 저녁 경기 성남시 판교역 인근. 이날 마지막 유세 일정을 소화하던 더불어민주당 경기 성남분당갑 이광재 후보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강원 지역에서만 출마해온 이 후보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분당갑에 전략공천됐다. 대권에 도전했던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버티고 있어 주변의 우려가 컸지만 "윤석열 정부 심판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실행해야 한다"면서 출사표를 던졌다. 이 후보는 유세 활동을 통해 주민들의 정권 심판 열의가 더욱 잘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실력은 이광재'다. '원조 친노(친노무현)'인 이 후보는 참여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강원도지사 등을 지내며 얻게 된 '일하는 정치인'이란 평가를 부각해 선거를 승리로 이끈단 전략이다. 이를 위해 이 후보는 연일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매일 아침 거리·차량 인사에 나서며 출근길 주민과의 만남으로 하루를 연다. 여러 간담회에 참가하고 퇴근 시간까지 상가를 돌며 인사 나누길 반복한다.
주말인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오전 인사와 한 아파트에서 주최한 알뜰장터에 참여하고 백현마이스추진위원회와의 간담회를 마친 뒤 율동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분당 시민들이 사랑하는 쉼터다. 이 후보는 수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마주치는 모두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지지를 부탁했다.
이날 유세에는 민주당 강선우 의원(서울 강서구갑)도 함께했다. 강 의원도 이번 총선에서 본인 지역구 재선에 도전하느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험지 출마를 감행한 이 후보를 돕기 위해 이날 분당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강 의원은 이 후보와 사진 찍기를 요청하는 이들의 휴대폰을 건네받아 자세를 낮춰 사진을 찍는 등 이 후보 지원에 매진했다.
산책로에서 만난 한 40대 여성은 "강원도에서 오셨다는 말 들었다. 너무 기대된다"며 이 후보를 환하게 맞았다. 민주당 당원이라고 밝힌 30대 장애인 여성은 "이 후보가 왔다는 얘길 듣고 휠체어를 끌고 인사드리러 왔다"면서 "반드시 승리해 장애인을 위한 많은 정책을 선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산책을 나온 50대 남성 4명도 이 후보를 알아보더니 함께 사진 찍기를 청했다. 짧게는 25년 길게는 30년 넘게 분당에 거주했다는 이들 중 한 남성은 "분당갑은 1기 신도시와 판교를 중심으로 한 2기 신도시가 모두 포함되다 보니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서 "자연히 관심사나 요구사항도 다 다르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재건축만 하더라도 70대 이상은 지금 모습 그대로 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해 반대하는 이들이 많고 재산증식을 바라는 50대를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려 하는 것"이라면서 "신분당선·분당선 인근 단지와 먼 단지 간 교통에 대한 불만 정도도 큰 차이를 보이는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이 당선돼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둘레길을 걷던 도중 '황톳길 맨발 걷기' 체험장이 나타나자 이 후보와 강 의원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주민들 앞에 섰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이 "분당에서만 13년을 산 저희 아이가 올해 24세가 돼 청년수당(성남시 청년기본소득)을 받을 나이가 됐는데 이게 없어졌다"면서 "새로 취임한 시장(신상진 성남시장)이 그걸 없애 너무 화가 난다"고 토로하자 이 후보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경청했다. 이어 옷 품에서 수첩을 찾다가 놓고 온 것을 깨닫고는 "반드시 살펴보겠다"고 다독였다.
이 후보의 이런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웃음 전도사'로 유명한 정덕희 교수였다. 정 교수는 "이 후보의 어머니가 저를 양녀로 삼았다. 이 후보가 원래는 1남 6녀 중 둘째인데 나까지 1남 7녀의 둘째다"면서 "유세에 참여할 순 없지만 멀리서라도 응원하기 위해 함께 왔다"고 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정식 후보 등록 전 예비후보 신분일 때는 후보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만이 명함을 나눠주거나 육성으로 지지를 호소할 수 있다.
이 후보의 유세는 율동공원에서 판교역으로 이어졌다. 대형 백화점과 접해 있어 타 지역구 거주민 비율도 높았으나 본인과 민주당을 지지해달라는 호소를 이어갔다. 12시간 넘게 이어진 강행군으로 지친 기색을 보인 이 후보는 잠시 쉬어가자며 인근의 한 카페로 들어섰다. 휴식을 위해 들어섰지만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명함을 건네고 주먹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이 후보는 "주요 단지들이 저와 안철수 후보를 각기 다른 시간에 불러 간담회를 실시한다. 대형 스크린에 날카로운 질문들이 빼곡히 띄워 놓고 즉석에서도 어려운 현안 관련 질문들이 쏟아진다"면서 "진땀을 빼면서도 분당 주민들이 단순히 정당만 보는 게 아니라 각 후보의 답변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검증하는 것 같아 굉장히 합리적인 선거를 치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분당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진짜 일꾼'임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 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경기 성남 분당갑은?
경기 성남 분당갑은 수도권의 대표적인 보수 텃밭이다. 1기 신도시인 분당과 2기 판교신도시를 동시에 끼고 있는 지역구로, '경기도의 강남'으로 불린다. 다만 판교신도시가 들어선 후 젊은 IT(정보기술) 종사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보수세가 옅어졌단 평가도 있다.
분당갑은 분당신도시가 들어선 후 16대 총선부터 보수 정당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16대 총선에서 고흥길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돼 18대까지 내리 3선을 지냈고, 19대 총선에선 이종훈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했다.
반전은 20대 총선에서 일어났다. 민주당은 판교 테크노밸리의 성공한 기업가 출신인 김병관 후보를 영입해 공천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당시 현역인 친유승민계 이종훈 의원을 배제하고 친박계 권혁세 후보를 전략공천했다. 결국 김병관 후보가 이 지역구에서 진보진영 최초로 당선됐다.
21대 총선에선 김은혜 후보가 파란을 일으켰다. 미래통합당이 경기도 59석 중 고작 7석을 따내며 고전한 가운데서도 김 후보는 현역 김병관 의원을 상대로 0.72%p(포인트) 차이 신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였다. 판교 10년 공공임대 분양 전환 문제 등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문제가 영향을 미쳤단 분석이 많다.
김은혜 의원이 경기도지사 출마로 사퇴하며 열린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선 김병관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대결하며 IT 기업가 빅매치가 성사됐다. 결과는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안 후보의 압승이었다.
김병관 전 의원이 지난해 강제추행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으면서 오는 4월 총선엔 민주당 소속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이 현역 안철수 의원과 대결하게 됐다. 개혁신당에선 류호정 후보가 나선다.
성남(경기)=김도현 기자 ok_k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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