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광주정신이 ‘추종’인가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미술전인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가 오는 4월20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한다. ‘이방인들은 어디에나’(Foreigners Everywhere)를 주제로 11월24일까지 약 7개월간 대장정을 펼친다.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는 해당 비엔날레의 두 축이다. 예술총감독이 진두지휘하는 본전시에는 300명 이상의 작가(팀)가 참여한다. ‘미술 올림픽’답게 각 국가 기관에서 운영을 맡는 국가관 전시에는 한국을 포함해 90여개의 나라들이 참가해 자국의 미술 역량을 겨룬다.
제60회를 맞은 올해에는 10여개의 기획전과 30개의 병행전시도 함께한다. 기획전에선 피에르 위그, 크리스토프 뷔헬 등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약 10억원의 혈세를 쓰면서까지 베니스로 날아가 전시를 치르는 광주 비엔날레를 빼면 병행전시엔 대체로 마카오미술관이나 피터 후자(미국 사진가) 재단, 루이비통 재단처럼 미술관 및 사립 예술단체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도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준비한 특별전이 베니스 시내 곳곳에서 활기차게 진행된다. 하지만 권위는 예전 같지 않다. 1895년 세계 최초로 시작된 이래 오랜 시간 세계 미술계를 호령하며 나름의 파급력을 가진 미술행사로 인정받아 왔으나 갈수록 담론 부재와 인류 공통의 이슈를 생성하지 못한 채 19세기 ‘만국박람회’로 변질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줄곧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은 필자의 판단도 그렇다. 적어도 앞선 몇회 동안 비엔날레 특유의 역동적 파괴는 체감되지 않았고 새로운 조형미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2022년에도 그랬다.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뚜렷한 방향성은 보여준 반면, 해석은 다각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그 ‘여성’ 안에서도 주류는 여전히 유럽과 미주 작가들이었다는 점에서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했다.
비엔날레의 두 축 가운데 하나인 국가관도 마찬가지였다. 본전시가 주체적 여성과 초현실로부터 현실로의 전환을 추구했다면, 국가관 전시는 나치 시대 증축된 건축물을 해체한 마리아 아이히호른의 독일관을 제외하곤 밋밋함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도 한국관은 가장 실망스러웠다. 기이한 동작을 반복하는 기계적 구성의 출품작들은 한국관이 아닌 ‘과학관’이 더 어울릴 법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쇠퇴의 징조가 짙다. 진보적 발언으로 세계 미술 지형도를 재편해온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5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의 국제미술전)에 비하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과연 지금도 비엔날레가 모범이냐고 묻는다면 ‘글쎄’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롤모델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그러나 광주 비엔날레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 건 고사하고, 베니스 비엔날레의 특징인 시상제도를 도입하는가 하면 2018년부턴 베니스 비엔날레를 모방해 국가관(파빌리온)을 운영하는 등 ‘추앙’의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젠 같은 비엔날레임에도 남의 나라 비엔날레에 ‘병행전시’라는 꼬리표를 단 채 참여하는 어이없는 행태마저 드러내고 있다. 이 정도면 광주 비엔날레의 뿌리인 광주정신이 추종인가 싶을 정도다.
한국의 비엔날레는 고유의 정체성이 약하다. 2024년 행사에만 1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광주 비엔날레도 매한가지다. 회를 거듭할수록 덩치만 커질 뿐 과연 질적 수준과 독자성이 유효한지 의문이다. 분명한 건 지금처럼 베니스 비엔날레의 ‘아류’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새로운 모색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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