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혹시나’의 힘

기자 2024. 3.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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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둘과 약속이 있어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약속 시간까지 30분쯤 여유가 있어 랩톱을 켰다. 뭐라도 쓸 수 있을까 기대한 건 아니었다. 예열만 하다 달아오르지 못한 채 랩톱을 덮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글 창을 띄워두고 포털에 접속했다. 내 글쓰기 루틴이다. 총선, 선거법 위반, 의료 대란, 대국민 사과, 잡히지 않는 먹거리 물가, 빈집 싸움, 막말 논란…. 분노와 우울을 유발할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포털이 제공하는 뉴스의 제목을 일별한 후, 개중 하나를 골라 클릭했다. 기사 하나를 다 읽었을 때 친구 A가 도착했다.

“헐떡이면서 오네. 무슨 일이야?” “먹고사느라. 넌 글 쓰고 있었던 거야?” 얼굴이 빨개진다. “아니, 기사 읽고 있었어.” “나는 요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 A는 작은 식당을 개업했다가 얼마 전 배달 위주로 영업 방향을 바꾼 참이었다. 때마침 친구 B가 왔다. “근데 오늘 무슨 날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B가 묻는다. “혹시나 해서 연락해본 거야. 우리 얼굴 안 본 지 오래됐잖아.” “그 덕분에 이렇게 본다.” 숨 고르기를 마친 A가 말한다.

자리를 옮겨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대화의 배경은 옛날과 지금을 종횡무진 오가지만 웃음은 끊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투표일에 뭐 하니?” B가 묻는다. “투표일에 투표해야지.”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날도 난 어김없이 출근해. 쉬는 날이 더 바빠.” A의 표정이 복잡하다. “예전에 연휴가 이어서 쉬는 날이었다면, 지금은 잇달아 일하는 날이 됐어.” 그는 주문이 많으면 기분 좋다가도 배달할 때는 늘 긴장 상태가 된다고 덧붙였다. “집에 오면 기진맥진이야. 씻을 힘도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많아. 오늘은 씻었으니 염려 마.” 우리는 또 한바탕 웃는다.

술이 몇 잔 오가고 대화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하나 더 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뽑은 후보는 늘 낙선하더라. 그게 그렇게 기운이 빠진다. 다음날 출근하는 건 다를 바 없는데도. 누가 돼도 처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텐데도.”

나는 가만히 듣는다. 먹고사는 일과 씻을 힘을 거쳐 우리는 희망에 다다른 것이다. 정확히는 희망 없음의 상태에. B가 잔을 높게 든다. “혹시 알아? 이번엔 달라질지도. 그게 누워 있던 나를 일으켜 투표장에 가게 한다?” 희망이 다시 자리에 깃든다.

얼큰하게 취한 A가 말한다. “그래도 해야겠지?” 내게는 그 말이 물음이 아니라 다짐처럼 들린다. “나는 투표 안 하면 무임승차 같아서 느낌이 별로더라고. 내가 지지한 후보가 낙선하면 당장은 기분이 좋지 않지. 그땐 감시자가 된다?” B의 말에 A가 반응한다. “감시자라니?” “당선된 후보가 잘하고 있나 틈틈이 살피는 거지. 공약은 잘 이행하고 있나, 동네 사정은 좋아졌나 그런 거.” 자신이 몸담은 곳이니, 그 몸을 바지런히 움직이면 보이는 게 많을 것이다.

“혹시 아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가 될지도 모르지만, ‘반드시’나 ‘얼씨구나’가 될 수도 있잖아. 조금씩이나마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삶이 참 팍팍하잖아.” 말하는 도중, 포털 메인 화면의 뉴스들이 눈앞을 스친다. 자기기만이 아닐까? 한숨이 나오려는 찰나 A가 말한다. “‘혹시나’의 힘 같은 거야?” 한숨이 쏙 들어가고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그래. 내가 혹시나 하고 연락해서 우리 만난 거잖아. 사람을 잡기도 하지만 살리기도 하는 게 혹시나 같아.”

다음에 만날 때 우리는 각자의 ‘혹시나’를 하나씩 지참하기로 했다. 피곤한 몸을 기어이 일으키는 힘을, 어떻게든 제 할 일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을, 한 치 앞을 못 보더라도 거기에 밝은 것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그리하여 ‘혹시나’라는 희망을.

오은 시인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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