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통념 활용' 조수진 공식 사과…"다시 태어나겠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조수진 후보가 과거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하고 블로그에 '강간 통념을 활용하라'는 내용의 홍보 글을 올린 일이 논란이 되자 "당원과 국민께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여성단체들로부터 사퇴 요구가 이어지자 이같은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낮은 자세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
조 후보는 20일 당을 통해 입장문을 배포하고 "제가 과거 성범죄자의 변론을 맡은 것과 블로그를 통해 홍보를 한 것은 변호사로서의 윤리규범을 준수하며 이루어진 활동이었다"라고 주장하며 "그러나 국민들 앞에 나서서 정치를 시작하는 국회의원 후보로서 심려를 끼친 것에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법보다 정의를, 제도보다 국민 눈높이를 가치의 척도로 삼겠다"며 "변호사에서 국민을 위한 공복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했다.
조 후보는 과거 미성년 피해자가 포함된 다수의 성범죄 사건을 변호한 데 이어 지난 2023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성범죄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조언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관련기사 : [단독] 박용진 맞상대 조수진, 성범죄 가해자에 '강간통념 활용' 조언?)
이에 여성계에서는 조 변호사가 성범죄 가해자 편에 섰음에도 '여성' 가점 25%를 안고 경선에 참여한 점을 문제 삼으며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전날 성명을 내고 "'여성이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는 관계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사회통념을 소개하며 성폭력 피의자 입장에서의 유불리를 조언했다"며 "특히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 미성년자인 경우 국민참여재판이 유리할 수 있음을 안내하기도 하였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한국의 법조시장에는 '성폭력 가해자 감형을 위한 패키지 상품'이 유통되기에 이르렀다. 성폭력 가해자는 이 시장에서 '합리적 소비자'로서 대우받는다"며 "성폭력 피의자에 대한 변호가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될 수는 있겠으나, 가해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위한 법률 자문, 변호 서비스를 상품으로 구성하고 판촉하는 행위는 자본의 우위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불공정성을 더욱 부추기고, 법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현실에 대해 방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조 후보의 형사전문 변호사로서의 행보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 그중에서도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구조적 차별을 극복하고, 법의 공정성을 회복하고, 약자와 소수자가 기회의 균등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입법기관의 공직자가 되기에 자격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조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여성'으로서 25%의 가산을 받게 된다"며 "여성 후보에 대한 가산 제도는 국회의 여성 과소대표의 현실을 극복하고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여성인권 활동가들이 노력한 결과물이지, 성폭력 피의자 전문 변호사의 입신을 위한 디딤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조 후보는 자신의 성폭력 사건 피의자 변호 경력과 그에 대한 홍보 행위가 국회의원이 되기에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전국 146개 단체로 구성된 '2024 총선!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강간 통념', '피해자다움'에 관한 편견은 성범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을 가볍게 하고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을 어렵게 한다"며 "이러한 통념과 편견을 활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조언하는 인물은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을 향해 "서울 강북을 지역구는 얼마 전 정봉주 전 의원이 '막말 논란'으로 공천취소된 곳"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취소 이유로 정봉주 전 의원의 성폭력, 가정폭력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조수진 변호사를 공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불어민주당에 성평등 관점의 공천기준이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 예비후보 공천을 취소하고, 제대로 된 인물을 공천하라"고 촉구했다.
원외 진보정당 녹색당도 20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의 성평등 인식에 큰 기대를 갖고 있던 것도 아니지만 조 변호사 공천 확정은 차마 믿기 힘든 지경"이라며 "초등학생을 비롯한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 가해자 변호를 수 차례 맡았을 뿐 아니라, 아동 성착취 사건에서 집행유예를 받아낸 것을 홍보한 인사가 어떻게 강북 주민과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3차례의 집권 경험이 있는 공당이자 제1당으로서, 민주당이 국민께 대한 일말의 예의와 도리를 안다면, 국회의원 자질 이전에 인격적으로 심각한 결함을 의심케 하는 조 변호사에 대한 공천을 지금 당장 취소하라"고 주장했다.
녹색당은 "10세 여아에 대한 성착취 가해자에게 '상당히 죄질이 나쁘기 때문에 감형에 필요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며 '결국 그는 무사히 감형받아 5년의 집행유예 처분이 내려졌다'고 자랑하는 대목에선, 성평등과 아동인권 의식을 떠나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의심케 한다"며 "코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고교생에 대해 '피해자가 스쿨미투 운동을 했던 적이 있었고, 사건 후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다 한 달이 경과한 후에야 문제를 삼았다'며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 변호사의 행태는 '변호'의 범위를 넘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이자 전형적인 2차 가해"라고 비난했다.
조 후보는 한편 전략경선이 진행된 지난 18일 친야 성향 유튜브 채널 <박시영TV>에 출연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6년 정도 서부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로서 온갖 것을 다했다"며 "마약·강도·살인부터 해서 교통사고 등등 여러 가지 다양하신 분들, 돈 없고 그런 분들을 (변호)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 벌기 위한 노력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것보다는 그래도 제가 좀 될 수 있으면 공감할 수 있는, 변론을 펴고 싶고, 그래서 의뢰인이랑 저랑 뜻이 맞는 사람이면 좋고 그런 편이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조 변호사의 성범죄 사건 변론 시기는 모두 국선변호사로 재직하던 시절 이후인 2018년부터 2023년까지다. 블로그의 성범죄 무죄 전략 '홍보글' 또한 2023년에 집중적으로 게재됐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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