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의대가 배정된 정원보다 줄여서 선발하는 것을 허용하자 [왜냐면]
장세진 | 인하대 명예교수·서울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협회의 갈등이 의료 위기 사태로 치닫고 있다.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18일 전원 사직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여러 문제가 얽혀있지만, 의대 교육 능력이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 증원이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의사협회는 350명을 넘는 증원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가? 새삼 솔로몬의 지혜를 뒤돌아보게 된다.
같은 날, 같은 집에서 두 여인이 아기를 낳았다. 한 아기가 죽자 두 여인은 서로 살아 있는 아기가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면서 솔로몬 왕에게 판결을 구한다. 왕은 병사에게 아기를 반으로 갈라 두 여인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한다. 병사가 칼을 들어 아기를 치려는 순간, 한 여인이 기겁하며 내가 거짓말을 했으니 나를 죽이고 아기를 살려 저 여인에게 주라고 애걸한다. 다른 여인은 아기의 반이라도 갖겠다고 버틴다. 솔로몬 왕은 첫 번째 여인에게 아기를 주라고 판결한다. 온 이스라엘 국민은 왕의 판결과 지혜에 공감하고 경외한다.
그 지혜의 핵심은 두 여인이 스스로 진실을 드러내도록 유인한 데 있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는 정보를 경제학에서는 ‘비대칭 정보’라고 부른다. 누가 진짜 어머니인지 두 여인은 알고, 솔로몬 왕은 모른다. 이런 상황에 제도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솔로몬 왕)이 비대칭 정보에 맞추어 자원을 배분하려면, 먼저 정보를 독점한 사람이 그 정보를 정직하게 신고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이러한 추가 제약조건을 제도 설계 이론에서는 ‘정직 신고 조건’이라고 부른다.
왜 이런 제약 조건이 필요할까? 정보를 독점한 사람은 거짓말을 통하여 자신의 이득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짓말로 속여서 이득을 볼 수 없도록, 즉 정직하게 행동해서 손해를 보지 않도록, 유인 체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그 정보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리어 왕처럼 믿을 수 없는 거짓말에 의존하여 왕국을 두 딸에게만 나누어 주면 안 된다. 솔로몬 왕은 극단적인 방법(현대라면 아동학대로 몰릴 법한)으로 진실을 드러내게 한 것이다.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면, 왕은 두 여인에게 아기를 반반씩 나누어(꼭 물리적으로 나누지는 않더라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당면한 의대 증원 문제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자. 누가 무엇을 더 잘 아는가? 의료 서비스의 수요(장기적으로 국가 전체의 의료 서비스가 얼마나 필요한가)는 정부가 더 잘 안다. 의료 서비스의 공급(교육 능력)은 의대 교수나 의사들이 더 잘 안다. 다만 의사협회는 공급 능력을 줄여서 보고할 동기가 있다. 의사 면허의 희소성을 높이는 것이 집단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의사협회가 아니라 개별 의대가 자신의 교육 능력에 맞는 선발 인원을 선택하도록 하면 된다. 다행히 현행 대학 정원에 관한 법률은 교육부가 배정한 입학 정원 안에서 각 대학이 선발 인원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정부는 정원을 각 의대에 배정하되, 각 의대가 줄여서 선발하는 것을 허용하라! 그러면 정부와 의대 사이에 명예롭게 대화하고 절충할 수 있다.
일부 의대가 선발 인원을 과도하게 줄이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의대 상호 간 견제와 균형이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작동을 보장하기 위하여 정부는 의사협회 등을 통한 의대의 담합을 공정거래법에 준하여 단속하면 된다. 올해 과소 선발한 인원의 일정 비율만큼 내년도 의대 정원에 재배정한다면 각 대학이 무리하지 않고 교육 능력을 차근차근 키워 선발 인원도 늘려갈 것이다.
문제들이 얽혀있고 갈등이 깊을수록 중요한 문제부터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정원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를 푸는 실마리도 보일 것이다.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주장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솔로몬의 판결에서 아기의 생명을 위협하며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국민을 두려워한다면 그런 주장이 통할 리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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