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정부 증원배분에 "겁박으로 정치적 이득 얻잔 수작"
대한의학회 등 "독단적 결정, 정의·개혁으로 포장…모두 철회하라"
의대협 "해부실습도 못하고 강제진급할 판…휴학계 수리 요청할 것"
정부가 20일 내년도부터 2천 명이 늘어날 의과대학 정원 배분안을 확정해 발표하자, 의료계는 교수·학회·의대생 등을 막론하고 격렬히 반발했다.
이미 '25일 단체 사직'을 의결한 연세대 의대와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교수 일동은 이날 '정부는 의대학생 정원 2천 명 증원 배정안을 철회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발표안을 즉시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배정안을 가리켜 "의대 교육생의 67%를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1년이란 초단기 기간에 증원하고 그 배분을 몇 주만에 결정하겠다는 졸속 정책"이라며 "100년 이상 쌓아올린 한국 현대의학의 기반을 송두리째 와해시키고 의사교육을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시켜 의학교육 흑역사의 서막을 열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현재 사직서를 내고 떠났거나 휴학계를 제출한 '후속 세대'(전공의·의대생)가 1만 5천 명에 달한다는 점을 들어 "이들을 포기하며 진행하는 의대 정원 증원 강행은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정부가 비수도권에 82%(1639명)를 집중적으로 배정한 부분을 두고는 "교육 여건을 철저히 무시한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며, '권역중심의료기능 강화를 위해서'란 주장은 허구"라고 혹평했다. 또 "이후 의학교육 현장에서 발생할 참담한 혼란 상황과 이로 인해 국민건강 위협을 초래하게 될 독선적 결정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교수들은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도 지적하며 "폭발적인 의대생 증원 숫자를 제시하고, 금년 9월 수시전형부터 적용시키겠다는 것은 교육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근시안적 정치적 카드"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우리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금일 발표된 의대정원 증원배정안을 절대로 수용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의학회와 26개 전문과목학회도 정부안이 강행될 경우, 의료계가 엄청난 타격을 받을 거라고 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대한의학회 등은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의료계와 합의 없는 독단적 결정을 정의와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며 "정부는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필수의료를 파괴하고, 의료개혁을 하겠다며 의학교육을 파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독단적 결정은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체계를 마비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부분이 미복귀한 전공의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의학회는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고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와 진료에 심대한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업무개시명령을 시작으로 진행 중인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 대한의사협회(의협) 간부들에 대한 경찰 수사와 관련해서도 "(정부가) 다시 돌아올 다리를 불태우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들 학회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겪을 고통의 책임은 대화를 거부하는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선언한다. 의료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그들과 함께하며 지원할 것"이라며 "정부는 그간의 모든 조치를 철회하고 대화와 협상으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의료현장의 파탄을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김택우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면허 정지를 통보받은 의협도 "의료계를 범죄집단으로 몰고 있는 이 정부의 폭정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매일 오후 정례브리핑을 이어온 의협은 이날 브리핑도 취소하고 정부를 향해 "더 이상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붕괴 정책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조속히 의료가 정상화될 수 있게 지금이라도 현명한 결단을 내려 달라"고 촉구했다.
의협 비대위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2차 경찰조사차 서울경찰청에 출석하며 "오늘부터 14만 의사의 의지를 모아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증원 여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겪게 된 의대생들도 일제히 반발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이날 각 의대·의전원 대표 40인의 이름으로 낸 공동성명서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미래 대한민국의 의료를 망치는 정부의 정책 강행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의대협은 "정부는 (증원)근거를 '공개할 수 없다'면서 증원규모를 뒤집으려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라는 적반하장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최초의 길을 걷는 정부에 묻는다. 도대체 어떤 과학적 근거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증원이 이뤄진다면 학생들은 부족한 카데바(해부용 시신)로 해부 실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실습을 돌면서 강제 진급으로 의사가 될 것"이라며 "의학을 이렇게 배울 수는 없다. 이런 환경에서 저희의 의술을 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 어디에도 정부를 신뢰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번 정책 강행은 협박과 겁박으로 의료계를 억압하고, 이로 인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수작"이라고 잘라 말했다.
의대협은 정부의 '일방적 발표'를 절대 인정할 수 없고, 휴학계를 수리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려 시 행정소송에 대한 법률 검토도 마쳤다고 덧붙였다.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90회 찔려 죽었는데 우발범행이라니…" 딸 잃은 엄마의 절규
- 재산분쟁 탓?…전 아내 부모 무덤 파헤치고 유골 숨긴 60대
- '탁구 게이트' 사과한 이강인 "쓴소리에 반성, 모범적인 사람 되겠다"
- 식당서 난동 부리고 문신 셀카…조직폭력배 일당 붙잡혀
- '매국노' 발언에 고소당한 안산 "공인 본분 잊어" 사과
- 교수 사직에도 '의대증원' 대못 박은 정부…'파국' 치닫는 의·정
- 의대 교수들 "해리포터 세상이냐…의대생 증원 준비 못해"
- '비례 불만' 이철규 "韓 약속 안지켜…헌신한 사람 배려해야"
- 의료계, 정부 증원배분에 "겁박으로 정치적 이득 얻잔 수작"
- 억대 마약 밀수 10대 징역형 피할 뻔…대법원 "다시 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