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서울편입·그린벨트, 민심은 “어차피 총선 끝나면…”

이승욱 기자 2024. 3. 2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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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끼는 개발 공약에 흔들리는 민심
“내 삶에 도움 될 거란 기대 없다” 공통적
철도 지하화 공약 노선에 포함된 수도권 전철 1호선 동암역. 인천시 제공
4·10 국회의원 총선거가 21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공천 갈등의 격랑 속에서 대진표를 마무리 짓고 대오 정비에 들어갔다.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한국 사회의 해묵은 난제를 풀 해법과 비전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할 순 없다. 한겨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위기로 △기후변화 △지역 균형 발전 민생경제 △저출생 등 네가지를 설정하고, 각 정당들이 내세운 관련 공약을 살폈다. 현장을 찾아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미래지향성·구체적·통합성 세가지 평가 지표에 따른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공약 분석을 싣는다.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집니다. 아침마다 지옥이었죠, 지옥.”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최원희(36)씨는 말하는 내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김포 도시철도는 열차가 2칸밖에 안 되고, 올림픽대로는 버스전용차로가 없어 출퇴근 시간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최씨가 서 있는 경기도 김포시 장기역 사거리에선 지난 연말 대로변을 빽빽이 메웠던 정당과 이익단체들의 ‘서울 편입 찬반’ 펼침막을 더 이상 찾기 어려웠다. 선거철을 앞두고 미리 찾아온 열병 같은 것이었을까?

22대 총선을 3주 앞두고 주요 정당이 내세운 지역개발 관련 공약들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광역교통망 확대’나 ‘1시간 생활권 확보’를 앞세우는 식이다. 서울 편입 논의가 활발했던 김포에선 이번 총선을 계기로 행정구역 통합 이슈가 재점화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읽힌다. 장기역 사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윤아무개(53)씨는 “서울에 편입되면 서울시에서도 교통망 연결을 위해 관련 시책을 펼칠 테니까 여기 사는 사람들한테는 어찌 됐든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편입 이슈의 세력권에 휘말린 경기도 하남 위례새도시에선 기대와 회의론이 교차했다. 2013년 입주가 시작된 이곳은 경기도 성남시와 하남시, 서울 송파구까지 세곳의 행정구역이 공존하는 독특한 지역이다. 같은 날 위례대로를 따라 주변을 둘러봤더니 “하남 위례 주민은 송파 편입을 적극 추진하는 국회의원 후보자를 지지한다”는 펼침막이 아파트단지마다 나부끼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7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장기본동 행정복지센터서 열린 서울시 편입 관련 주민간담회에서 김병수 김포시장이 편입 계획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눈여겨볼 부분은 ‘온도 차’였다. 서울 편입 이슈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시민모임’ 소속이 아닌 주민들 사이에선 ‘되면 좋겠지만 어차피 안 될 것’ ‘선거용이니 시간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란 체념의 분위기가 읽혔다. 위례새도시에서 10년을 살았다는 박아무개(32)씨는 “주변 사람들 모두 ‘정치인들이 선거 다가오니까 일단은 들쑤시고 보는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이라고 전했다. 일부는 서울 편입보다 출퇴근 환경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위례신사선’ 경전철의 신속한 개통을 더 시급한 문제로 꼽기도 했다. 위례동 부동산에서 만난 60대 여성 김아무개씨는 “분양 때부터 (위례신사선 개통을) 한다고 했고, 주민들이 교통개선분담금까지 냈는데 아직도 안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메가 슬로건’보다 지역 사정을 잘 녹였거나 주민 삶에 밀착한 공약을 바라는 건 다른 서울 주변 도시들도 매한가지였다. 고양시에서만 25년을 거주했다는 이재원(33)씨는 “서울 편입은 별로 효용성 있는 내용이 아니라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 출산 지원 정책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김포 주민인 전연수(33)씨도 “되지도 않을 서울 편입은 관심 끊은 지 오래다. 좌석버스 신설, 김포골드라인 증량 등 턱없이 부족한 대중교통망 해결만큼 시급한 과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수도권 공통 공약인 ‘철도 지하화’에 대해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반기는 이들은 주로 ‘철도 지하화로 생기는 넓은 땅을 공원화할 수 있고, 열차가 지나면서 발생하는 소음과 분진도 해결 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철길을 사이에 두고 인근 지역과 분리된 생활권에서 살아온 유권자들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철도를 지하화해야 할 이유를 좀처럼 찾지 못했다.

인천시 동구 배다리마을에서 찻집을 하는 차경주(61)씨는 “기차가 (지상으로) 지나는 풍경이 예뻐서 일부러 사진도 찍는데, 왜 굳이 막대한 돈을 들여 그걸 지하에 넣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있는 걸 잘 보존하는 쪽이 낫다”고 했다. 유권자 표심에 변수로 작용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많았다. 스스로를 ‘중도층’이라고 밝힌 60대 인천시민은 “경인고속도로 지하화한다는 얘기도 오래전부터 나왔다. 선거 공약 나왔다고 다 됐으면 지금 인천이 이 지경이겠느냐”고 했다. 그는 “개발 공약이란 건 다 절차를 밟아서 해야 하고 시간이 흘러야 하는 것인데 공약해놓고 임기 지나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이번에 투표할 때 실현 가능성, 사업 타당성 등을 꼼꼼히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울산 민생토론회에서 꺼낸 ‘그린벨트 해제’ 카드에 대해서도 반응은 싸늘했다. 시대착오적인데다 소수만 이익을 보는 생색내기 공약이란 이유다. 울산시민 김예원(49)씨는 “공업도시 울산에 숲은 허파와 같다. 그린벨트 해제는 그 일대에 땅이 있는 특정 집단만 배불려주겠다는 공약”이라고 일축했다. 정양출(58)씨도 “기후위기 시대에 산을 깎고 녹지(규제를) 푸는 토건사업은 시대를 역행한다. 실제 서민들에게 돌아오는 혜택도 없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한겨레가 지역의 민생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연령과 직업, 정치 성향은 제각각이었어도 ‘거대 개발 공약이 내 삶을 바꿔주지 못한다’는 생각만큼은 대부분 공유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조오다(62)씨도 그런 경우였다. “‘뉴타운 지어준다, 그린벨트 풀어준다, 공항 만들고 도로 깔아준다’ 하면 즉각즉각 반응하던 시대가 지났습니다. 정치인들만 몰라요. 국민이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배현정 기자 spr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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