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정비사업 현장 곳곳서 증액 협상…이유 살펴보니

최지혜 2024. 3. 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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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물가 상승으로 인한 불가피한 공사비 상승 요청
특화설계와 커뮤니티시설 등 시공 품질 차이도 반영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도시정비사업지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잡음이 일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최지혜 기자]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은 도시정비사업 현장 곳곳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잡음이 일고 있다. 업계 최고 수준의 아파트 공사비를 책정하는 현대건설은 기존 수주 사업의 조합에 설계 변경 및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착공 전 공사비 증액과 공사 기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아파트1단지(반포1·2·4주구)' 재건축조합은 최근 시공자인 현대건설로부터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 증액 폭은 기존의 50%를 웃돌았다.

현대건설은 당초 2조6363억원이었던 총 공사비를 4조775억원으로 증액할 것으로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평당 공사비는 550만원에서 830만원으로 뛴다. 이와 함께 변경 계약을 체결하면 공사 기간도 당초 34개월에서 44개월로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조합원의 이주비 대출이자 등 금융 부담도 증가할 전망이다.

현대건설과 조합은 아직 공사비 협상을 끝맺지 못한 상황이다. 다만 이달 말 착공 예정이던 일정은 계획대로 소화하기로 했다. 공사비 협상에 시간을 쏟게 되면 조합원의 부담이 가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호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장은 최근 조합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공사비 협상에서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상당 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착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흐를 경우의 조합원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판단"이라며 '선 착공, 후 공사비 협상' 합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측은 "한강변 초고층 규제 완화에 따라 지난해 5월 조합에서 35층으로 할 것이냐, 49층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총회를 실시했다"며 "층수 변경과 물가 변동 등을 반영한 개략적인 공사비를 당시 조합 측에 제출했고, 올해 1월 새 조합장이 선출된 이후 앞서 제출한 공사비와 비슷한 수준의 상세 내역을 제출했다. 갑작스러운 공사비 인상 통보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현대건설이 도시정비사업 조합에 제시하는 평당 공사비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역대 가장 높았던 공사비 사업장은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서초구 방배 삼호 12·13동 가로주택정비사업이다. 이곳의 평당 공사비는 1153만원으로, 정비 사업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갖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현대건설 측은 "한강변 소규모 재건축에 대지면적이 협소한 사업 특성으로 인해 지상연면적 대비 지하연면적이 커서 타 사업지보다 평당 공사비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 기록은 현대건설 내에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현대건설의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이 최근 기존 사업장의 증액을 통해 평당 1300만원대의 공사비를 제시하고 있어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22차' 재건축과 관련해 지난 2017년 입찰 당시 약 569만원의 공사비를 제시했으나, 최근 이보다 3배 이상 높은 평당 1390만원을 요구했다. 단지는 이미 철거된 상태로, 공사비 증액 여부는 협의 중이다.

현대건설은 수주한 도시정비사업의 조합에 평당 900만원 안팎의 공사비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현대건설은 이외 사업장에도 평당 900만원 내외의 공사비를 요구하고 있다. 서대문구 '홍제3구역' 재개발의 경우 평당 공사비를 2020년 제안했던 512만원에서 898만원으로 증액 통보했다. 동시에 공사 기간은 기존 37개월에서 51개월로 늘리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이후 조합이 반발하자, 평당 830만원의 공사비와 44개월의 공기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곳은 오는 6월 이주 일정이 잡혀 있다.

이와 관련 현대건설 측은 "실시 설계 과정 중 역타공법이 적용돼 공사비 인상 폭이 컸으나 조합 측에서 재검토 중인 혁신안으로 공사비를 검토해 협의 중"이라며 "매주 3~4차례 협의를 진행했고, 협상은 마무리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의 잇단 공사비 증액 요구에 정비 사업을 추진 중인 조합원의 부담은 가중하고 있다. 홍제3구역 재개발의 한 조합원은 "애초에 시공사 입찰에서 공사비를 적어 내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물가 인상을 고려해 공사비를 산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 착공 직전 뒤늦게 공사비 증액과 공기 연장을 요구하면 조합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인상 폭이라도 깎아달라 협상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평당 900만원 안팎의 공사비는 대형 건설사 사이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비슷한 시기 '행당7구역'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대우건설의 경우 기존 540만원에서 670만원으로 증액금을 산정했다. 서초구 '방배삼익' 재건축 조합은 오는 21일 총회를 열고 시공사인 DL이앤씨의 공사비 변경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결정한다. DL이앤씨는 2020년 계약 체결 당시 546만원이던 평당 공사비를 754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시공사 입찰을 준비 중인 영등포구 '여의도한양'에는 평당 824만원의 공사비를 제시했다. 경쟁사 포스코이앤씨가 제시한 798만원보다는 높지만, 현대건설이 평당 900만원대로 증액을 요구 중인 현장들과 비교하면 다소 낮은 수준이다.

현대건설 측은 건설 원가 상승을 기본적인 공사비 인상 이유로 들었다. 이와 함께 타 건설사보다 공사비가 높게 책정되는 요인으로 수주 사업장의 입지, 높은 신용등급, 특화설계와 커뮤니티시설 등을 꼽았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사업장마다의 여건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유가, 물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불가피한 공사비 상승 요청이 있었다"며 "특화설계와 커뮤니티시설 등에서 타사와 시공 품질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어 신용등급이 낮아 이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은 타사와 비교하면 조합이 막상 겪는 비용 자체는 비슷할 것"이라며 "또 당사가 수주한 현장들이 입지와 사업성 측면에서 우수해 조합의 협상 여지가 높은 점도 공사비가 높은 이유 중 하나"라고 부연했다.

wisdo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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