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승만, 이스라엘 벤구리온 [김도연 칼럼]
벤구리온, 과오 있었지만 공은 공대로 평가
과오 때문에 모든 공적 묻히는 일은 없어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국제 질서는 다섯 개 승전국, 즉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그리고 중화민국의 의지대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인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국제연합(UN)이 창설되었고, 상기한 다섯 개 나라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으로 그 운영을 도맡았다. 그후 중화민국, 즉 대만의 역할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역사를 만들고 또 바꾸기도 하는 것이 강대국들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38도선으로 나누겠다는 강대국들을 물리치고 아무런 힘도 없던 우리가 통일을 이룰 수 있었을까? 결국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그리고 김일성은 공산주의를 국가 정체성으로 세우며 1948년에 남북으로 나뉘어 독립했다. 이후 양쪽 국민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스라엘 역시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1948년에 승전국들이 국경선을 마음대로 그어 출범시킨 나라인데, 그 과정은 우리보다도 더 혼란스럽다. 2차대전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떠나면서 영토를 자의적으로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나누어 분배했다. 쫓겨난 난민(亂民)이 엄청났으니 두 민족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의원 내각제 이스라엘의 초대 국가원수는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였다. 그는 영국의 철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후에는 유엔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다양한 군사작전 등을 통해 이스라엘의 안보를 강화했다. 건국 전의 독립운동, 그후의 외교를 통한 정식국가 인정, 그리고 국방력 강화 등의 측면에서 벤구리온과 이승만은 유사한 길을 걸었으며, 각각 13년과 12년간 초대 국가원수로 일한 것도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대통령의 과오만을 강조해 온 듯싶고 따라서 변변한 그의 동상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스라엘은 다르다. 이 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은 모두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착륙하며, ‘국립 벤구리온대학’은 세계적 교육 연구기관이다. 이스라엘 여러 도시의 도로와 공원, 그리고 학교 등도 벤구리온으로 이름 지어졌으며, 그의 동상도 물론 도처에 있다. 기념관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물구나무선 모습의 벤구리온 동상들은 그가 생시에 즐겨 했던 요가를 하는 자세다. 친근한 이미지, 즉 그림자가 아닌 그의 빛을 기억하기 위한 후세의 노력으로 믿어진다.
그러나 벤구리온 역시 집권 기간 국민 모두가 찬성하는 일만 하지 않은 것은 너무 당연하다. 특히 그가 1952년에 서독과 맺은 홀로코스트 피해배상 협정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극심했던 반대와 시민 저항이 있었다. 2차대전 중 나치에 의해 목숨을 잃은 유대인이 무려 600여만 명인데, 이를 어떻게 물질적 보상으로 용서하고 정리할 수 있었을까? 지극한 실용주의자 벤구리온이 친(親)나치로 몰렸을 것은 익히 짐작되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일본과 수교 협정을 체결한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라며, 그의 모든 공적을 묻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득세하고 있다. 아쉬운 일이다.
건국 후 76년이다. 이제는 그간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운 국가로 발전시킨 지도자 모두를 기리면 좋겠다. 그들의 빛과 그림자를 역사에 확실하게 남기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림자를 이용해 국민을 편 가르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인천을 이승만 공항으로 바꾸고 영남에 김대중대학과 호남에 박정희대학을 만들어 모두 함께 그들을 기억하는 일은 정녕 꿈에서만 가능할까? 다시는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를 영어(囹圄)의 몸으로 만들어 국격(國格)을 떨어뜨리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그런 어리석은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선거는 우리가 지도자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다. 4월 10일 총선에 모두가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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