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 式 오리지널리티…그건 '디폴트' 미학
전반부 비틀스 풍의 밴드 사운드…후반부 세심한 포크
4월 20~21일 성수아트홀서 '제11회 김사월 쇼: 디폴트'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만일 내가 쓰는 소설에 오리지널리티라는 게 있다면 그건 '자유로움'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자신의 독창성 비결로 "어깨에 힘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꼽았다. "글을 쓰는 게 즐거웠고 나 자신이 자유롭다는 내추럴한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즉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한다며 "오리지널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 온 결과적인형체에 다름 아닌 것"이라고 정의했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이 최근 발매한 정규 4집 '디폴트(default)'는 하루키의 오리지널리티를 그녀 식(式)으로 체득한 것이다. "순수한 내적 충동이란 그 자체의 형식이나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습득해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하루키의 자유론을 김사월만의 방법으로 변주했다.
1번 트랙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부터 6번 트랙 '디폴트'까지, 로큰롤 스타일로 달리는 앨범의 전반부를 쉬지 않고 들어보면 납득이 된다.
앨범 발매 전인 최근 화상으로 만난 김사월은 "이전부터 해보고 싶은 빈티지 사운드를 이번 앨범에 담고자 했어요. 짜여진 게 아닌, 흐트러지면서 멋있어지는 '미적인 재미'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 명실상부 대중음악 고전이 된 '비틀스' 풍의 지글거리는 사운드와 화음이 들리지만 그것 역시 오리지널에 대한 경외에 가깝다. 그래서 앨범 제목이 '기본 설정값'을 뜻하는 디폴트다.
"'디폴트'라는 제목이 다양한 생각을 떠올리게 할 거 같았어요. 특히 전 그 기본값이 궁극적인 오리지널리티로 향하기를 바랐어요. 하루키 수필집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는데, 제 에너지를 믿는 방식으로 즐겁고 신날 수 있으면 했죠.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몰입하기를 바랐어요. 예전보다 작업 시간을 넉넉히 둬서 가능했습니다."
그 몰입의 영역은 믹싱 영역에서도 빛을 발한다. 60~70년대 록 밴드들에 대한 동경·추종심의 사운드를 밴드 원테이크로 담아낸 1번 트랙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 2번 트랙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의 하드 패닝(Panning) 콘셉트가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클라이맥스에서 '풀 스테레오'로 합쳐질 때 느껴지는 쾌감이 그렇다.
이시문의 일렉 기타 리듬감, 김사월의 풍성한 코러스 라인, 문득 문득 들리는 색소폰·플뤼겔호른 같은 브라스의 질감이 중독적인 '독약'은 아득함의 전형성을 보여주지만 김사월의 무심한 듯한 보컬로 이내 특별해진다.
타이틀 곡 중 하나인 '나쁜 사람'은 어떤가. 김사월의 귀한 콧소리 그리고 한국 풍의 포크송, 서양의 포크록이 묘한 비율로 결합된 이 노래는 노스탤지어를 선사한다. 그런 향수 역시 기본값에 수렴된다.
앨범에서 표현하는 감정 역시 '디폴트'다. 김사월은 이번 앨범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낙관과 비관을 내려놓은 상태. 사랑 속에서도 상처가 있음을 인정하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다릴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이 우리의 디폴트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이 앨범에 담았습니다. 듣는 이들이 저와 함께 사랑을 다시 배우며 슬프지 않은 혼자가 됐으면 합니다."
이런 '디폴트'적인 감정의 전환은 또 다른 타이틀곡인 6번 트랙 '디폴트'가 만들어낸다. '디폴트'를 중심으로 전반부, 후반부 구성이 나눠진다. '디폴트'에서 앨범 전반부의 에너지를 터트리고 나면, 선공개 트랙이었던 7번 트랙 '칼'부터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미니멀하면서 세심한 포크 트랙이 이어지면서 김사월 스스로 확장한 사랑의 의미를 노래한다. "당신을 위해 싸우고(칼), 대신 울고(못 우는데), 살고 싶게 만들고(호수), 시들어도 가꾸어 가는(가을 장미) 이야기"다.
"앨범은 '디폴트'를 중심으로 한 병렬구조예요. 전반부에 비관이 쌓아 올린 과정을 해소하고 긍정으로 가려면, 풀어내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랑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건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이 음반은 불이 타들어가는 앰비언트(볼륨을 키워서 듣기를 권한다)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5분45초짜리 10번 트랙 '가을 장미'에서 끝냈어도, 완결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트랙 두 개가 이어진다. 11번 트랙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밤'은 1번 트랙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와 함께 내용물을 품는, 일종의 책 표지 역할을 한다. 이렇게 김사월의 '디폴트'는 내용적, 형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정규음반 미학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2020년 9월 정규 3집 '헤븐' 이후 3년6개월의 시간을 견뎌낸 청자들에게 귀한 선물이다.
아웃트로인 12번 트랙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은 이미 선발매된 노래인데,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올 것이라는 긍정의 믿음을 뭉근하게 안긴다. 앨범에 실려 에필로그가 된 이 곡은 "이제 우리는 헤어지지만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는 계속 사랑하고 있을 거예요"라는 메시지를 준다. 일종의 김사월 식 평행우주다.
그 우주는 오프라인으로 확장된다. 오는 4월 20~21일 성수아트홀에서 열리는 '제11회 김사월 쇼: 디폴트'(21일 오후 8시 멜론 티켓에서 티켓 예매 오픈)가 그것이다. '디폴트' 발매를 기념해 쇼케이스 콘셉트로 꾸려지는데, 앨범의 사운드를 재현하고 확장할 첫 번째 풀 밴드 연주회다. 이설아(키보드), 이시문(일렉기타), 전솔기(베이스), 정수영(드럼) 등 김사월 밴드와 함께 김찬영(색소폰·클라리넷·플룻), 정준기(트럼본), 최규민(트럼펫), 애리·예람(코러스)이 힘을 보탠다. 쟁쟁한 뮤지션들이라 스케줄을 맞추기 힘듦에도 기꺼이 의기투합했다. 김사월은 "저도 이 멤버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귀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김사월은 오는 23일 오후 3시부터 김밥레코즈 동교동 매장에서 미니 라이브(acoustic set)와 팬 사인회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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