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이라는 문화적 악취, ‘무신사 냄새’
엠제트(MZ) 소비를 다룬 지난 <한겨레21> 표지이야기(제1499호 ‘20대 소비 리포트, MZ는 무엇으로 사는가’ 참조)를 취재하며 만난 청년 인터뷰이들의 물건 소비가 몰렸던 시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정화씨가 “내가 공부하느라, 취업하느라, 일하느라 이만큼 참았으니까 참은 만큼 나한테 조금 보상을 해줘야지. 그 보상을 물건으로 했던 것 같아”라고 표현했듯, 대개의 다른 사회적 욕구도 제한됐다가 어떤 계기를 맞아 승인되는 시기와 맞물렸다.
청소년에서 성년이 됐을 때(“이제 내가 돈을 버는 성인인데 조금 더 나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나이가 좀더 들어서 저축해도 되지 않을까” 이은빈), 취직 이후(“취업 딱 했을 때는 회사 다닐 때 입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애들로 (옷을) 샀지만” 이미현), 휴일을 맞을 때(“금·토·일 이럴 때 친구들 만나잖아. 그럴 때 맛있는 거에 돈 많이 쓰려고 (주중) 점심(값)을 아끼는” 박미리)처럼 말이다. 남성이라면 군복무를 마칠 때(“전역 이후 옷을 한꺼번에 많이 구입하기는 했다” 이필헌) 그랬다.
정상성과 불평등 강화되는 생애주기별 과제
청년기 소비는 젊음을 즐기는 놀이의 주체로서 장려되기도 하지만, 생애주기별 퀘스트(임무)를 해냈을 때야 허락되는 일이다. 한 퀘스트를 끝내도 다음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기에, 그 ‘과소비’ 기간은 짧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생애주기 압박에 대해 ‘금융 치료’라도 받을 수 있는 청년은 점점 소수가 돼간다. 신생아 10명 중 1명만 저소득 가정(정재훈,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이라는 놀랍지만 놀랍지 않은 현실에서, 그 퀘스트를 깨는 것 자체가 ‘과소비’가 필요한 일, 즉 계급으로 이미 결정된 사건이 돼버렸다. 그러니까 기존 ‘대학-취직-연애-내 집 마련-결혼-출산’이라는 정상 생애주기가 ‘좋은 대학-좋은 취직-좋은 연애-좋은 집-좋은 결혼-좋은 자식-좋은 노후’로, 근본적으로는 ‘좋은 집안’으로 더더욱 ‘정상화’됐기 때문이다.
‘정상-정상 생애주기’만으로도 가파른데 이제 이 주기 사이를 ‘특별한 나’로 촘촘히 채워야 한다. 장현영씨는 운동을 미루고 있다. 회당 5만~10만원 하는 피티(PT·일대일 강습)를 받기 위해서다. “주위에 보면 다 PT 받고 일대일 필라테스 받고 이러니까 나도 그런 걸 왠지 해야 될 것 같”은데다, “(운동) 기구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고 자신이 없”어서다. 현영씨는 세후 330만원 월급의 정규직으로 또래보다 고소득이고 부채도 없기에 충분히 다른 운동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운동은 “그런 게 아니면 뭔가 운동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언뜻 현영씨의 ‘눈’이 불필요하게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근래 서구권 사상가들이 현대 문화에 대해 비평한 책들, <단독성들의 사회>(안드레아스 레크비츠), <프로필 사회>(한스 게오르크 묄러, 폴 J. 담브로시오), <야망계급론>(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등을 펼치면 단독성이든 프로필이든 야망이든 결국 지금 시대에 ‘특수한 문화적 지위’ 확보가 중요해졌다. 반면 ‘중간의 박탈’이 벌어진다고도.
자아가 쿰쿰하지 않게 ‘탈취 소비’
우리나라로 치면 ‘무신사 냄새’라는 용어가 대표적이다. 무신사는 MZ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쇼핑 플랫폼인데 그만큼 정형화된 패션에 대한 멸칭이다. 영화 <기생충>의 가난한 기택네처럼 실제 악취가 나지 않더라도 ‘평균이라는 문화적 악취’를 풍길 수 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소득 중간값은 200만원(207만7892원, 1인가구 기준)인데도 ‘200충’으로 비하되는 것처럼. 초고가 아니면 초저가로 나뉘어 중저가 브랜드가 사라지는 추세도, 아낄 땐 아끼고 쓸 땐 써서 양면적 소비자라는 의미의 ‘앰비슈머’(Ambisumer)라는 트렌드도 정확히는 ‘중간 피하기’다. 확실한 문화적 가치를 얻지 못하면 ‘평범 절하’가 되니 확실한 경제적 가치를 얻어야 한다.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소비 규모가) 극과 극”(김희선)이라는 감각은 양극화 심화뿐 아니라 취향 계급의 양극화로도 읽힌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데 보면 (다른 사람은) 음악회도 엄청 자주 가고 오마카세(맡김 차림)도 다니는데 나나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없”(장현영)는데도 청년 소비의 ‘보편’처럼 비친다. 그래서 (요즘은 가격 장벽이 낮아진) 오마카세나 호캉스를 어쩌다 소비하는 맥락이라면 허세라기보다 자아가 쿰쿰하지 않기 위한 ‘탈취 소비’로도 볼 수 있다. 지금 청년들의 고정비에는 ‘문화적 청결’ 항목이 신설됐기 때문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커피 논란’에도 이렇게 달라진 시대적 공기가 읽힌다. 한동훈 위원장은 2024년 2월5일 서울 경동시장을 방문하며 “(스타벅스가) 서민들이 오고 그런 곳은 아니죠”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 몰이해의 배경에는 이제 카페를 가지 않고서는 대화나 휴식이나 업무나 공부나 취미와 같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해진 현실이 있다. 스타벅스를 두고 청년 입장에서는 ‘민폐 카공족’이 되고 여성 입장에서는 ‘된장녀’였으면서 기업 입장일 때는 시혜적 의미의 “상생”으로 쉽게 탈바꿈된 맥락도 있었다.
같은 몰이해더라도 과거 정몽준 한나라당(옛 국민의힘) 의원의 ‘버스비 70원’ 발언 때와 양상이 바뀌었다. 한동훈 위원장의 발언 이후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한동훈식 서민 커피 섭취 계급도.jpg’라는 게시물이 돌았는데 ‘소비를 누릴 자격’에 대한 풍자였다. 필수재뿐 아니라 개개인의 주관이라고 탈정치화된 용어 ‘취향’에 불평등이 얽혀 있다는 공감대였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중간의 위기
금융소득과 근로소득의 격차가 심화한 시대, 취향은 그에 견줘 적은 비용으로 ‘평등’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평등이란 중간에 대한 만족이 아닌, ‘정상에서 박탈되지 않기’가 됐다. 정치인들은 지금 민주주의 위기를 중간의 위기로도 읽어야 한다. 특히 청년에 대해서라면, 지금 청년은 단군 이래 가장 개성을 갖췄지만 가장 ‘중간’이 빈곤한 세대라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청춘의 봄비: 같은 비라도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풍경과 수해로 나뉘는 것처럼, 흥미롭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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