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생각하라! 사랑의 마음을" 100년 전 등대지기의 애환
안전하게 뱃길을 안내하는 것이 등대의 임무 바다의 밤이 짙어질수록 쌓이는 고독의 비애 손꼽아 받아 보는 편지와 신문, 읽고 또 읽어 귀양살이와 비교해 보면 무엇이 낫고 못할까
직업(職業)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을 말한다.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먹고 살려면 누구든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직업도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고, 보람 또한 있을 것이다. 100년 전 신문에 소개된 직업 중에 외딴 고도(孤島)의 등대지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한번 찾아가 보자.
1924년 3월 매일신보 기자가 인천 앞 월미도(月尾島) 무선전신소 견학을 하게 되었다. 이는 3월 6일자 신문에 실렸다. "벼르고 벼르던 월미도 무선전신소 견학은 오늘에야 뜻을 이루었다. '장미화의 섬'이라고 서양 사람들이 찬양한 것은 아마 월미산 상봉에서 지음(知音)인 듯 멀리 보이는 강화(江華) 영종(永宗)의 산봉우리 허리에 걸친 안개, 팔미(八尾) 바다 잔잔한 파도를 헤치고 날아가는 돛단배와 검은 연기를 토하며 들어오는 기선, 연기와 티끌 속에 쌓인 인천 시가의 먼 경치, 이 모든 것이 무한한 감격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는 3월 2일 오후 3시경, 동행한 사람과 월미도를 찾은 기자는 친절한 전신 기수의 안내로 견학을 거의 마쳤을 순간, 별안간 수신기에서 또드락 딱딱 소리가 요란하더니 전신 기수가 벗어놓았던 수신기를 머리에 쓰더니 연필을 들어 흰 종이에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것을 본다. 발신한 곳은 소청도(小靑島) 등대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1월 분 봉급을 처분한 계산서를 보내도록 부탁하노라." 그러자 기자는 "극무(劇務)에 종사하는 나는 한적한 당신을 부럽다 생각하노라. 매일신보 기자 ○○○"라고 써서 전신 기수에게 주었고, 기수는 이것을 삽시간에 발신하였다. 이번에는 다시 "멀고 먼 고도(孤島) 생활자로부터 도회(都會)의 신문 기자에게 멀리 무선 전신을 사이에 놓고 경의를 표하며 건강을 비노라"라는 말이 도착되었고, 이어 다시 등대로부터 "아침에는 물새 우는 소리에 잠을 깨고 낮에는 파도 소리와 벗을 삼고 밤이 되면 바다 여신과 말동무하는 무의미한 생활을 계속하면서 항로(航路) 표식(標識) 사업에 분투하는 우리들의 생활을 귀(貴) 신문 지상으로 세상에 소개해 주기를 바란다"라는 전문이 도착했다.
이제 기자는 등대지기의 외로운 생활을 기록해 보려 한다. 얼마 전부터 인천 소월미도 등대에 근무하는 노인 등대지기의 이야기다. 1924년 3월 7일자 매일신보에 '고도(孤島)의 왕(王)'이라는 제목으로 등대지기를 찾아간 이야기가 실린다. "등대(燈臺)라 하면 외로운 섬이 연상되고 외로운 섬이라 하면 무인도가 연상된다. 조선 해안을 돌아가며 세워 있는 등대의 수효는 입표(立標)와 부표(浮標)를 제외하고 서해안이 48곳으로 제일 많고, 남해안에는 28곳이 되고 동해안은 15곳이다. 그리고 등대에 종사하는 직원은 112명 가량이라 한다. 이들이 등대지기로 임명되기까지에는 경성체신국에 있는 양성소를 들러 나올 필요가 있다. 임명된 후 처음으로 자기가 있을 섬에 도착될 때까지는 오히려 호기심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많은 종류의 직업 중에서 특히 이러한 직업을 구함은 사람에 따라 경우가 같지 아니 할 것이다. 고적한 생활을 면치 못할 것은 알고도 이 직업을 택함은 이외에는 자기에게 차지될 만한 직업이 없으므로 부득이 함인 것일 것은 듣지 아니 하여도 알 것이다."
기사는 이어진다. "해가 지고 밤이 밝아 날이 점점 지나갈수록 이를 따라 고독(苦獨)의 비애는 점점 더해진다. 고독의 비애를 느끼지 않을 날이 없을 것이나 특별히 심할 때가 있다. (중략) 이 고독한 무리들에게는 몇 가지 위안이 있다. 바닷가에서 고기 낚기와 밭 갈아 채소 심기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씩 이른 아침부터 멀리 바다 위를 살펴보며 기다리는 것이 있다. 기다리는 것은 체신국에서 보내는 회항선(廻航船)이다. 자애(慈愛)하신 양친(兩親)의 문안과 사랑하는 처자(妻子)의 소식, 친한 벗의 반가운 글발, 반 달 동안 막혔던 신문, 그리고 술(酒), 쌀, 고기, 봉급 기타 가짓수를 이루 챙길 수 없다. 이 배가 바람으로 인하여 만약 하루 이틀 연기될 때에는 안타까워 참을 수 없다. 그러다가 기다리던 배의 돛대 끝이 수평선 저쪽에서 나타날 때의 반가움은 어떻다 형언할 수 없다. 배에서 돌아와서 먼저 뜯는 것은 서신(書信), 다음에는 신문지이다. 이것이 이들의 둘도 없는 위안거리이다. (중략) 이것이 외로운 섬의 왕(王)으로 일생을 지내갈 운명을 가진 가엾은 등대지기의 생활이다. 귀양살이에 비교하여 무엇이 낫고 못할는지."
우리나라 등대에 관해서는 1964년 7월 12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는 2,200여년 전 이집트 나일강 어귀에 화로스 섬에 세워 놓았던 등대로 높이가 70미터나 되는 석조 등대로 1350년경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우리나라 등대의 역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편인데 1900년경 전남 하조도, 경남 가덕도, 인천 팔미도 등에 현대식 등대가 세워졌다. 가장 높은 등대는1903년 경북 장기곶 앞에 세운 29미터 높이의 등대다. (중략) 어려운 등대지기를 천직(天職)으로 여기며 자신의 평생은 물론 자손들까지 조상의 뜻을 이어 내려오는 등대지기가 외국에는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런 사람은 없다.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오래 등대 간수의 일을 맡고 있는 이는 포항해운국 관내 울기 등대의 등대장 이영춘(李迎春) 씨로 나이가 53세며 27년 동안을 쉬지 않고 등대에서 일해오고 있다."
등대는 배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등불을 켜 놓는 곳이다. 나를 태워 다른 사람의 안전을 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안전하게 길을 안내하는 것이 등대의 임무인 것이다. 세상의 어떤 직업이 즐거움과 행복 또는 괴로움만 있겠는가. 모두가 등대지기가 될 수는 없지만 직업은 모름지기 다른 사람의 행복을 안내하는 등대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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