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균형과 거꾸로 간 교통공약…인구·일자리 핵심은 빠져”
4·10 국회의원 총선거가 21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공천 갈등의 격랑 속에서 대진표를 마무리 짓고 대오 정비에 들어갔다.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한국 사회의 해묵은 난제를 풀 해법과 비전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할 순 없다. 한겨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위기로 △기후변화 △지역 균형 발전 △민생경제 △저출생 등 네가지를 설정하고, 각 정당들이 내세운 관련 공약을 살폈다. 현장을 찾아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미래지향성·구체적·통합성 세가지 평가 지표에 따른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공약 분석을 싣는다.
주요 정당이 4·10 총선을 앞두고 내놓은 지역균형발전 관련 공약은 대부분 전문가들로부터 낙제점을 받았다. ‘균형발전 정책’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개발 공약에 가깝고, 정책이 현실화하면 오히려 수도권 쏠림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다. 대선 때 내놨던 공약을 재탕하거나 구체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공통으로 앞세운 건 철도 지하화와 광역급행철도망(GTX) 연장 등 교통 인프라 확충이다. 국민의힘은 수도권뿐 아니라 대전, 대구, 부산 등에도 광역급행철도를 구축해 ‘교통 주거 격차를 해소’하고 광역권을 중심으로 1시간 생활권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민주당은 철도망 분담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과 함께 전국을 광역권으로 재편해 광역행정청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철도 지하화’는 두 당의 공통 공약이다. 지하화로 생긴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를 대규모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전문가들은 두 당의 공약을 두고 ‘수도권 과밀화를 촉진해 사회 통합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재우 인제대학교 교수는 “지역의 경쟁력 상실은 내부 교통망이 턱없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며 “진짜 필요한 건 광역 간 급행열차가 아니라 광역전철망이고 대중교통 확충으로 지역 내에 촘촘한 연결망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철도 지하화’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원을 교통망 확충에 돌려써야 한다는 얘기다.
철도 및 도로 지하화 역시 비수도권의 소멸을 앞당길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지상의 토지 가격 상승과 투기·개발이란 예고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고, 소수에게만 이로운 정책으로 공공성이 더 후퇴”(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한다거나 “개발 수익 면에서 수도권과 지방 간 현격한 격차가 있어 인프라 개선은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진종헌 공주대 교수)는 견해 등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차라리 전국의 버스와 지하철을 통합해 ‘대중교통 완전공영제’를 추진하겠단 녹색정의당의 공약이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에도 적합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거대 양당이 내놓은 지역 공약은 큰 차이가 없는데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표피적 접근에 그친다는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초의수 신라대 교수는 “디지털 전환, 에너지·생태 이슈 등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지역 정책이 빈약하고, 인구 급감이나 2차 공공기관 이전 등과 관련한 핵심적 질문을 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역에 단순히 돈과 사업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체 역량을 키우고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게 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되지 않아 미래지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개발 공약들 역시 “구체적인 재정계획이 없어 구호 수준에 그치고, 기존 재원이 풍부한 수도권에 유리해 ‘균형발전’을 위한 공약으로 보기 어렵다”(강현수 중부대 교수)는 지적도 나왔다. 정책의 구체성이 매우 낮다는 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강 교수는 “일자리를 지역에 만들어주는 게 핵심인데 일자리 얘기가 없다”고도 했다.
이밖에 국민의힘이 내놓은 ‘세컨드 홈 활성화’는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켜 지역민을 떠나게 하는 공약”(하승우)이란 점에서, 민주당의 ‘광역행정청 설립’은 “어떤 기준으로 만들고, 어떤 역할을 할지 제시돼 있지 않다”(강현수)거나 “완성도가 낮은 공약”(홍재우)이란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지역 현실을 반영하고 ‘지역 소멸’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이 엿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건 녹색정의당뿐이다. 녹색정의당이 1호 공약으로 발표한 ‘지역 소멸 대응 5대 약속’은 “지역 소멸에 중점적으로 대응하는 일관된 방향성이 돋보인다”(초의수), “기존에 논의된 (지역) 의제 가운데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을 상당히 포함했다”(진종헌)는 평가다. 특히 지역공공은행 설립 등 ‘지역순환경제 5법 제정’, ‘지방교부세 법정률 상향’은 “부의 역외 유출을 줄이고 공공 조달을 활성화해 지역의 다양성을 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하승우)는 호평을 받았다. 다만 하 소장은 “추진 주체 등이 불분명해 미래지향성, 현실 적합성, 사회 통합 모두 긍정적이지만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녹색정의당의 ‘지방교부세 법정률 상향’ 정도가 일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공공병원 짓고 지방대 더 지원…그런데 무슨 돈으로?
지역 의료·교육 공약 평가
지역 의대 신설과 지방대 지원 확대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내놓은 핵심 공약이다. 전문가들은 지역이 처한 위기 상황이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의대를 신설하고 지방대 지원을 늘리는 게 지역 소멸에 적합한 처방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나타냈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의대 증원 논의에 발맞춰 지난달 4일 의료 취약 지역에 지역 의대를 신설하겠다는 안을 발표했다. 지역 거점 공공병원과 대학병원이 원격 협진 체계를 구축한 ‘스마트 공공병원’을 만들고, 비대면 진료를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15일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을 발표했다. 지역 거점 국립대 9곳에 재정투자를 늘려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 수준까지 올린다는 내용이다.
녹색정의당도 지난달 29일 발표한 ‘지역 소멸 대응’ 공약에 의료·교육 정책을 모두 포함했다. 교육 공약은 부실 비리 사학을 제외한 지방대에서 단계적으로 무상교육을 시행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지역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응급·중증 의료를 수행할 수 있는 500병상 이상의 공공병원을 70개 중진료권마다 만들겠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이런 각 정당의 정책들을 두고 전문가들은 ‘의료·교육 분야 격차 해소가 필요하단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제시된 정책 내용이 부실하다 보니 미래지향성이나 사회 통합 가능성에도 물음표가 남는다. 강현수 중부대 교수는 “(관련) 예산을 어디서 갖고 올지 뚜렷하지 않고, 지역에서 (거점 국립대를) 지원한다고 하면 다른 대학이 반발할 게 뻔해 총선 공약으로 적합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사립대가 80% 이상 존재하는 지방 교육의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초의수 신라대 교수) 공약이란 평가도 있다. 홍재우 인제대 교수는 “실제로 고등교육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지방 사립대의 공공성을 강화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의료 공약은 ‘지나치게 공급자 중심’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승우 이후연구소장은 “농촌의 의료 격차를 해소하려면 보건소·보건지소를 강화하고, 민간 병원과 연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며 “공공병원 설립만으론 의료 격차 해소가 어렵다”고 봤다. 또 ‘스마트 공공병원’ 공약은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진종헌 공주대 교수는 “의대 증원 논의가 입학 총인원 증가로만 귀결될 경우 수도권 의료 집중이 완화될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지역 균형발전 공약 평가해주신 분들 (가나다순)
강현수 중부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진종헌 공주대 지리학과 교수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홍재우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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