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현장] ‘李 정치고향’ 성남… “재개발心이 텃밭 흔든다”
“재개발이 이렇게 늦어지는데 왜 민주당을 또 뽑아? 분당이랑 아직도 너무 차이나잖아.”
지난 19일 오후 성남시 중원구에서 만난 60대 진모씨는 “국민의힘이 좋은 게 아니라 이재명이 싫은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진씨는 자신을 ‘상대원동 토박이’라고 했다. 함께 있던 50대 남성도 “이재명이 중원을 재개발한다면서 정작 본인은 분당 사니까 더 욕을 먹었다”라면서 “윤영찬 되고 나서도 재개발이 제대로 안 됐다. 중원구 사람들 실망이 크다”고 했다.
이날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치적 고향’인 성남시 곳곳을 찾아 주민들을 직접 만난 날이었다. 과거 이 지역에서 변호사로 시민운동을 하던 이 대표는 2006년 성남시장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 재선 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이 대표가 이날 모란역 인근 먹자골목으로 들어서자, 거리를 꽉 채운 민주당 지지자들은 파란 풍선을 흔들며 환호했다. 이 대표는 모란오거리 광장에서 김태년(성남 수정)·이수진(성남 중원) 후보와 연단에 올라 “성남이 정말 그립다”며 “성남 시민들이 가장 선봉에서 이 나라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실을, 국민을 배신하는 권력자에 두 눈 부릅뜨고 회초리로 엄정하게 심판하겠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했다.
◇핵심은 재개발·재건축…與野 나란히 ‘無연고’ 후보 등판
성남은 2018년 지방선거 때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도내에서 최고 득표율(64%)을 기록한 곳이다. 지난 대선 때도 호남을 제외하고 전국 시군구 중 이 대표 득표율(57%)이 가장 높았다. 2014년 위헌정당 판결로 강제해산된 통합진보당이 주축인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지역으로도 꼽힌다. 그만큼 진보 진영에 유리하다. 중원구 현역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윤영찬 의원이다. 민주당은 성남을 경기도 승리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역대 총선 결과는 다소 달랐다. 17대 때부터 4선을 지낸 신상진 국민의힘 의원 전례가 있어서다. 신 의원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등 보수 정당 후보였지만, 민주당과 통진당이 야권 단일후보를 낸 19대 총선을 제외하고 네 차례나 당선됐다. 성남 지역에서 오랜 기간 시민운동을 해왔던 경력이 당적을 압도했다. 그는 2014년 김미희 후보가 ‘통진당 해산’으로 의원직을 잃은 후 재보궐선거를 통해 원내 재입성했다. 그만큼 ‘지역 연고’가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이번 총선에선 여야 후보 모두 연고가 없다. 민주당은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출신 비례대표 이수진 의원을 공천했다. 비명(非이재명)계 현역인 윤 의원은 ‘하위 10%’를 받고 경선에서 탈락했다. 이 후보는 원래 서울 서대문갑 출마를 준비했으나, 당이 이곳을 ‘청년전략특구’로 지정하자 돌연 중원으로 지역을 바꿨다. 모란시장에서 만난 60대 여성 김모씨는 “이수진이는 갑자기 온 사람이 뭘 알겠냐”고 했다. 다만 이 후보는 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통해 단일후보로 확정됐다. 이로써 조직적 지원이 막강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국민의힘도 ‘토박이’ 후보를 내진 못했다. 충남 부여 출신인 윤용근 후보는 중원 바로 옆 수정구 위례신도시 개발 때 원주민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다. 수도권에서 재개발 및 재건축 관련 법률 자문을 담당해왔다. 윤 후보는 “중원에는 연고가 없는 게 사실”이라며 “그보다는 지역 현안을 잘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재개발·재건축 전문 법률가로서 중원의 최대 염원인 재개발·재건축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답한 70대 남성은 “이수진 갑자기 나왔다고들 하는데, 국민의힘 후보도 처음 보는 얼굴 아니냐”며 “언제 그렇게 사람보고 뽑았다고, 여긴 그냥 민주당이다. 이수진 직접보니 인물도 좋다”고 했다. 재개발 이슈에 대한 실망도가 높지만, 그렇다고 여당인 국민의힘을 지지하진 않겠다고 했다. 또다른 60대 남성도 ‘수정구 토박이’라며 “성남은 원래부터 민주당”이라고 했다.
성남은 분당에 비해 개발이 늦다는 불만 여론이 높다. 은행시장 뒷골목의 경우, 5층짜리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2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간격이다. 도심이지만 이런 오래된 곳이 많고, 재개발 요구도 크다. 이 후보도 이날 주민들과 만나 “상대원 재개발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며 “정비예정구역인 상대원 3구역 재개발 사업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수립단계부터 주민들과 함께 해나가겠다”고 했다.
◇'경기도의 강남’ 분당, 부동층 표심 읽을 핵심지역
한편 이 대표는 이날 분당구 소재 야탑광장도 방문해 퇴근길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이 자리에는 이광재(분당갑)·김병욱(분당을) 후보도 동행했다. 연단에 오른 이 대표를 지켜보던 30대 남성 이모씨는 “이광재가 누군지 잘 모른다”며 “인물만 보면 안철수한테 솔직히 밀릴 것 같다”고 했다. 20대 김모씨도 자전거를 멈추고 연설을 지켜봤다. 그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건 동의한다”면서도 “안철수는 아는데 민주당에는 누가 나오는지도 몰랐다. 고민된다”고 했다.
같은 성남이지만, 분당은 다소 복잡하다. 역대 선거에선 보수 정당이 주로 이겼다. 18대 국회 때 3선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로 차출돼 보궐선거를 치렀는데, 손학규 민주당 후보가 당선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대선 때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 대표를 16%p(포인트) 차이로 제쳤다. 여당에선 지난 총선 때 분당갑에 당선된 뒤 대통령실 참모로 차출됐던 김은혜 후보가 나왔다. 분당을이 이번 총선의 부동층 표심을 읽을 바로미터로 꼽히는 이유다.
분당갑은 을에 비해 보수 지지세가 강하다. 2000년 16대 총선 때 분당이 갑·을로 나뉜 이후, 2016년을 제외하곤 보수 정당이 전부 이겼다. 현역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다. 민주당에선 ‘노무현의 남자’로 불리는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을 내보냈다.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에선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이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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