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마'와 '꺾그마' [특파원 칼럼]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 3. 21. 04: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30년 만에 처음, 진짜 중국에 진출하는 기분이다."

현지서 만난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일본은 중국에 배척당하자 모든 공급망과 자금순환을 일본 기업, 일본 은행으로만 몰아놓고 언제든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 기업은 끊임없이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두 나라 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대 중국 투자가 20억달러를 밑돈 건 2003년(19억4500만달러) 이후 무려 20년 만에 처음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 국내 대기업 중국법인 사무실에서 내려다 본 베이징 시내 최고 번화가 궈마오 전경. 오른쪽 두 번째 빌딩에 삼성 로고가 보인다./사진=우경희 기자

"30년 만에 처음, 진짜 중국에 진출하는 기분이다."

벌써 중국사업 커리어가 30년이 넘었는데, 무슨 소린가 싶은 한 대기업 법인장의 말이었다. 한국 기업을 대하는 중국 정부와 시장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너무 달라진 탓에, 하루하루 마치 처음 진출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거였다. 경제의 문을 활짝 열던 시절, 한국의 선진 기업이라면 무조건 "하오(好)"를 외치던 시절은 지났다. 온갖 차별을 뚫고 수주를 따내다 보면 "이게 진짜 중국 진출이구나 싶다"고 했다.

"중꺾마보단 이젠 꺾그마 정신이 필요하다."

현지진출 한국 기업을 돕고 있는 한 공공기관 관계자의 말도 인상적이다. 중국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할 땐 '요한 것은 이지 않는 음'이라는 정신으로 버텼다. 그런데 냉랭한 한중관계가 기약없이 길어지면서는 '여도 냥 하는 음'이 더 필요하더라고 했다. 중국 정부나 기업을 향한 협력 요청이 얼마나 많이 좌절됐으면 저런 표현이 나올까.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기업이 팔방미인이 돼야 하는 세상이다. 그래도 최대 덕목은 이윤이다. 돈을 벌어야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착한 기업도,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도 될 수 있다. 이 논리로만 따지면 중국은 두 말 없이 철수해야 맞는 시장이다. 시장 논리가 아닌 국가 간 정치논리로 상품을 선택받고, 정치적으로 배제되면 아무리 돈을 들이고 노력해도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 지금의 중국이다.

최근 본 중국 진출 한국 법인 관계자들은 대부분 지난해 실적도 전년 대비 마이너스라고 털어놨다. 고생은 하는 데 돈을 못 번다. 중국서 상당한 인지도를 얻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형편이 낫다는 평가를 받는 한 대형 식품기업 중국법인은 최근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중국 현지채용 한국인들을 시작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다. 그냥 현상태를 유지하며 버티기도 쉽지 않다.

"영원히 새로운 거래처만 만나는 듯하다."

한 자동차 부품 대기업 임원은 가장 힘든 지점으로 사업의 연속성을 뺏긴 점을 꼽았다. 그는 "중국 회사들이 작년에 우리 제품을 샀다고 해서 올해도 또 산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무조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관(官)의 횡포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심심찮게 들린다. 대응팀이 있는 큰 회사들은 나은 편이다. 중견중소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훌훌 걷어치우고 철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현지 기업인들이 꼽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언제 중국 상황이 달라질지 모른다. 이 초거대 시장에 나중에 다시 진출하기 위해서는 더 큰 비용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글로벌 경쟁상대로서 중국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에 법인을 두면 중국 경쟁사나 시장, 정부 동향 파악이 수월하다. 깜깜이가 된 중국은 더 무섭다.

한국 기업들은 그래서 여전히 적극적이다. 현지서 만난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일본은 중국에 배척당하자 모든 공급망과 자금순환을 일본 기업, 일본 은행으로만 몰아놓고 언제든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 기업은 끊임없이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두 나라 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꺾그마다.

기업의 분투는 감동적이지만 꺾그마에도 한계가 보인다. 중국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금액은 지난 2020년 51억2800만달러에서 2022년 85억4000만달러로 늘었었는데, 지난해 18억6700만달러로 급감했다. 한국 기업들의 대 중국 투자가 20억달러를 밑돈 건 2003년(19억4500만달러) 이후 무려 20년 만에 처음이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