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작 5시간이나 남았는데, 인산인해 이룬 고척돔의 ‘야구 축제’…심지어 ‘티켓 필요해’ 팻말까지 등장[스경X현장]
서울 고척스카이돔이 전세계 야구팬들로 북적였다. 한국에서 역사적인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처음으로 열렸다.
20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다저스와 샌디에이고가 2024시즌 포문을 열었다.
이날 경기는 한국에서 열린 첫번째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다. 또한 미국이 아닌 정규시즌 개막전이 열리는건 1999년 멕시코 몬테레이, 2000년·2004년·2008년·2012년·2019년 일본 도쿄, 2001년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2014년 호주 시드니에 이어 9번째다. 아시아에서는 두번째다.
경기 시작은 오후 7시5분이었지만 5시간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척돔에서 도보로 10분이나 걸리는 공영 주차장은 오후 2시에 이미 만석이었다. 일찍 서두른 사람들도 다른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지하철에는 가지각색의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들이 모두 모였다. 이날 경기를 치르는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들은 물론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국내 팀들의 유니폼을 입고 입장을 기다렸다.
당초 고척돔에는 400명의 안전 요원이 경기장 내 외부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여기에 서울시 등 관련 기관도 150명의 인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날 새벽 ‘폭탄을 경기 중 터뜨려 오타니 쇼헤이 선수 등을 해치겠다’는 협박 메일을 받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폭발물이 감지되는 위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삼엄한 경계 속에서 팬들의 입장이 진행됐다. 취재진 역시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야구장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양 팀 감독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마이크 실트 샌디에이고 감독은 “메이저리그 야구에 대한 보안 팀의 실력을 믿고 있다”고 했고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은 “사실 그렇게 걱정할 거리는 아니라고 해서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작은 해프닝은 고척돔에 쏠린 열기를 식힐 순 없었다. 개막전의 표는 진작 매진이 됐다. 1차전 예매는 예매 시작 15분만에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표를 구하지 못한 해외 팬들은 고척돔 앞에서 팻말을 들고 혹시나 생길 표를 구하려고 애썼다. 팻말에는 한국말로 ‘필요해 티켓’이라고 적혀있었다.
메이저리그 기념품을 판매하는 매장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다저스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의 티셔츠와 유니폼은 ‘구매 제한’이 걸렸다. 오타니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는 1명당 2장씩, 유니폼 저지는 1인 1매씩만 살 수 있었다. 오후 3시 반부터 열린 굿즈샵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계산대에 있던 한 직원은 “열자마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왔다. 계속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상태”라며 혀를 내둘렀다.
연차를 쓰고 광주에서 비행기까지 타고 서울로 상경한 채 모씨는 “국내 프로야구가 재미 없어서 몇년 간 야구를 안 보다가 오랜만에 직접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니 몸값 비싼 선수들이 경기에 전념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며 “오타니 쇼헤이의 플레이 모습도 보게 되어서 오길 잘했다”며 기뻐했다.
경기 전 열린 인터뷰에는 한국, 미국, 일본 매체들이 모두 참가해 인터뷰실이 발들일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터뷰에 참여한 감독과 선수들은 한국에서 보낸 특별한 경험에 대해 입을 모았다. 샌디에이고 조 머스그로브는 “한국 사람들 모두 친절하고 호텔도 시설이 굉장히 좋았다. 지금까지 좋은 시간을 보냈다. KBO선수들의 플레이도 즐겨봤고 몇몇 투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을 떠올린 머스그로브는 “김하성이 통역을 통해 가볼 장소를 많이 추천 해줬다”며 “한국에서 어떤 문화를 체험해야할 지 좋은 곳은 어디를 가야할 지 등에 대한 도움을 많이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하성이) 고향에 와서 신나하는 것 같다”며 “김하성이 한국에서 적응하는데 있어서 리더처럼 챙겨줬다”고 했다.
로버츠 다저스 감독도 “한국에서 여러 곳을 다니며 좋은 경험을 했다”라고 했다. 실트 샌디에이고 감독도 “한국에서 하는 개막전을 매우 기대했다”고 밝혔다.
‘코리안특급’ 박찬호는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시구자로 선정됐다. 낡은 글러브를 가지고 기자회견장에 입장한 박찬호는 “30년 전 내가 MLB 개막전에 썼던 글러브”라며 “보기에는 흉하지만 30년이 지난 오늘 이걸 다시 쓰게 될 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아침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구 하나 던지는데, 마치 한 경기 다 던지는 걸 앞둔 것처럼 긴장됐다”던 박찬호는 “제가 성장해서 한국야구 발전과 (MLB 개막전을 서울에서 하는)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감격했다.
경기 전에는 특별한 만남도 성사됐다. 한화 류현진이 로버츠 감독을 만나기 위해 더그아웃을 찾은 것이다. 류현진은 한화의 연고지인 대전의 명물인 성심당의 빵을 들고 더그아웃을 방문했고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을 반기며 취재진 앞에서 빵을 아주 맛있게 먹어 보였다.
그라운드에서는 선수들이 훈련하는 동안 환호성이 계속해서 나왔다. 다저스 타자들이 볼을 뻥뻥 때려내며 담장을 넘기자 팬들은 이에 대한 감탄사를 자아냈다.
다양한 볼거리들이 가득한 가운데 고척돔은 경기 시작시간을 한 시간이나 남겨뒀는데도 팬들로 대부분이 꽉 찼다. 각국의 방송 카메라들은 이런 고척돔의 풍경을 찍기 바빴다. 매점에서는 야구와 함께 즐길 먹거리를 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전 세계 야구인의 축제가 고척돔에서 열렸다.
고척 |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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