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은행 배신·금융 감독 실패가 빚은 재앙

김수미 2024. 3. 2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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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항생중국기업지수(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 대규모 피해사태는 예고된 재앙이다.

홍콩 H지수가 하락세를 이어가면 국민 재테크 ELS는 '국민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졌고, 금융당국이 홍콩 ELS 발행을 축소하도록 지도하기도 했다.

2016년 홍콩 H지수 반 토막 사태를 경험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손실 가능성이 없다"거나 "정기예금처럼 안전하다"고 안내한 것은 은행직원의 무지 또는 소비자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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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LS 사태 피해 막대… 불완전 판매 행태 없애야

홍콩 항생중국기업지수(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 대규모 피해사태는 예고된 재앙이다. 그것도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경고음이 울렸다.

2016년으로 시계를 돌리면 놀라울 정도로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당시 기사를 찾아 날짜만 바꿔 올려도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김수미 선임기자
2015년 5월 1만5000선에 육박하던 홍콩 H지수가 2016년 1월21일 8000선이 붕괴되며 반 토막 나다시피 했다. 당시 ELS는 저금리 시대 인기상품으로 떠오르며 발행잔액이 64조원에 달했다. 그중 홍콩 H지수와 연계된 상품이 약 37조원으로 쏠림 현상이 심했다. 홍콩 H지수가 하락세를 이어가면 국민 재테크 ELS는 ‘국민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졌고, 금융당국이 홍콩 ELS 발행을 축소하도록 지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과 증권사는 구조가 복잡하고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난도·고위험 상품을 중위험 상품으로 둔갑시켜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판매했다.

2021년 2월 1만2271.60까지 올랐던 홍콩 H지수가 지난달 말 반 토막도 안 되는 5678까지 떨어졌다. H지수가 급반등하지 않는 한 올해 하반기까지 예상 손실액은 5조8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8년 전 ‘국민 재앙’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그 사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사모펀드 사태가 연이어 터지며 투자자들은 수조원의 피해를 봤다. 금융당국은 그때도 배상기준안을 제시하고 불완전판매를 한 금융사들에 과징금 부과, CEO 문책경고 등 중징계를 내렸다. 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적정하게 판매하고 충분하게 설명했는지 등을 따져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도 만들어졌다.

금소법 시행 후에도 이런 재앙적 금융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판매사의 법 위반이 만연하고 당국이 관리 감독에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금융당국은 DLF 사태 후 은행에서 고난도 사모펀드 및 신탁 상품 판매를 금지했다가 은행들이 반발하자 이를 뒤집고 다시 판을 깔아줬다. 선진 금융을 외치면서 은행더러 이자 장사만 하라는 것은 난센스지만, 금지할 만큼 위험한 상품을 다시 풀어줬을 때는 더 철저하게 감독하고 관리했어야 했다. 이제 와서 또다시 배상기준안을 내놓고 은행들에 자율배상을 압박하니 책임 전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총선을 의식한 금융 포퓰리즘이라는 의구심도 떨칠 수 없다.

은행들은 20년 넘게 문제없이 수익을 안겨주던 상품이 손실이 났다고 해서 배상하라는 것은 자유시장 원칙을 거스르고 투자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상품 설계에 결함이 없는데도 이렇게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은 결국 판매사의 잘못과 책임이라는 의미다.

2016년 홍콩 H지수 반 토막 사태를 경험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손실 가능성이 없다”거나 “정기예금처럼 안전하다”고 안내한 것은 은행직원의 무지 또는 소비자 기만이다. 심지어 H지수가 하락할 때도 은행들은 만기 연장을 권유하며 계속 팔았고, ELS 판매 한도를 높이고 성과지표(KPI)에 고위험 상품 배점을 높이며 판매 경쟁에 열을 올렸다. 이자 장사에서 벗어나 선진 금융을 하려면 이런 후진적인 행태부터 버려야 한다.

김수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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