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미래 비례 공천 두고 친윤석열 대 한동훈 충돌
이철규 “한 사람이 결정하면 따라가나”
갈등 배경엔 윤석열 대통령 불만 전언
국민의힘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20일 비례대표 후보자 당선권에 조배숙 전 전북도당 위원장을 배치하는 등 순번을 재조정했다.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호남 출신과 당직자가 소외됐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국민의미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밤늦게 조 전 위원장을 13번에 배치한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다. 조 전 위원장은 이틀 전 발표된 순번에선 빠져있었다. 기존 13번에 배치됐던 강세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21번으로 내려갔다. 과거 골프 접대 징계를 이유로 전날 공천이 철회된 이시우 전 국무총리비서실 서기관(17번) 자리에는 이달희 전 경상북도 경제부지사가 들어갔다.
4·10 총선 후보 등록일을 하루 앞둔 이날 당정 갈등이 표출됐다. 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잘 아는 이철규 의원이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공천을 두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직격하면서다. 막말 논란을 빚은 도태우·장예찬 후보 공천 철회를 둘러싼 이견 등 지역구 공천부터 누적된 한 위원장 측과 친윤석열계(친윤계)의 갈등이 전면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친윤계 핵심 인사인 이 의원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앞서 한 위원장에게 윤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주기환 전 광주시당 위원장 등에 대한 비례대표 후보자 당선권 배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어떤 한 사람이 결정하고 거기에 다 따라간다면 ‘이재명 민주당’과 뭐가 다르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당초 비례대표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고심해서 결정한 후에 국민의미래로 이관하기로 지도부에서 뜻을 모았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비례대표 공천은 그 진행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앞서 이 의원은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자 순번이 발표된 지난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당을 위해 헌신해온 동지들이 소외된 데 대해 당 지도부는 후보 등록일 전까지 바로잡기 바란다”고 한 위원장을 비판했다. 이후 한 위원장과 이 의원은 비례대표 후보자 사천 공방을 벌였고, 이 의원이 한 위원장에게 특정 인사들의 당선권 배치를 요구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이에 이 의원이 공식적인 입장 표명에 나선 것이다. 이 의원은 해당 보도들의 출처와 관련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잘 알 거라 생각한다”며 사실상 한 위원장 측을 겨냥했다.
이 의원은 한 위원장과 함께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자신이 ‘자매정당’인 국민의미래 공천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어떤 분들은 월권 아니냐고 하는데, 그러면 한 위원장도 장동혁 사무총장도 모두 다 월권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한 위원장 등에게 “‘당을 위해 헌신해온 분들, 특히 호남 지역 인사, 노동계, 장애인, 종교계를 배려해 달라’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며 “이것은 밀실에서 권한 없이 청탁한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책무”라고 강변했다.
이 의원은 한 위원장에게 주 전 위원장, 코미디언 출신 유튜버 김영민 당 디지털정당위원장, 보수 유튜버인 민영삼 사회통합전략연구원장 등 호남 출신 인사와 백현주 국악방송 사장, 이익선 전 기상캐스터 등의 당선권 배치를 요청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게 잘못됐냐” “그분들을 추천한 게 사천이냐”고 반문했다. 주 전 위원장은 검찰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20년 넘게 연이 깊고, 김 위원장과 민 원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윤 대통령이 평소 즐겨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 전 위원장은 당선권 밖인 24번을 배정받자 후보를 사퇴했다.
친윤계에선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 발표 이후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인 김예지 의원(비례), 한지아 을지의과대학 부교수 등 한 위원장 체제 비대위원들이 공천을 받은 반면 윤 대통령과 연이 있는 인사들은 역차별을 받았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과거 한 위원장도 비대위원은 적어도 비례대표로 가면 안 된다는 말을 저한테 했다”고 밝혔다.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한 전직 대통령실 인사는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사람은 비례 명단에서 다 배제됐다”며 “누군지 알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배치됐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공개적인 불만 제기에는 지역구 공천 때부터 지켜봐온 윤 대통령 의중이 반영됐을 거란 해석이 많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일관되게 공천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면서도 “우리 편이라고 배려하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 편이라고 불이익은 주지 말라는 원칙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인사들이 윤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은 시스템에 맞춰서 이기는 공천을 하는 게 맞지 않냐고 안타까워하셨다”며 “이번 비례 공천이 과연 당의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는 공천인지에 대해 용산 내에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내가 받아적는 하수인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실과의 사전 소통설을 부정했다.
한 위원장은 전날 비례대표 후보자 사천 논란에 대해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자 중 단 한 명도 제가 추천한 사람이 없다”며 “원하는 사람이 안 됐다고 해서 사천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프레임 씌우기”라고 이 의원을 겨냥했다. 친한계인 김경율 비대위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이 의원의 불만과 관련해 “이 의원의 장문의 페이스북 내용은 번역이 필요하다”면서 “번역하자면 ‘왜 내가 심으려는 사람이 명단에 없냐’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동혁 사무총장도 이날 “총선을 20일 앞둔 중요한 시기에 당의 화합을 저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총선 승리를 위해 일일이 반박 입장을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천을 둘러싼 충돌은 도태우·장예찬 후보 공천 취소 때도 드러났다. 이 의원은 이날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공천을 위해 억울하게 희생 당한 분들도 많다”고 했다. 이보다 앞서 친윤계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한 부산 사상에 장 의원 최측근인 김대식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단수공천하는 문제를 두고도 장 사무총장과 이 의원이 의견 차를 보였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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