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 박찬호는 왜 회식서 김하성 보고 깜짝 놀랐나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한 일"
[스포티비뉴스=고척, 윤욱재 기자]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일이다"
'코리안특급' 박찬호(5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특별고문이 샌디에이고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메이저리거 김하성(29)을 보고 깜짝 놀란 사연을 전했다.
박찬호는 20일 2024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의 개막전이 열리는 고척스카이돔을 찾았다. 이날 시구자로 선정된 박찬호는 1994년 메이저리그 데뷔 당시에 사용했던 글러브를 챙겨와 눈길을 끌었다.
경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진 박찬호는 "오늘 아침부터 일어나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시구로 공 1개만 던지려는 계획이 마치 1경기를 다 던지는 것처럼 긴장된다"라면서 "조금 더 의미를 갖게 된다. 아마도 너무 뜻깊은 하루가 될 것 같다. 30년 전에는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특히 마이너리그 있을 때부터 하루하루가 어려웠지만 정말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헤쳐나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일들을 통해 성장했고 내가 성장한 결과가 30년 후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감명 깊게 생각한다"라고 한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는 소감을 전했다.
이날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난 박찬호는 직접 글러브를 들어 보이면서 "30년 전에 썼던 글러브를 박물관에서 가져왔다. 의미 있는 시구에 사용하려고 갖고왔다"라고 밝히며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는 한마디로 '선구자' 역할을 해냈다. 1994년 다저스에서 데뷔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하면서 풀타임 선발투수로 거듭났고 1998년 15승 9패 평균자책점 3.71을 거두며 생애 첫 15승 고지를 밟은 것은 물론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면서 'IMF 사태'로 힘겨워하던 한국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1999년 13승 11패 평균자책점 5.23로 고전한 박찬호는 2000년 18승 10패 평균자책점 3.27로 생애 최고의 시즌을 치렀고 2001년 무려 234이닝을 던지며 15승 11패 평균자책점 3.50으로 활약하며 주가를 높였다.
2001시즌을 마치고 FA를 선언한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500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잭팟'을 터뜨렸다. 비록 텍사스에서 지낸 4년 동안 22승 23패 평균자책점 5.79에 그치며 '먹튀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지만 2005년 샌디에이고로 이적하면서 재기의 신호탄을 터뜨렸고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대표팀의 4강 신화를 이끌며 현역 메이저리거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고비는 찾아왔다. 2007년 뉴욕 메츠로 이적했지만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던 것.
그러나 박찬호는 2008년 다저스로 복귀해 불펜투수로 변신, 4승 4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40으로 활약하며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고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3승 3패 평균자책점 4.43을 남기면서 생애 첫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기도 했다. 2010년 뉴욕 양키스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거치며 4승을 추가한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98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4.36을 기록하고 노모 히데오의 123승을 넘어 아시아 투수 최다승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수많은 한국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수 있었다.
"30년 전에는 나 혼자였다. 1994년 마이너리그로 내려왔고 이듬해인 1995년 노모 히데오가 와서 또 다시 아시아의 문을 활짝 열었다. 당시 나는 다시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빅리그로 돌아가 노모와 같이 팀 메이트로 활약하면서 아시아의 문이 활짝 열렸고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 후 스즈키 이치로, 다르빗슈 유, 류현진, 김하성, 추신수, 궈홍치, 첸진펑 등 수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다. 이들을 보면서 '노모의 나무가, 박찬호의 나무가 튼튼하게 자랐구나'라고 느꼈다. 이제 열매가 모여 아시아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이끌어가는 기회가 됐다. 앞으로 아시아 선수들이 메이저리거를 꿈꾸면서 진출하고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박찬호는 야구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던 다저스를 '첫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저스는 나를 통해서 한국 야구팬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고 어떻게보면 한국 국민들에게 '첫사랑'과 같은 존재였다. 당시 한국은 IMF 사태로 어려웠지만 스포츠로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그것이 바로 다저스의 파란 유니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파란 유니폼을 입은 한국인 선수에게 매일 기대하고 응원하면서 잘 하지 못하더라도 같이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 50~60대 사람들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제 한국 팬들은 추신수가 텍사스에서 뛰는 것을 보고 류현진이 다저스에서 뛰는 것을 보면서 어떤 특정팀만 좋아하는 것이 아닌 메이저리그 전체가 한국 팬들에게 깊게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을 물어보면 다양한 팀을 이야기하더라. 다저스는 첫사랑과 같다. LA는 고향 같은 도시라 의미가 깊다"라는 것이 박찬호의 말이다.
공교롭게도 박찬호는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에서 모두 뛰었던 인연이 있다. 과연 이들의 개막전은 누구를 응원할까. 박찬호는 "어떤 팀이 이겨야 한다는 것은 없다. 한국에서 역사적인 경기가 펼쳐지는 만큼 선수들이 월드시리즈에서 최고의 경기를 보여준 것처럼 개막전과 다음날 경기 또한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승부로 멋진 경기를 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박찬호의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은 머지 않아 깨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인 메이저리거 다르빗슈는 메이저리그에서 11년을 뛰면서 통산 103승을 기록하고 있다. 박찬호는 "기록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내가 2007년에 다시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보냈는데 '여기까지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노모를 보면서 다시 한번 용기를 갖고 한번 더 도전해보자는 마음을 가졌다. 노모는 내가 재기의 큰 목표를 설정하는데 큰 용기를 줬다. 내가 이룬 124승도 언젠가 당연히 깨져야 한다. 그래야 발전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다르빗슈가 꼭 해내길 바라고 이 기록이 다음 세대에도 좋은 목표와 도전할 수 있는 타깃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다르빗슈의 도전을 응원했다.
박찬호가 특별 고문으로 활동하는 샌디에이고에는 한국인 메이저리거 김하성이 뛰고 있다. 김하성은 2021년부터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었고 지난 해 타율 .260 17홈런 60타점 38도루로 활약하고 내셔널리그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까지 수상하면서 리그 정상급 내야수로 발돋움했다.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할 때였다. 내가 김하성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고 샌디에이고와 계약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는데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하고나니까 책임감이 들었다. 삼촌이자 보호자 입장에서 노력과 애정, 그리고 관심을 쏟았다. 첫 해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지난 해 많은 성장 속에서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또다른 역사를 만들었다. 야구를 잘 하는 것 뿐 아니라 많이 성숙해지고 내면이 단단해지는 모습을 봐서 굉장히 흐뭇하다"는 박찬호.
특히 박찬호는 최근 샌디에이고 선수들이 회식을 했는데 김하성이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란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 샌디에이고 선수들이 회식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김하성이 스피치도 하고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멘트를 하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뿌듯했다. 나는 선수 때 감히 흉내내지도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오타니가 작년 WBC 결승전을 앞두고 일본 대표팀 선수들을 모아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김하성도 성숙해진 모습을 보면서 선배로서 기쁘고 자랑스럽다"
시구를 위해 30년 전에 썼던 글러브를 챙긴 박찬호는 "한국에서는 내가 쓰던 유니폼, 글러브 등 모든 물건을 선배들이 쓰던 것을 물려받아서 쓸 수 있었다. 나도 내가 쓰던 물건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졸업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뭔가 내가 쓰던 물건을 가치 있게 소장하는 개념이 없었다"라면서 "그런데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첫 경기를 치렀는데 나는 2점을 허용해서 개인적으로 많이 부끄럽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미 라소다 감독이 덕아웃 앞까지 나와서 나를 안아주면서 볼 하나를 주더라. 당시에는 통역이 덕아웃에 들어올 수 없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 들어가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라소다 감독이 다가와서 다시 한번 설명을 해줬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가 스트라이크를 만든 공이다'라고 하더라"고 일화를 전했다.
이어 그는 "이것은 소중한 보물이 됐다. 이후 내가 쓰던 물건을 다 소장했다. 승리투수가 되고 나서는 마지막에 던진 공을 모으는 습관이 생겼다. 때로는 마무리투수가 세이브 공을 갖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거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공 124개를 다 모았다. 지금은 내 고향에 있는 박물관에 기증돼 있다. 내가 미국에 가기 전에는 직구와 슬라이더만 던졌는데 미국에서 체인지업을 배우면서 손가락을 많이 사용했다. 이를 보고 롤링스에서 글러브를 새로 만들어줬다. 보기에는 흉해보이지만 30년 뒤에 다시 쓸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잘 간직해서 기쁘다"라고 글러브와 관련한 사연도 들려줬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데뷔한지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박찬호는 "30년 전과 비교하면 너무나 많은 발전을 했다. 어린 아이들이 메이저리그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자체가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서울도 아닌 작은 도시(공주)에서 자랐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자체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선수의 사진도 볼 수 없었다. 미국에 갈 때는 메이저리그가 뭔지, 마이너리그가 뭔지도 모르고 갔다. 가서 경험을 하면서 하나하나 배웠다. 과거에는 박찬호 야구만 봤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앞으로 한국야구를 이끌어가는 멋지고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격세지감을 이야기하며 후배들의 성장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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