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학교까지 몰린 이민자에 “언제까지 받아주나” 뿔난 뉴요커[글로벌 현장을 가다]
최근 뉴욕은 쉼터마다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루스벨트 호텔처럼 기존 시설을 쉼터로 전환하고 있는데, 곳곳에서 지역사회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스테이트아일랜드나 브루클린 지역의 일부 학교들은 체육관을 이민자 쉼터로 쓰려는 계획이 발표되자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게다가 불법 이민자들이 연루된 범죄 사건까지 늘어나면서 이민자들을 지지했던 시민들마저 불만을 토로하는 분위기다. 호텔 인근에서 만난 아이작 씨는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지만 최근엔 뭔가 시스템적으로 결함이 느껴진다”며 “특히 뉴욕은 기존 시민도 렌트비를 감당하지 못해 길거리에 나앉고 있는데 이들을 어떻게 도울 건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2년 새 18만 명… ‘비상사태’ 선포
특히 뉴욕은 다른 도시에 없는 독특한 ‘쉼터 제공법’이 존재해 불법 이민자들이 더 몰려들었다. 1981년 법원이 뉴욕시에 임시 거처를 요청하는 노숙자에겐 쉼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뒤로 뉴욕에선 40년 이상 이 권리가 보장돼 왔다. 해당 법은 노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이민자들 역시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됐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2022년 초만 해도 “뉴욕은 이민자가 이룬 도시”라며 텍사스주에서 보낸 이민자 버스를 오히려 환영하고 나섰다. 공화당과 선명한 차별성을 드러내려 했던 정치적 판단이었다. 하지만 뉴욕에 가면 일자리와 잠잘 곳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 불법 이민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수천 명은 이내 수만 명이 되더니, 최근 2년 동안에만 약 18만 명이 불어났다. 텍사스주가 버스에 실어 보낸 규모가 3만여 명으로 집계된 것을 감안하면 쉼터법을 믿고 제발로 찾아온 불법 이민자는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감당도 안 될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들자 결국 뉴욕시도 지난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주거비 급상승으로 노숙인도 역대 최대로 늘고 있는 뉴욕으로선 몰려드는 이민자들을 수용하기가 버거워졌다. 법에 따라 숙박업소를 임대하고, 학교 체육관을 빌리는 등 쉼터를 확보하느라 시 재정도 거덜날 지경. 현재 뉴욕에 산재한 약 200개 쉼터엔 12만여 명을 수용하고 있는데, 절반 이상이 불법 이민자로 파악되고 있다.
요즘은 쉼터 주변은 물론이고 지하철이나 도심에서도 이민자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13일 그랜드센트럴 역사에서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아기를 업은 채 과일 노점판 앞에 서 있었다. 지하철 안에선 초등학생 정도 된 아이가 “초콜라테(초콜릿의 스페인어 발음)”를 외치며 스낵을 팔았다. 누가 봐도 불법 이민자의 자녀였다.
세금 수조 원 쓰자 뿔난 뉴요커
‘일요일은 문을 닫습니다.’
최근 맨해튼과 퀸스 공공도서관은 일요일 휴관을 표시한 푯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민자 수용으로 인한 예산 급증을 감당하기 어려운 뉴욕시가 공공도서관 운영 시간마저 줄이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뉴욕시는 2023년 회계연도 예산에서 불법 이민자와 관련해서 14억5000만 달러(약 1조9423억 원)를 썼다. 올해는 더 늘어나 2025년까지 2년 동안 모두 91억 달러를 쓰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덤스 시장은 “이러다 뉴욕이 파산할 수 있다”며 연방정부에 지속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주말이면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했던 공공도서관이 문을 닫자 시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맨해튼에 사는 40대 여성 직장인은 “처음엔 이민자 보호를 지지했지만, 갈수록 우리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단순히 도서관 휴관만 갖고 이러는 게 아니다. 우리가 낸 세금이 시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우리가 무한정 불법 이민자들을 책임질 순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요커들은 주거비와 식료품 가격이 높아지며 갈수록 생활이 빠듯해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불법 이민자를 위한 세금 지원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욕시가 최근 발표한 ‘불법 이민자 선불카드’였다. 이민자들에게 하루 12달러어치의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카드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하자 시민들이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시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이민자들에게 제공되는 무료급식이 상당 부분 그냥 버려지는 상황. 차라리 직접 사 먹을 수 있도록 선불카드 시범 사업을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애벗 주지사까지 비난에 나서며 시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애덤스 시장은 “신용카드를 나눠 주는 게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예산을 더 아낄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분노의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불법 이민자 수용에 학교 시설이 동원된 건 특히 학부모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1월 미 북동부에 폭풍이 몰아쳤을 때, 악천후로부터 이민자들을 보호하고자 시 당국은 브루클린 지역의 제임스 매디슨 고교에 하루 동안 1900여 명을 임시 수용했다. 대신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고 원격 수업을 받았다. 한 학부모는 CBS 뉴스에 “안 그래도 팬데믹으로 원격수업을 받았던 아이들에게 이런 이유로도 학교를 나오지 말라는 건 말도 안되는 짓”이라고 성토했다.
뉴욕마저 제한… 대선에도 결정적
이민자 수용 예산 증가와 시민 분노에 공화당의 파상공세까지 겹친 뉴욕시는 더 이상 불법 이민자가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40년 이상 이어진 쉼터 제공 정책을 일부 수정하기로 했다. 시 정부는 법원에 불법 이민자의 쉼터 체류 기간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다.
1981년 소송 당사자였던 법률구조공단 및 노숙인 옹호단체와 5개월 넘게 협상한 끝에 시는 18일 가족이 없는 성인 불법 이민자는 쉼터에 30일만 머무르도록 하는 등 제한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이민자들을 다른 도시로 보내기 위해 교통비를 지원하는 정책도 시행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국경 관리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엔 멕시코를 거쳐 뉴욕으로 오는 중국인 불법 이민자들도 급증한 상태다. NYT는 “소셜미디어에 남미에서 미국 국경을 넘는 팁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다”며 “경제 위기와 독재에 대한 불만 등으로 미국에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을 비롯해 많은 대도시들이 불법 이민자로 몸살을 앓으며, 해당 논란은 올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이달 초 월스트리트저널(WSJ) 여론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현안을 묻는 문항에 ‘불법 이민자’라고 답한 이가 20%로 경제를 선택한 응답자(14%)보다도 많았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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