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18] 새로운 트로트 여제의 탄생
그간 화제가 되었던 ‘미스트롯3′이 얼마 전 막을 내렸다.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트로트 열풍은 유사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양산했고, 그에 따라 새로운 트로트 가수도 여럿 등장했다. 그러면서 트로트의 세대 교체가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해를 거듭하면서 실력자들이 더는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았다.
이번 ‘미스트롯3′이 더욱 관심을 끄는 건 역대 최연소 ‘진(眞)’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2008년생 정서주다. ‘리틀 이미자’라는 별명을 얻은 그녀는 이미 유튜브에서 트로트 커버 곡으로 유명한 ‘트로트 샛별’이다. 2022년 음반 ‘꽃들에게’를 발매하여 정식 데뷔하였는데, 20만 명을 훌쩍 넘긴 유튜브 구독자 수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가 애절한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힘차고 다부져서 암팡지기까지 하다.
마지막 결승전에서 이미자가 특별한 무대를 선보였는데, 여든이 넘었는데도 목소리가 여전히 맑고 청아해서 보는 이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러면서도 수줍어하며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였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대가의 완벽주의와 겸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자가 정서주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대목은 트로트 신구 세대의 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한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남달랐다.
정서주가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난영이 떠올랐다. 광복 이전 수많은 노래로 큰 인기를 얻으며 ‘유행가계의 큰언니’로 불린 이난영이 겹쳐 보였다. 정서주가 ‘목포의 눈물’을 부를 때는 마치 이난영이 환생한 듯 착각을 일으켰다. 작곡자 박성훈은 이난영 목소리의 매력을 ‘앓는 소리’로 표현했는데, 정서주의 노래에서 그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진성과 가성에 콧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데다가 파장이 짧고도 가는 바이브레이션이 독특한 미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이난영에서 이미자로, 그리고 다시 정서주로 정통 트로트의 계보가 이어진다고 하면 과장된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과도한 감정 표현을 트로트의 맛인 것처럼 간주하곤 하지만, 사실 초창기 트로트의 매력은 절제의 미학에서 찾을 수 있다. 슬프지만 비탄에 빠지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에서 울림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목소리에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정서주의 목소리가 그러하다. 반복해서 들어도 쉬 질리지 않는 그런 목소리 말이다. 끼 부리지 않는 순백의 첫눈 같은 목소리가 대중의 마음을 토닥여 줄 것이다. 연륜이 쌓이면서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깊어지리라.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트로트 여제의 탄생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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