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싫지만 인류는 사랑해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한겨레 2024. 3. 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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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공원의 자전거 소풍, ‘그레이트 머펫 케이퍼’(The Great Muppet Caper), 1981년. 머펫 위키 누리집 갈무리

이명석 | 문화비평가

언덕 위 시장에 봄을 사러 갔다. 과일은 손도 못 댔지만, 온누리 상품권 두 장으로 봄나물은 넘치게 담았다. 그러곤 신이 나 걸어 나오는데, 스쿠터의 윈드 스크린이 와장창 깨져 있었다. 트럭이 커브를 돌다 부딪혔나? 바람에 넘어진 걸 누가 세워주고만 갔나? 어떡하지. 주변 가게에 물어볼까, 시시티브이(CCTV)를 확인해야 하나, 경찰에 신고부터 할까? 낯선 사람들과 불쾌한 대화를 나눌 생각만 해도 힘이 빠졌다. 부서진 조각들을 청소한 뒤 집으로 왔다.

술을 싫어하지만 술 마시고 싶다는 기분을 알 듯도 했다. 그러나 ‘나의 사용법’엔 이럴 때 누구에게 연락한다는 옵션은 없었다. 나는 장바구니를 내던지고 유튜브를 뒤적였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인형들이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나는 개구리, 돼지, 벌레들의 우정, 신뢰, 공존의 이야기를 보며 부서진 인류애를 조금씩 붙여나갔다.

런던 공원의 자전거 소풍, ‘그레이트 머펫 케이퍼’(The Great Muppet Caper), 1981년. 머펫 위키 누리집 갈무리

대학을 나온 직후, 재미교포 친구가 내게 말했다. “나는 미국에서도 너 같은 개인주의자를 보진 못했어. 이 말은 칭찬이야.” 나는 웃었지만 칭찬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국가주의, 가족제도, 패거리 의식을 극도로 거부하며 뾰족한 말을 뱉어내곤 했다.

흔히 ‘개인주의’라 뭉뚱그리지만 그 아래엔 오만 가지 모습이 있다. 단지 쉬는 날 약속을 잡기보단 혼자 누워 있길 좋아하는 성향일 수도 있다. 중학교 입학식에 혼자 가도 괜찮겠냐는 부모의 말에 ‘오히려 좋아’ 하는 강한 독립성일 수도 있다. 친구들의 수다가 재미없을 때 혼자 책 속에 빠지는 몰입력, 혹은 뻔뻔함일 수도 있다. 칼퇴근, 회식 무시, 주말 연락 차단…. ‘요즘 엠지(MZ)’라고 불리는, 직장 내의 얄미운 행태일 수도 있다.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 마이 페이스, 나르시스트, 러브마이셀프족도 있다. 가족, 학교, 군대, 국가 등 집단의 관습에 사사건건 의문을 표하는 반공동체적 인간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조각들을 기워 붙인 프랑켄스타인이다. 처음엔 그저 집단을 밀어내던 아이였다가, 많은 고민 끝에 사상적 정체성으로 ‘개인주의’를 택한 어른이 되었다. 그러곤 항상 도덕적 비난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너는 자기밖에 모르는구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아이는 마음 붙일 곳을 찾는다. 책, 만화, 인형, 동물…. 나는 그들로부터 인간성을 배웠고,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을 아우르는 방법도 익혔다. 만화 동호회, 고양이 모임을 만들자 나보다 더 개인주의적인 사람들도 나타났다. “혹시 여기 올 때 빼고는 외출을 안 하세요?” “어떻게 알았어요?” “여기 말고는 친구가 없어요?” “당연하잖아요.” 하지만 사회성의 부족이 반사회적인 인성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고양이와 개처럼 순진했고, 소설과 만화 속 주인공처럼 인류애로 가득 차 있었다.

내겐 많은 행운이 있었다. 자신의 성향을 일찍 깨달았고, 내 행복을 위해 많은 걸 포기할 각오를 다졌다. 직장을 떠나서도 일을 받아낼 능력, 최소의 경비로 생활을 꾸려낼 경제관념, 혼자서도 재미를 찾아내는 문화적 소양, 누가 시비를 걸어도 자기변호를 할 사상을 가졌다. 하지만 나보다 더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집단 속에서 고통받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세상이 순식간에 변했다. 30년 전의 나는 ‘숨어 사는 외톨박이’ ‘세상에 이럴 수가’였는데, 이젠 어디서나 차이는 1인 가구일 뿐이다. 어쩌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세상을 준비해야 할까? 아니다. 현명한 개인주의자들은 막연한 인류 공동체의 꿈에서 벗어나 가까운 세상을 돌볼 준비를 해야 한다. 가족, 직업, 종교로 뭉친 집단 이기주의에 맞서, 어떤 개인이든 평등하게 행복을 누릴 기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나물을 무쳤다. 아무래도 양이 많아, 다른 독거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윈드 스크린도 새로 달아야지. 다행히 교체용 공구를 빌려주는 주민센터를 알고 있다. 아니, 근본적으로 스쿠터를 안전하게 세워둘 방법은 없나? 전용 주차장을 마련해준다는 정치인이 있나 찾아봐야겠다. 혼자인 삶은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돌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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