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싸움’ 평정한 〈좀비 트립〉 시즌 3, 어디로 향하나 [K콘텐츠의 순간들]
가슴에 울분이 쌓여 세상의 어떤 이야기에도 집중하지 못할 때, 나는 유튜브 방송 〈좀비 트립〉을 시청한다. 한때 세계적에서 유명한 격투기 선수였던 정찬성이 길거리 싸움꾼들을 데리고 펼치는 이 기묘한 폭력의 세계는 지역명을 내세운 섬네일만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수많은 무협지와 도시 전설에서 배웠듯이 주먹의 세계에는 자고로 지역을 하나씩 꺾는, 이른바 ‘도장깨기’를 하며 천하를 제패하는 서사가 존재한다. 〈좀비 트립〉은 그 룰에 따라 수원·인천·광주·대구·부산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역구를 먹은’ 대장을 찾아 그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정찬성은 〈좀비 트립〉을 시작하며 ‘길거리의 숨은 싸움 고수들을 찾아내 파이터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러나 시즌 1의 두 번째 에피소드 ‘수유리’ 편을 보고 나면 그가 말한 기획의도가 표면적인 것일 뿐임을 확신할 수 있다. 자신을 ‘전업 범죄자’라 소개한 ‘수유리 사기꾼’은 길거리와 소년원에서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힌 경험들을 늘어놓으며 ‘전과 20범’이라는 사실마저 자랑스럽게 말한다.
정찬성을 호위하며 ‘바람잡이’ 역할을 하던 전 농구선수 하승진과 특유의 허세를 콘셉트 삼아 시종일관 깐족이던 코미디언 안일권의 얼굴도 웃지 못할 도발 앞에 굳어지고 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정찬성이 신호를 보내자 현직 격투기 선수인 박문호가 등장한다. 스파링이 시작되자마자 ‘수유리 빌런’은 흠씬 두들겨 맞고 순식간에 ‘KO패’를 당한다.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좀비 트립〉은 숨겨진 파이터를 찾는 것보다 ‘파이터’를 자처하는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선도 방송이로군. 오은영 박사가 아이의 습관을 교정하고, 강형욱 훈련사가 강아지의 습관을 교정하듯 격투가 정찬성은 이 땅의 수많은 불한당들을 교정해나갈 것이다!
실제로 〈좀비 트립〉은 ‘수유리 사기꾼’ 편을 통해 화제성을 모은 뒤, 이후 출연한 도전자들에게 과거에 저지른 나쁜 행동들을 캐물으면서 ‘정의 구현’이란 목적을 달성하는 일종의 솔루션 방송으로 방향을 도모한다. 하승진과 안일권은 싸움에서 패배한 도전자들을 앞에 두고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니까 어때요?’ 묻거나 ‘넌 너보다 약한 사람만 때리고 다녔던 거야’ 하며 쓴소리를 하고, 실제 스파링을 맡은 격투기 선수 박문호는 후기 방송에서 ‘나쁜 친구들을 정신차리게 하자’는 것이 이 콘텐츠의 가장 핵심임을 말한다. 사적 제재에 가까운 개입이지만 사람들은 ‘나쁜 놈을 응징한다’는 메시지에 반응하고, 과거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있거나 실제로 범죄를 저질러 전과를 보유한 사람이 나올 때 더욱 열광한다. 〈좀비 트립〉의 제작진은 그 증폭된 반응을 ‘진짜 파이터를 찾을 뿐’이라는 명분으로 컨트롤하며 계속해서 ‘좀비 파이트’를 이어 나간다.
주먹 한 방에 상대를 잠재운다는 ‘신림 수면제’도, 김천 소년교도소 내에서 싸움 대장이었다는 ‘김천 총반장’도 어떤 무용담을 갖고 있든 이들은 모두 현직 격투기 선수에게 맞고 또 맞는다. 이 과정을 학습하며 도전자들은 점점 겸손한 모습을 보이거나 단기간에 무술을 배우고 참가하는 등의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싸움에도 엄연히 ‘아마추어’와 ‘프로’의 실력 차가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전문가’ 정찬성의 ‘진짜’ 의도가 드러난다.
힘을 힘으로 제압해 위계를 만드는 부작용
정찬성은 주짓수 체육관을 다니고 있던 ‘신림동 고릴라’, 전직 유도선수 ‘강릉 돌감자’, 킥복싱을 오랫동안 수련한 ‘양산 광인’ 등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운 참가자들의 활약을 부각하며 그런 이들을 진정한 강자로 대우한다. 다시 말해 〈좀비 트립〉은 ‘길거리에 숨겨진 싸움 고수를 찾는다’는 명분을 배반하며 ‘권선징악’을 흥행의 구심점으로 삼은 뒤, 격투기 선수들의 전문성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숨은 목적을 달성해낸 것이다.
〈좀비 트립〉은 시즌 1·2를 거치며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전과자나 학원폭력 가해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본인의 무용담을 여과 없이 말하는 것도, 격투기 선수가 그들을 응징하며 ‘참교육’을 한다는 구성도 전 연령이 접근할 수 있는 ‘방송 콘텐츠’로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실제 피해자가 존재할 과거의 사건은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가해자의 엉성한 다짐 한마디로 무마되고, 그에게 본때를 보여준다는 격투기 선수의 실력과 ‘이제 너보다 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았지?’ 하는 쓴소리는 ‘강한 힘을 길렀다면 그 힘을 휘둘러도 된다’는 오류를 생산하기에 충분했다. 이는 스포츠인 ‘격투기’를 ‘길거리 싸움’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예능화하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부작용이자, 싸움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행위에 따라오는 죄와 형벌을 ‘무술’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내겠다는 욕심의 발로다.
2024년 1월 세 번째 시즌을 시작한 〈좀비 트립〉은 이용주·이선민으로 ‘바람잡이’를 교체하고, 지역에 직접 찾아가는 대신 스파링을 할 체육관으로 도전자들을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포맷의 변화를 꾀했다. 2년간 ‘지역을 평정했다는’ 허세 가득한 싸움꾼들을 수없이 응징한 결과일까? 정찬성과 제작진은 이제 더 이상 ‘길거리 싸움의 숨은 고수’를 찾아 그 기세를 꺾거나, ‘프로 격투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것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격투기’에 대한 존중이 합의된 새 판에서 이제 이들은 잠재력이 많은 ‘격투가’를 찾는다. 복싱, 태권도, 주짓수, 무에타이…. 자신만의 수련을 거친 참가자 중 그 기술을 실전에서 접목할 수 있는 참가자에게 출전권을 부여해 격투기 대회인 〈좀비 로얄〉을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눈물의 은퇴식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난 정찬성은 이제 자신의 이름에 매겨진 값을 이용해 대중과 ‘격투기’의 세상을 이어나가려 한다. 앞선 두 시즌이 그 담을 낮추는 단계였다면 지금 진행 중인 시즌은 그 깊이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제껏 야기된 많은 논란에 침묵으로 일관한 것을 생각하면 이 모든 과정을 그가 미리 계획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좀비 트립〉은 전문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하면서 ‘힘을 힘으로 제압해 위계를 만드는 부작용’에 대해 답을 내놓지 않고도 초창기 기획 의도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다.
‘피바다’나 ‘탈곡기’ 같은 별명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내게도 세상을 주먹으로 때리고 싶다는 울분은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좀비 트립〉의 세상엔 여성이 없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맥이 풀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좀비 트립〉을 계속해서 돌려 본다. 스텝으로 몸의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을 이용해 주먹을 받으면 다시 주먹으로 되갚는 물리력. 그것을 보며 싸움의 묘미를 착즙하면 내가 위계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를 때려본 적 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싸움의 기술’을 향해 점점 좁아지는 세계로부터 나는, 복잡한 오늘도 위로를 받는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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