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공격하는 자가 범인이다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한겨레 2024. 3. 2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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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스텔라, 이야기를 읽어줘'라는 동화책이 공립도서관에서 퇴출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자녀가 백인으로서 죄책감을 느끼며 자라길 원하지 않는다는 학부모의 민원은 인종 차별을 다룬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지게 했다.

도의회에 출석해 "낯뜨거운 표현이 대부분으로 교육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자신이 "도내 도서관 전체에 열람 제한을 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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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성평등 도서에 대한 ‘악성 민원’이 활발해지자,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에서도 ‘금서’를 읽자는 제안들이 있었다. 사진은 ‘학교도서관저널’에 매달 ‘평등이 평범해지기 위한 수업’이라는 주제로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는 작가 ‘예민한 도서관’의 인스타그램 갈무리.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2023년에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스텔라, 이야기를 읽어줘’라는 동화책이 공립도서관에서 퇴출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성적으로 노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사람들은 의아했다. 어린 남매가 함께 개집을 만드는 이야기일 뿐 성에 관해서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조사한 결과, 저자의 이름 때문으로 밝혀졌다. 마리-루이스 게이. 바로 저자의 이름에 게이라는 단어가 있는 탓에 내용과 상관없이 금서 목록에 오른 것이다. 도서관 측에서 실수였다고 말하지만, 애초에 책을 읽지도 않고 몇몇 단어로 검열했다는 것을 감출 수는 없다.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생길 정도로 미국은 ‘도서관 전쟁’이 한창이다. 자녀가 백인으로서 죄책감을 느끼며 자라길 원하지 않는다는 학부모의 민원은 인종 차별을 다룬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지게 했다. 청소년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민원은 성소수자가 자기 삶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마저 금서로 만들었다. 심지어 사서가 책을 서가에서 치우라는 민원에 응하지 않으면 기소당하고 배상금까지 내야 하는 법도 제정했다. 모두 공화당이 집권하는 보수 성향이 강한 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사실 한국도 비슷한 흐름이다. 2020년에 보수 개신교에 기반을 둔 단체와 국민의힘 소속의 국회의원이 힘을 합쳐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을 철회시킨 것을 시작으로 2023년엔 공공도서관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 알 수 없는 120종의 금서 목록을 들이밀며 어린이에게 유해하니 폐기하라고 했다. 민원은 도서관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집중적이었다. 버티지 못한 도서관은 책을 아무도 열람할 수 없게 치웠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바로잡아야 할 정치인과 교육청이 부화뇌동하는 현실이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를 보라. 도의회에 출석해 “낯뜨거운 표현이 대부분으로 교육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자신이 “도내 도서관 전체에 열람 제한을 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밝혔다. 아니, 도지사의 낯이 아무리 뜨거워진들 그것이 어찌 도서 검열의 근거가 되겠는가.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도 2023년에 관내 초·중·고등학교에 성교육 도서를 검열하는 듯한 공문을 보낸 적이 있다. 비판적 여론이 일자 폐기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발뺌했지만, 올해 2월 경기도 고양교육지원청은 다시 일선 학교에 ‘성교육 도서 처리 결과’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폐기 압력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지난 3월19일, 전국 305개 시민사회단체와 4398명의 시민은 ‘성교육 도서 검열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항의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주지사는 금서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민주적이지 않은 일이라며 2024년 1월에 미국에선 처음으로 ‘금서 금지법’을 발효했다. “당파적 입장이나 이념, 도서 창작에 기여한 사람들의 출신 배경과 견해 때문에” 특정 도서를 정당한 이유 없이 금서로 지정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공공도서관은 정치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모든 시민은 존엄하며 자유롭고 평등하다. 도서관은 이런 가치와 원칙을 배우고 느끼는 공간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범인이 있다면, 바로 혐오와 편견으로 똘똘 뭉쳐 도서관을 공격하는 이들이다. 부디 다가오는 4월 선거에서 도서관 공격에 힘을 보태는 정치인들이 걸러지길 바란다. 나라가 더 망가지기 전에 품어보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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