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떠나면 수술·입원 마비...의대 교수 이탈 3가지 시나리오

조백건 기자 2024. 3. 21. 03: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 발표] 집단 사직 땐 어떻게 되나
정부의 의대 정원 확충으로 기존 142명에서 200명으로 전북대 의대 정원이 늘어난 20일 전북대 의대 및 전북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이 대학 본부 앞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20일 늘어나는 의대 정원 2000명을 각 의대에 배정하자 의료계는 “의사 교육을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시켰다”며 반발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의대 교육생의 67%를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1년이라는 초단기 기간에 증원하는 것은 한국 현대 의학 기반을 송두리째 와해시키는 것”이라며 “의사 교육을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시켜 의학 교육 흑역사의 서막을 열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울산대·가톨릭대·고려대·건국대·동국대·한양대 의대 교수들은 25일 사표를 내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국내 가장 큰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을 비롯해 국내 대표적인 대형 병원 교수들이 집단 사의를 밝힌 것이다.

교수들이 사표를 던진다고 해서 곧바로 대형 병원의 진료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사직서를 내더라도 수리될 때까진 환자 곁을 지키겠다는 교수들이 현재까진 다수이기 때문이다. 사표가 수리될 가능성도 극히 낮다. 하지만 정부가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등 처벌을 할 경우 교수들의 ‘진료 중단’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래픽=김하경

①교수 50% 이탈 시

의료계에선 교수 절반 이상이 병원을 떠나면 대형 병원의 응급 환자 수술과 입원이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에게 기본적인 처치만 하고 최종 치료(수술 등)는 하지 못하고 돌려보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현재 빅5 등 대형 병원 진료는 세분화돼 있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가령 외과 중에서도 담관암 전문의는 대형 병원이라도 2~3명 정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2명 중 1명이 빠지면 나머지 1명이 24시간 병원에서 먹고 자며 외래 진료와 수술, 입원 환자 관리를 다 해야 한다는 건데 불가능하다”고 했다. 기존 환자에 대한 외래 진료는 일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 외 기능은 사실상 마비가 된다는 것이다.

"2000명은 최소 규모" - 한덕수 국무총리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 개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 총리는 "의대 2000명 증원은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최소치"라고 했다. /뉴시스

②교수 30% 이탈 시

대형 병원 의사들은 응급 환자 수술이 큰 차질을 빚는 시점을 ‘교수 이탈률 30%’ 정도로 보고 있다. 이 정도가 되면 뇌혈관·중증외상 환자 등 응급 환자에 대한 수술마저 대폭 줄어드는 ‘치료 병목현상’이 본격화된다는 것이다. 의료계 인사들은 “동일 진료과 교수 3명 중 1명이 빠지면 남은 교수들이 번아웃(극도의 피로)에 빠진다”며 “병원을 떠나는 교수들이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신경외과 교수는 “서울의 대형 병원에도 뇌 수술을 할 수 있는 교수는 많아야 3명 정도”라며 “이 중에 한 명이 빠지면 수술·당직 부담이 갑절로 늘어난다”고 했다. 4~5일에 한 번 서는 당직을 이틀에 한 번씩 서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외과 교수는 “최근까지도 위암 수술을 할 땐 복잡하지 않은 절개나 봉합 등은 전공의와 전임의(세부 전공 중인 전문의)가 주로 했다”며 “지금은 혼자 해야 해서 수술 시간도 3배 정도로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 한 명이라도 빠지면 버틸 수 없다”고 했다.

지방 종합병원의 한 뇌혈관 교수는 “최근 헤드헌터(인재 스카우트) 관계자들이 고액 연봉을 제시하면서 이직 제의를 해오고 있다”며 “몸이 힘드니 마음도 흔들린다. 동료 교수들이 사직하면 버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③교수 태업 시

교수들 상당수가 사직 후 근무를 한다고 해도, 환자 진료 건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사실상 태업(怠業)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부산의 한 상급 종합병원 교수는 “정부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을 맞추기 위해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하니, 우리도 진료 환자 수를 OECD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말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 의사의 평균 연간 진료 환자 수는 6900여 명으로 OECD 평균(2100여 명)의 3배에 달한다. 앞으로 일일 환자 수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뜻이다. 실제 수도권 대형 병원의 일부 진료과에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복수의 대형 병원 관계자들은 “현재도 4~5개월씩 밀린 수술 일정이 태업이 본격화되면 1년 넘게 밀릴 수 있다”며 “이 기간엔 신규 환자도 대형 병원 외래 진료를 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