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괴물 AI칩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시장의 90%를 장악한 인공지능(AI) 칩 세계의 지배자다. 사반세기 전 엔비디아가 내놓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빠른 데이터 처리로 생성형 AI에 필수적이 되면서다.
엔비디아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새 AI 칩을 공개했다. 이름은 ‘블랙웰’이다. 2080억개 트랜지스터를 탑재해 전작 호퍼(800억개)보다 연산속도가 2.5배 빨라졌다. 중앙처리장치(CPU)와 함께 시스템을 구성하면, AI 학습·추론에 최대 30배 성능까지 낼 수 있다고 한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새 칩을 들어보이며 “모든 산업에서 AI의 가능성을 실현할 것”이라고 했다. ‘괴물 AI칩’이란 탄성이 나왔고, 블룸버그는 “다음 세대 AI의 열쇠”라고 전했다. ‘인간 같은’ 기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 일주일 전 CNN은 AI가 “인류를 멸종시키는 수준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전했다. 미국 민간업체 글래드스톤AI가 국무부 의뢰로 발표한 보고서다. 보고서는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안전을 희생하면서까지 AI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 속 기업 중엔 엔비디아도 포함됐다.
AI로 인한 인류 멸절 위험 경고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AI 기업 경영진과 과학자 등 350여명은 “AI로 인한 멸종 위험을 완화하는 것은 전염병·핵전쟁 위험 등과 함께 세계에서 우선순위로 다뤄져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해 11월 챗GPT 아버지 샘 올트먼의 오픈AI 최고경영자 퇴출 소동은 두머(파멸론자)·부머(개발론자) 대결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처럼 새 ‘괴물 AI칩’에 대한 경탄 속엔 인류의 두려움도 함께 어른거린다. 인간 같은 기계의 파괴적 영향력을 명확히 가늠할 수 없기에 언제든 인류 멸절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럼에도 괴물을 향한 인류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혁신’이라 이름하에, 내가 하지 않으면 경쟁자가 할 거라는 존망의 불안이다. 자본의 탐욕과 안보 불안이 결합한 인간의 경쟁심이 괴물을 풀어놓을 것이다. 그 경우 엔비디아의 ‘괴물 AI칩’은 인류가 현명하게 AI를 개발하고 통제하는 데 실패할 것이란 ‘예언적 상징’이 될 수 있다. 결국 인류의 가장 큰 위험은 늘 그렇듯 인간인 셈이다.
김광호 논설위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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