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사람을 모이게 하는 모든 것’을 동결해야 [왜냐면]

한겨레 2024. 3. 2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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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인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은 지금 우리에게 국운이 걸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도권 과밀 말고도, 주택 수급 문제도 수도권이 가장 심각하고, 의사 수급 문제도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고, 또 이대로 가면 수도권에서 더 필요한 전력을 어디서 어떻게 끌어올 것입니까? 수도권 과밀만 해소해도 우리의 많은 난제들이 상당한 수준에서 해결될 것입니다.

당분간 수도권에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모든 것'을 일체 허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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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역에 폭설이 내리면서 출근시간대 지하철 5호선 열차 운행이 전 구간에서 늦어진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영석 | 전북 남원 흥부골 귀농인·국립한국농수산대 명예교수

점진적인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은 지금 우리에게 국운이 걸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의 해결에 앞장서야할 정치권의 고민과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가야하는 것입니까?

나라는 국토와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국토와 사람이 서로 잘 엮여서 두루 잘 살아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도시-농촌 간, 수도권-지방 간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가시렵니까?

세계 최저의 합계출산율은 다시 올라갈 조짐이 보이지 않고, 이렇게 인구가 계속 줄어들면 그 끝이 약소국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수도권과 지방 간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인구가 줄어들면서 국민연금 등에서 세대 간 갈등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정말 이렇게 가시렵니까?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은 한 껍질만 벗기고 들여다보면 그 뿌리가 하나입니다. 수도권 집중은 서울(수도권)을 생존경쟁의 치열한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가 계속되면서 늘어난 수도권 인구를 일하고 먹고 자고 살 수 있게 해주느라 구로공단을 만들고, 한강 다리도 더 놓고, 지하철을 늘리고, 아파트랑 연립도 더 지어주니, 인구는 또 그만큼 늘어나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백화점, 삼일빌딩, 63빌딩, 롯데타워가 지어지면서 인구는 또 그만큼 늘어나고, 대학교, 병원, 공장들까지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지방의 인구들을 빨아들이는 일이 멈추지 않고 있는데, 김포시나 구리시를 서울로, 또 전철이 춘천과 천안까지 연결되면서 수도권은 이제 만원을 넘어서 초만원이 되었습니다. 전 국토의 10% 남짓한 땅에 전 인구의 60% 이상이 몰린 ‘초과밀’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대로 가시렵니까?

좁은 수도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니 주변이 온통 ‘경쟁자’로 보이는, 그래서 치열하게 싸워서 이겨야 살아남는 전쟁터처럼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런 치열한 전쟁 상황이 곧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결국 아이는커녕, 결혼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많은 정책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출산이 멈출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줄고 있고,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줄어서 폐교를 결정해야 하고, 폐업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러다할 힘이 없는 국민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만 할 뿐인 무기력한 모습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 아닐까요?

수도권 과밀 말고도, 주택 수급 문제도 수도권이 가장 심각하고, 의사 수급 문제도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고, 또 이대로 가면 수도권에서 더 필요한 전력을 어디서 어떻게 끌어올 것입니까? 수도권 과밀만 해소해도 우리의 많은 난제들이 상당한 수준에서 해결될 것입니다.

이젠 불편할 정도에 이른 ‘과밀’이 ‘과밀’을 해소하게 해야 합니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강제적으로 인구를 분산시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수도권에서 사는 것’이 불편하고 비싸지고 어려워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들고 저항도 적고 효과도 오래 갈 것입니다. 이제부터 수도권은 ‘쾌적한 삶’을 최고의 목표로 하고, 그의 달성을 위해 인구가 적정 수준으로 줄어들게 하는 정책들을 모색해야 합니다.

당분간 수도권에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모든 것’을 일체 허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도로도, 전철도, 건물도, 기관도, 업체도, 사업장도, 심지어 기존 시설의 개보수도 보수만 허용할 뿐, 일체의 증축은 불허해야 합니다. 수도권 밖 지역들이 자족의 생활거점도시 수준에 이를 때까지, 수도권의 모든 것을 동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도권의 발전도 곧 한계에 이를 것입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을 제주로’가 아니라 “전국 방방곳곳을 살기 좋게!”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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