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 만에 100명 마감"…백화점도 아닌데 '오픈런' 벌어졌다 [현장+]

'천원의 아침밥' 현장 가보니
전국 186개 대학서 진행
1000원에 끼니 챙길 수 있어 인기
이른 품절로 발길 돌리는 학생도

사진=김영리 기자

"오늘 1시에 첫 수업인데 일부러 일찍 일어나서 왔어요. 1000원에 이 맛이면 줄 설만 하죠!"

20일 오전 7시 50분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순헌관 지하 식당. 입구부터 배식대까지 이미 65명의 학생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밥을 1000원에 먹기 위해서다. 가장 앞에 줄을 서 있던 학생 김모 씨는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고 7시 40분에 도착했다"며 "(배식을 시작하는 오전 8시보다) 최소 10분 전에는 와야 식사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고물가로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지면서, 일부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숙명여대에서는 매주 월~목요일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재학생에게 아침밥을 1000원에 제공하고 있다. 이날 찾은 학교에서는 배식을 시작하고 4분 만에 준비한 식권 100장이 모두 동났고 오전 8시 16분, 준비한 모든 음식이 '완판'됐다. 그야말로 '오픈런'의 현장이었다.

20일 오전 7시50분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로 가득한 숙명여대 천원의아침밥 식당. /사진=김영리 기자

이날 아침 메뉴는 얼큰돼지국밥, 소시지전, 적양파부추무침, 깍두기, 계란스크램블, 컵주스였다. 기숙사에 살아 모자를 눌러 쓰고 온 학생부터 오전 운동을 마치고 온 학군사관후보생(ROTC), 수업은 9시지만 1시간 일찍 통학한 학생까지 다양했다.

일찍 식권이 동난 탓에 줄을 섰다가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는 학생이 점점 늘자, 학교 측이 대책을 마련했다. 천원의 아침밥은 자율 배식으로 진행되는데, 100명 마감 후 조리사가 남은 음식량을 파악해 추가 배식이 가능한 인원수를 알리면,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행정 인턴이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천원의 아침밥' 게시판에 "○○명 추가 배식 가능합니다"라고 알리는 것이다. 헛걸음하는 학생을 줄이고 잔반도 줄이는 '묘안' 덕에 이날도 총 128명의 학생이 든든히 배를 채웠다.

20일 천원의 아침밥 식단. /사진=숙명여자대학교 제공

이날 행정 인턴으로 근무한 경제학부 2학년 김소연 씨는 "메뉴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보통 오전 8시 30분에는 준비한 모든 음식이 마감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기숙사에서 7시 40분에 나섰다는 2학년 강모 씨는 "편의점 도시락보다 훨씬 양질의 식사를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어 애용한다"며 "평소 아침밥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수업이 늦게 있는 날도 식당을 찾는 편"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학부 4학년 학군사관후보생 김현지 씨는 "오전 운동을 마치고 주 2회 정도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한다"면서 "대학가 식당들도 500~1000원씩 음식값을 올리는데 건강한 아침밥을 학교에서 10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건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자취생에게도 천원의 아침밥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법학부 4학년 길모 씨는 "오늘 수업은 1시에 시작하지만 수업과 무관하게 천원의 아침밥을 애용한다"며 "4년간 학교 앞에서 지내다 보니 같은 5000원이어도 학교 앞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폭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체감한다"며 물가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다. 

8시30분께 도착해 이날 식사하지 못한 2학년 이모 씨는 익숙한 듯 웃어 보이며 "자칫 늦잠 자면 오늘처럼 아침을 못 먹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면서 "새 학기라 그런지 올해 들어 인기가 더 높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숙명여대는 지난해 5월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에서 시행하는 '천원의 아침밥' 2차 사업에 선정돼 올해까지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학교는 현재 1인 단가 6000원에 맞춰 식단을 설계하고 있다. 정부 2000원·서울시 1000원·용산구 1000원·아침밥 사업용 동문 기금 1000원·학생이 1000원씩 부담한다. 단가에 맞춰 국 1종, 반찬 3~4개가량의 조식 백반을 제공하고 있다.

장윤금 숙명여대 총장은 한경닷컴 측에 "학기마다 주기적으로 식단 품평회를 진행해 식당 측에 학생들의 의견을 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이나 시리얼, 생야채 등을 마련해달라는 의견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천원의 아침밥을 찾는 학생 수를 매일 파악하고 있다"며 "평균적으로 소비되는 음식량과 인원 등을 계산해 추후 배식량을 늘릴 계획이 있다"고 전했다. 

천원의 아침밥 식단표와 배식대에서 아침밥을 담는 학생들. /사진=김영리 기자

당초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청년층의 아침 식사 결식률이 59%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접하고 청년의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한 사업이다.

다만 최근 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1% 오르는 등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까지 맞물려 아침밥 사업에 대한 대학생 만족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농림부가 140개교 5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90% 이상의 응답자가 아침밥 사업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이에 농림부는 지난해 전국 145개 대학에서 이 사업을 시행했다가 올해부터는 사업 참여 대학을 186개교로 확대했다. 올해 천원의 아침밥 사업과 관련, 농림부 관계자는 "올해는 대학 현장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지원 단가와 식수 인원을 대폭 확대했고 희망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방학 기간에도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 방식도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